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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일세 Aug 01. 2022

일본대사의 우매함에 한 시름 놓았다.

인문학적 지식은 꼭 필요하다. 

일본대사 아이보시 고이치 씨에게 감사   





  

 2018년부터 기존의 역사문제로 인해 골이 깊어지던 한·일간의 외교적 마찰은 2019년 7월 1일 일본의 경제산업성(METI)이 우리나라에 대한 ‘공업 소재 수출 규제 조치’를 내놓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우리의 주력 수출품 중에 하나인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공정에 들어가는 여러 핵심 소재를 제조하는 일본기업에게 수출심사를 강화하면서 우리경제를 정밀 타격하려 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는 냉각상태가 유지되었고 이후 여러 국제행사에서 마주한 두 나라의 정상은 간단한 인사만을 나눌 뿐 관계정상화를 위한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불화수소를 비롯한 주요 소재의 수출심사강화로 수급에 차질이 발생한 상황에 두 나라 관계는 민감했다. 긴장감이 극에 치달았던 그해 8월 21일 베이징에서는 한·중··일 외교장관회의가 열렸었다. 한·일 외교장관회의를 앞두고 회담장에는 당시 일본의 외무상을 맡고 있던 고노 다로가 먼저 나타났다. 일본기자들과 대화를 나누던 고노 다로는 떨어져있던 한국 취재진에게 다가가 기자가 들고 있던 카메라가 ‘니콘이냐 캐논이냐’를 물었다. 당시 캐논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한 그는 우리 기자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던 것으로 회자되고 있다.






 당시 한국에서 불었던 일본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를 꼬집으려는 질문으로 보였다. ‘니들이 별 수 있냐?’는 의미와 기술의 자부심을 나타냈던 것으로 비춰졌었다. 당시 보도에 우리 국민도 화는 났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던 기술 격차를 무시할 수도 없었다. 이런 일이 올해 초 또 한 번 벌어질 뻔 했으나 우리나라에 주재하고 있는 일본대사의 우매함 덕분에 우리 정부의 무지를 감출 수 있었고 또 다른 창피함을 피할 수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대망의 2022년 새해가 시작된 지 18일째 되는 날이면서 민족고유의 명절인 설인 2월1일(음력 1월1일)을 앞둔 시점이었다. 청와대는 대통령과 부인의 이름으로 경기 김포의 술/꿀, 전남 광양의 매실액, 경북 문경의 오미자청, 충남 부여의 밤 같은 각 지역의 특산물로 구성된 설 명절 선물을 코로나19에 필요한 방역현장의 공무원과 치료현장에서 근무하는 의료인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각계각층에 있는 인사 1만5천명에게 보낼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 중에는 국내에 주재한 외국공관도 포함되었다. 청와대가 주한 외교관에게 명절인사로 보내는 평범한 선물로 끝났을 일이었지만 외교가의 반응 때문에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 시발은 일본 대사관이었다.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의 주요 언론에서는 21일 일본대사로 우리나라에 일본대사로 와있는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씨가 청와대가 보낸 명절 선물을 반송하고 강력히 항의했다는 보도를 했다. 이유는 포장지 때문이었다. 청와대가 보낸 설 선물의 포장에는 독도로 추정되는 두 섬 사이에서 동해의 일출이 디자인되어 있었다. 선물을 거부한 일본대사관은 다케시마는 일본의 영토라며 이를 자신들에게 보낸 것을 도발로 간주하고 항의했었다.

 필자는 여기에서 가슴을 쓸어내렸었다. ‘일본대사의 무식함이 우리의 무식함을 가렸구나!’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담겼던 선물의 술은 일본이 개발한 방법을 사용해서 만든 소주였다. 생산은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것으로 포장되었지만 일본에서 1970년대에 개발한 방식이었다.  






 우리나라 신문사 기자가 사용하는 니콘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신문에 올리는 것이나 독도로 보이는 두 섬 사이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담은 포장 속 우리도자기에 담긴 일본식 감압소주나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일본의 대사가 조금이라도 술과 관련한 인문학적 지식이 있었다면 고노다로의 ‘니콘? 캐논?’ 못지않은 ‘일본식 감압소주?’라는 질문만으로 우리나라의 문화재관리 실태를 꼬집을 수 있었지만 그는 기회를 보기 좋게 날렸다. 그래서 필자는 안도했다. 






 우리는 참고로 일본에서 시작된 감압식 소주를 1986년부터 중요무형문화재로 보존하고 있다.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말이다. 포장과 그릇은 한국의 전통을 담았지만 내용물은 일본의 제조방식을 담은 선물로 조롱당할 뻔했던 일화다. 자칫 또 한번 제대로 조롱당했을 외교사의 해프닝이 아무도 모르게 넘어갈 뻔했지만 이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이제 알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무형문화재를 관리하는 문화재청과 선물을 준비했던 청와대의 인문학적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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