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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일세 Jul 05. 2023

비어 만든 지게미를 우유만드는 젖소에게 먹였더니...

결국 고름우유를 만들어냈다,

비어를 만드는 재료는 사료로도 쓰였다.      





     

 화려한 야경을 자랑하는 세계금융의 중심지 뉴욕. 즐비한 고층 건물과 출‧퇴근 시간에 막히는 교통체증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뉴욕의 모습이다. 오늘날 뉴욕의 일부가 된 브루클린은 지금의 화려함과 거리가 멀던 1800년대에 유럽에서 밀려드는 이민자로 도시가 확장되던 곳이었다. 당시 유럽의 여러 나라는 기존의 세습된 질서를 깨려는 시민혁명 등의 봉기가 일어나 혼란스러웠다. 그 공백을 상업의 성장과 자본의 결집이 만들어낸 새로운 질서로 대체하려던 시기였다. 유럽의 혼란을 피해 도이치와 벨기에, 아일랜드에서 아메리카드림을 꿈꾸며 왔던 유럽인은 주로 브루클린에 정착했다. 이민자 신분으로 낯선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주조처럼 단순한 일이었다.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들의 활동으로 주조장 수는 48곳에 이르렀고 20세기 초까지 USA 주조를 이끈다. 브루클린의 비어가 인기를 끌자 일자리가 늘며 유럽까지 소문이 퍼져 아메리카 드림을 고민하던 이민자의 기대치를 키웠다. 이런 흐름은 브루클린에서 또 다른 산업을 자리잡게 했다. 소를 키워 우유를 생산하는 낙농업이다.






 얼핏 생각하면 비어를 생산하는 주조업과 우유를 생산하는 낙농업의 상관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두 업종을 연결한 고리는 보리나 밀을 발아시킨 곡식(이하 맥아)이었다. 브루클린의 주조장에서 비어를 만들려면 누구나 알다시피 맥아가 필요했다. 생산되는 비어가 증가할수록 사용되는 맥아도 비례해서 늘어났다. 사용한 맥아(이하 지게미)는 당분이 감소했을 뿐 가축이 먹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오늘날도 지게미를 닭이나 오리 같은 가금류 사료로 사용한다. 당시 낙농업자들이 생각했을 때 지게미를 소에게 먹이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봤다. 거기에 많은 학자와 기술자의 노력으로 냉장 기술이 발전을 거듭하며 일 년 내내 비어를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이를 달리 말하면 일 년 내내 소의 먹이가 생긴다는 걸 의미했다. 






 사업적으로 유리한 점이 확실해지자 브루클린으로 모이는 낙농업자와 그들이 몰고 오는 소의 수가 갈수록 늘었다. 주조장은 지게미를 폐기물로 간주해 그동안 비용을 들여 처리했는데 돈 받고 팔 수 있으니 비용 감소와 판매 이익까지 생겨 이중으로 이득을 봤다. 낙농업자도 소의 먹이에 쓰이는 비용이 줄어 모두가 만족하는 거래였다. 주조장에서 주조를 갓 끝낸 뜨거운 지게미는 연결관을 통해 소들이 기다리는 여물통으로 이동했다. 두 업종의 이해가 맞아떨어지자 1820년대 브루클린 근교에 낙농장이 하나둘 늘었고 규모의 경제로 인해 소를 많이 키울수록 이익이 증가했기에 소의 수도 늘었다. 1830년대 브루클린 근교에 1만 8천여 마리 소가 길러질 정도로 낙농업의 규모는 성장했다. 한 곳에서만 2천여 마리를 키우는 경우도 있었다. 






 생산량에도 영향을 줬다. 지게미를 먹는 소가 생산하는 우유의 양이 그렇지 않은 소보다 많았다. 모든 사업가가 꿈꾸는 비용절감과 생산증가를 지게미가 낙농업자에게 가져다주면서 건초는 아예 주지 않고 지게미만 먹여 키우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런 낙농 환경의 변화에 소가 적응을 잘 못 하면서 새로운 문제를 유발했다. 지게미를 먹은 소가 생산하는 우유 품질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건강한 소에서 좋은 우유가 나오기 때문에 우유 생산에 있어 소의 건강은 필수조건인데 뜨거운 지게미를 먹다 보니 입 안에 상처가 생겨 염증이 발생한 거다. 당시 USA의 동부에서 우유를 마시던 사람들은 이런  젖소가만든 우유를 마셔야했다. 그렇다보니 이를 감추기 위해 우유에는 넣지말아야 할 불필요한 것들도 담기게 된다.






 또 소의 위는 우리가 알듯이 4개다. 풀이나 건초를 먹이로 하는 소의 특성상 반추 즉, 되새김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소는 이 과정에서 산도(이하 ph)가 낮은 먹이(산성)를 ph를 높여서 알칼리화해 다른 위와 장기를 거친다. 그런데 지게미는 이미 잘게 부숴져 있어 되새김이 필요없는 상태다 보니 ph가 낮은 상태에서 다른 위와 장기로 이동했고 장기의 점막을 손상시켜 염증을 유발했다. 낙농업자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저렴한 지게미를 자주 먹이면서 소는 점차 병들거나 약해져 꼬리가 썩거나 궤양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후 건초와 지게미의 비율을 조절하면서 문제를 보완하긴 했지만 지게미를 소의 먹이로 사용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병든 젖소가 생산하는 우유는 낙농업자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 계속 생산되어야 했다. 주조업자와 낙농업자의 공생관계는 주조장에서 술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금주법이 발효되는 1919년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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