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을 자극하는 붉은 빛의 토마토라는 식재료가 우리에게 찾아왔다.
지지 않는 땅 위의 태양 붉은 토마토
에스파냐가 남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가져온 것은 식재료는 감자만이 아니었다. 감자와 같이 유럽으로 전해진 이 채소는 과일과 채소의 중간에서 잠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채소로 인정하는 흐름이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고 있는 채소가 되었다. 그만큼 다양한 조리법이 만들어져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있는 식재료로 우리도 피자나 파스타는 물론 샐러드나 주스로 많이 소비하고 있다. 소비량만큼이나 생산량도 많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채소. 바로 토마토다. 토마토는 붉은색과 생김새 때문에 초기에는 주로 관상용으로 재배되었다. 유럽에 전해졌던 당시 독성 있는 식물로 알려진 벨라돈나(Belladonna)의 열매 맺힌 모양과 토마토의 맺힌 모습과 너무나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에스파냐로부터 이탈리아의 주요 항구도시인 나폴리에 토마토가 알려지면서 토마토를 식재료로 사용하는 요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차츰 토마토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이탈리아 요리의 대부분에 각기 다른 쓰임새로 토마토가 사용되었다. 주식(Main dish)에서 곁들이는 부식(Side dish)까지 토마토가 등장하지 않는 음식을 찾는 게 더 쉬울 정도였다. 나폴리를 중심으로 위에 있는 로마와 토스카나, 피렌체 일대까지 토마토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다양한 음식에 사용되며 토마토의 붉은 빛은 식욕을 부르는 매력적인 식재료로 알려지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토마토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식재료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러던 중 토마토의 역사에 길이 남을 새로운 이정표가 되는 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 사건은 이탈리아의 유력가문과 프랑스 왕가의 역사적인 결혼이었다. 교황 클레멘스 7세는 자신의 친척인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을 1533년 프랑스 왕의 둘째 아들인 앙리 왕자와 결혼하도록 주선하여 성사시킨다. 카트린이 결혼을 하면서 프랑스로 함께 갔던 이탈리아의 요리사들은 당시만 해도 미개했던 프랑스에 음식이 갖춰야 할 맛과 조리법은 물론 식사할 때 사용하는 포크 같은 선진문물을 전해주게 된다. 더불어 식사 예절 같은 식문화까지 전하게 된다. 식사 후 마카롱 같은 디저트를 먹는 것도 이탈리아 요리사들이 프랑스로 전한 새로운 문화였다. 이탈리아 요리사들은 프랑스의 사교계에 식탁에서 채워야하는 것은 단순한 배부름이 아닌 프랑스인의 품격이라는 것을 가르쳤기에 프랑스에게는 이탈리아의 식문화가 식탁의 혁신이었다.
왕세자였던 프랑수아가 사망하면서 앙리 왕자는 1547년 국왕에 즉위하게 되었고 카트린은 프랑스 왕비가 되었다. 이후 왕이 먹는 식사는 물론 왕실이 주관하는 파티에서 이탈리아의 요리는 보다 자주 등장했다. 프랑스에서 자주 치러진 상류층의 대규모 연회나 사교모임에서 이탈리아 요리를 내놓는 것은 고급스러움을 상징했고 연회를 주최하는 사람의 부(富)와 지위를 나타내는 바로미터 역할을 했다. 프랑스인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토마토에 입맛을 사로잡히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프랑스에게 이탈리아 요리와 토마토는 더 이상 외국의 요리와 식재료가 아니라 프랑스의 요리이면서 프랑스의 식재료였다. 토마토라는 식재료는 기존의 프랑스 음식에서도 자연스럽게 사용되면서 프랑스인들에게 스며들게 되었다.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사망 후 아들인 앙리 3세도 사망하면서 발루아 왕조가 문을 닫고 사위인 앙리 왕자가 앙리 4세로 즉위하면서 부르봉 왕가를 열게 된다. 예전에 장모였던 카트린에게 죽을 수도 있었던 앙리 4세가 두 번째로 맞아들인 왕비인 마리드 메디시스는 아이러니하게도 메디치 가문의 여성이었다. 시간 차이를 두기는 했지만 이탈리아의 문화가 프랑스로 꾸준히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이 계속되었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 사교계에는 이탈리아의 식문화는 물론 요리에 따른 식재료도 거의 프랑스화 된다. 그렇게 토마토가 프랑스에도 정착한다.
프랑스가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은 것은 토마토뿐만이 아니었다. 고대 로마 때 갈리아 지역으로 불렸던 프랑스에 로마가 진출하면서 전해졌던 포도는 포도주의 주조는 물론 지속적인 포도주 생산을 가져와 정착했고 오늘날 프랑스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남게 된다. 이후 신대륙은 물론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에서 잉글랜드와 경쟁하듯 식민지를 건설했던 프랑스의 노력(?)으로 인해 포도주는 물론 프랑스 요리문화의 주요 식자재 중 하나로 자리를 잡은 토마토는 전 세계의 식문화에 영향을 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