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립일세 May 25. 2022

술을 지켜온 사찰과 수도원

술에 있어 동서양의 공통점은 종교에서 술을 발전시켜고 보존해왔다는 것이다

사찰과 수도원     






 오늘날의 우리나라의 개신교는 술을 멀리하라고 설교하지만 정작 성경 속에는 술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실려있다. 다신교국가였던 로마제국은 유일신 사상을 가지고 있던 기독교를 핍박했다. 네로로부터 시작된 핍박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민심을 얻기 위해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고 기독교를 공인하게 되는 313년까지 이어진다. 이후 392년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기독교를 로마의 유일한 국교로 정하고 다신교국가였던 로마의 종교적 변화를 통해 민심을 모으려고 노력한다. 이런 과정에서 로마제국 곳곳에는 교회와 수도원이 세워지게 된다.






 수도원에서는 정주서원을 함과 동시에 기도와 묵상, 복종과 청빈, 노동을 통한 고행으로 살이가야 했다. 특히 삶에 필요한 대부분의 도구와 먹거리를 외부의 도움을 최소화하고 스스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이를 위한 노동은 필수였다. 로마의 세력범위와 동일하게 분포되었던 것은 교회 외에 한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와인이다. 로마의 군단이 자리한 곳에는 식수대용으로 사용되었던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밭이 있었다. 수도원에서 와인을 만들게 되는 필연의 일치다. 이후 기후가 맞지 않아 포도가 자라지 않는 곳에서는 비어를 빚게 된다. 수도원에서는 우유로 치즈를 만들어 사용했고 농사로 지은 포도와 곡식을 이용해 와인과 비어를 만들어 마셨다. 그 기술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수도원 비어와 수도원 와인의 명성을 만들었다. 






 십자군 전쟁은 수도원이 재산을 불리는 데 크게 이바지한다. 참전하려던 많은 귀족과 기사는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교회와 수도원에 자신들의 토지를 저렴하게 팔았다. 또는 전쟁 중에 사망할 수도 있었기에 사후에 자신의 영혼을 위한 기도를 청하고 수도원에 기증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증가한 교회와 수도원의 재산은 향후에 여기에서 지은 농사의 산물인 포도과 곡식의 산출량 증가로 이어졌다. 수도원에서는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 글을 읽을 줄 알았기 때문에 농사를 짓기 위한 여러 가지 농사기법을 기록으로 남겨 농업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 교회가 재산의 증가로 힘이 세지면서 세속적으로 물들어가는 악영향을 주기도 한다.






 기독교가 서양문화를 주도했다면 동양에서는 불교와 유교가 주도했다고 볼 수 있다. 동양문화권에 속한 우리나라는 유교를 숭상하며 불교를 탄압했던 조선이 들어서기 전까지 사찰은 지금처럼 산에 있지 않고 평지에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에도 있었고 농촌의 들판에도 있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와 고려시대에 지어졌던 사찰 터가 들판에서 발견되는 이유다. 






 그렇다보니 지금처럼 이동수단이 좋지 않아 여행과 이동은 많은 시간이 걸렸던 시절에 여행자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바로 숙박이다. 전국에 걸쳐 1만 3천여개의 크고 작은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사찰에서는 여행객들에게 숙박업은 물론이고 허기를 달래줄 음식을 제공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음식의 하나였던 술이 함께 제공되는 것은 당연했다. 따라서 우리에게 곡차라고 알려져 있는 술을 빚는 기술이 사찰에서 발전할 수 있었다. 






 기후의 특성상 과일로 빚는 술보다 곡식으로 빚는 술이 일반적이었다. 사찰은 국가의 지원과 고관대작을 비롯한 백성의 시주로 운영되면서 많은 토지와 재산을 소유했다. 토지경작을 위해 노비를 시주받기도 했다. 확보된 토지와 노비라는 노동력을 이용해 사찰에서는 당시 부의 척도였던 곡식을 얻을 수 있었고  일부는 술빚기에 사용되었다.






 향과 맛이 뛰어난 술은 국가적인 행사였던 연등회와 팔관회를 비롯한 불교 행사에 사용되었다. 행사의 특성상 낮에 각종 불교의식이 근엄하게 치러지며 공연과 놀이가 진행되지만 밤에는 궁에 불을 밝히고 잔치를 베풀었다. 고려 시대에는 팔관회에 참석한 송나라, 여진을 비롯한 주변국 사신이 축문과 선물을 올리면 꽃이나 술, 음식, 약재와 같은 하사품을 내려 황제로서의 위상을 뽐냈다. 이처럼 종교와 술은 별개가 아니다. 과용과 오용으로 생긴 편견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지만 술은 마시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과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욱일승천기와 경성, 그리고 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