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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일세 May 16. 2022

전통은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전통이 되기 위해 언론플레이를 하는 기업

전통이 되고 싶은 아이(술)가 있다.     






 2005년에 태어난 술이 있다. 누가 인정해주지 않지만 스스로 전통이라는 범주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어디를 가든 ‘나는 전통 술이다.’는 주장을 했고 인정받으려 애썼다. 한 언론사가 이 술의 집요한 주장에 현혹되어 편드는 기사를 썼다. 정확히 말해 기자가 기사를 쓴 것이다. 






 소주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나라에서 증류한 술을 의미하는 단어는 소주다. 소주는 증류방식에 따라 분류한다. 단을 여러 개 쌓아 연속식으로 알코올을 증류해 순도를 95%까지 높인 주정을 만든 뒤에 물로 희석해서 마실 수 있게 만든 소주를 희석식소주라고 불렀다. 이와 달리 단이 하나인 단식증류기를 사용해서 만든 소주를 증류식소주라고 한다. 여기에서 단식증류기를 활용한 두 가지의 증류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우리가 생활하는 일상(日常)의 압력인 1기압 상태에서 증류하는 것을 상압(常壓)식 증류라고 한다. 같은 단식이지만 일반적인 1기압보다 낮은 기압에서 증류하는 것을 감압(減壓)식 증류라고 한다. 정유회사에서 석유를 분류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었지만 1970년대 초 일본에서 술을 증류할 때 사용하면서 시작된 증류방법이다. 






 감압식 증류는 증류기 내부의 압력이 외부보다 낮아야하기 때문에 증류기의 외형이 찌그러질 수도 있다. 그래서 감압증류기를 만드는 재질은 이러한 힘을 버텨낼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내부압력을 일부러 줄여야 해서 진공상태를 만들기 위한 여러 설비가 붙었다. 흙을 구워 만든 기존의 소주고리나 은이나 동처럼 약한 재질을 가진 증류기로는 불가능한 증류방법이었다. 그래서 스테인리스라는 재질의 합금을 산업화한 1912년이 한참 지나서야 증류에 적용하게 된다. 






 산에서 물을 끓일 때 평지에서 물의 끓는점인 100℃보다 낮은 온도에서 끓는 이유는 압력이 낮아서다. 압력을 줄이는 만큼 끓는점도 낮출 수 있는데 이를 활용해서 증류기 내부의 압력을 줄여 낮은 온도에서 증류식 소주를 만들어내는 게 감압증류의 목적이다. 감압은 상압상태의 에탄올이 끓는점인 약78℃보다 낮은 온도에서 증류가 가능하기 때문에 온도를 높이려고 사용되던 연료비용을 줄이는 장점이 있다. 소주를 만드는 회사에서는 비용이 줄어드는 만큼 이익이 증가하거나 판매가격을 낮출 수 있어 상압증류소주에 비해 가격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 또 한 가지는 맛과 향을 들 수 있는데 상압증류에 비해 낮은 온도에서 증류하다보니 가열로 인해 발생하는 냄새가 적어 음용하는 사람들의 거부감이 적을 수 있다. 이는 개인차가 있다.






 이런 이유로 일본 내에서 감압증류를 사용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시간이지나 우리나라에도 감압증류가 전해졌다. 2005년에 시장에 나타난 소주는 일본에서 전해진 이런 방식을 사용해서 만들어진 소주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기업은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어떤 방식을 사용해도 상관없다고 본다. 그러나 전통이나 무형문화재라는 것을 논하는 기준으로 이야기한다면 전혀 다른 것이 된다. 앞으로 50~80년이 지난 시점에는 우리나라에서 감압증류로 소주가 생산된 지 100년이 넘어가기 때문에 혹여 전통으로 여겨질 수도 있고 문화재로 인정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단 지금은 아니다. 그리고 선택은 소비자가 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주장한다고 해서 전통이 되고 무형문화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주정에 물을 넣어 만든 희석소주가 우리나라 땅에서 만들어진지가 100년이 넘었지만 희석소주를 전통주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왜일까를 생각해봐야한다.  






 증류식 소주라는 명칭을 얻었지만 이를 전통이라고 할 수 없음에도 오류가 계속되자 사람들은 감압증류소주가 전통주라고 어느새 믿고 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전통은 어느 정도의 시간을 의미하는가? 질문에 대한 답은 개인적 기준에 따라 각각 다를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보면 10~20년이 아닌 그래도 100년은 넘어야 전통으로 인정할 수 있지 않느냐가 중론이다. 개인의 역사나 회사의 역사를 따질 때 10년과 20년도 짧은 역사는 아니다. 






 전통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게감이 있다 보니 10년~20년 내지는 50년의 시간이 흐른 것을 전통이라고 부르기에는 조심스럽다. 뭔가 부족하다. 아무래도 모자라다. 아직 자라지도 않은 아이가 어른인양 행세하는 어색함이 있다. 세상물정을 몰라 판단의 기준을 잡지 못한 채 어리광을 부리는 어린이가 이런 주장을 한다면 귀엽게라도 봐주겠지만 어느 정도 세상 경험도 있고 물정을 아는 어른이 하는 주장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할까? 억지다. 전통적으로 만들어졌던 우리나라 소주는 고려 때 유입된 이후로 지금까지 상압증류를 정통방식으로 해서 만들어졌다. 






 우리보다 먼저 감압증류를 시도한 일본조차도 이 방식으로 만든 소주를 전통소주라고 부르지 않는다. 얼마 전 서울시장선거에서 한 후보가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사자성어를 인용했다. 그 후보가 말한 억지 경우보다 이경우가 더 잘 들어맞는 표현이라고 느끼는 것은 필자만일까? 






 2005년에 태어난 이 소주는 지옥으로 여겨지며 음지에 있던 증류식소주시장을 양지로 끌어내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한 공로는 인정해야한다. 계속되는 적자에도 막대한 자금을 들여 뚝심을 이어왔다.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2015년이 되어서야 겨우 돈을 벌기 시작했다. 이 도전은 증류식 소주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선도적인 기업의 모습. 거기에서 멈췄어야 했다. 






 전통으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이들보다 먼저 감압증류방식을 사용하면서도 전통으로 인정받고 무형문화재의 칭호까지 받은 소주가 있기 때문이다. 쿠데타로 들어선 군사정부시절 국제적인 행사를 앞두고 우리나라의 먹거리를 홍보하기 위해 허겁지겁 대충해서 만들어진 주류와 관련된 무형문화재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다. 이 오류를 전통으로 인정할게 아니라면 처음부터 있던 오류부터 바로잡아야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고 첫 단추를 잘 꿰어야 옷을 단정히 입을 수 있다.






 술에 무형문화재의 지위를 처음 부여할 때부터 오류가 있었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과 기사가 온라인에 떠도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잘못된 주장은 대한민국의 전통문화에 서투른 외국인에게 오리지널인양 알려지고 있다. 공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이 문화에 대한 식견이 없고  정체성을 채워줄 제대로 된 학계의 연구가 없다보니 이런 오류가 판치고 있다. 






 마실 줄만 알지 제대로 된 지식과 사고가 결여된 문화재 담당 부처와 공무원이 삼인성호에 기여하는 사이 대한민국의 문화재에서 일본이 전수해준 기술의 숨결이 느껴지고 있다. 웃기게도 정부마저 이것을 우리의 것인 양 홍보하며 청와대의 만찬주에까지 이름을 올리게 했다. 






 그들도 먹고살아야하는 기업이기에 소비자의 기호를 맞추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그것은 제품의 영역이지 전통과 문화재의 영역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싶다. 그들도 안다. 그럼에도 우리의 전통이 아닌 것을 전통인양 호도하는 것에는 따끔하게 혼을 내야한다. 잘못된 역사와 인식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는지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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