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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일세 Jul 10. 2023

기네스의 하프, 아일랜드의 하프

기네스의 하프, 아일랜드의 하프     






 황금빛의 화려함을 검은색으로 안정시키는 조화로 인해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 외관을 가지고 있는 기네스(Guinness)의 드라프트(Draught)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수입 비어 중 하나다. 캔이나 병 안에 든 위젯은 기네스를 선택한 사람들에게 맛과 더불어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바로 고운 입자의 거품이 유리잔 안에서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이다. 이는 입자가 작고 고운 거품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이런 현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위젯 안에는 액체에 잘 녹지 않는 질소가 담겨 있다. ‘스타우트 포터’로 불리는 비어를 담고 있는 병이나 캔의 외관에는 기네스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은 ‘창업 연도가 적힌 하프’가 새겨져 있다. 오늘은 그 하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아일랜드의 역사에 대해 조금 다루려고 한다.






 세르비아 왕국에 오스트라아‧헝가리제국이 1914년 7월 28일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은 1918년 11월 11일 막을 내린다. 이로부터 한 달 뒤인 12월 14일 잉글랜드에서는 총선이 진행되었다. 21세 이상의 모든 남성은 물론 30세 이상의 모든 여성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잉글랜드 최초의 선거였다. 처음으로 하루 만에 치러진 선거에서 보수당(332석)이 과반(354/707)에 조금 못 미치는 의석을 얻고 연립자유당(127석)과 노동당(57석)을 비롯한 나머지 정당들이 의석을 나눠 가졌다. 이 선거의 특징은 신페인(SinnFein, 73석)의 활약이었다. 북아일랜드지역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석권한 신페인은 선거를 통해 아일랜드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확인했으며 잉글랜드 의회로 가지 않고 아일랜드지역 의원만의 의회를 구성한다. 






 그리고 1919년 1월 21일 독립을 선언한다. 잉글랜드는 아일랜드에 군대와 경찰을 보내 이들을 진압하고 치안을 확보하려고 했지만 아일랜드의 끈질긴 게릴라전으로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잉글랜드 경찰이 게릴라를 색출하는 과정에서 민간인을 고문하고 학살하는 것은 물론 그들의 삶의 터전을 불태우는 등 아일랜드인들의 반감은 극에 달했고 민심은 잉글랜드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잉글랜드는 결국 1921년 12월 6일 런던에서 아일랜드대표단을 만나 아일랜드를 자치령 형태의 자유국으로 독립시키는데 합의하고 두나라간의 조약(Anglo-Irish Treaty)을 맺는다. 이로부터 1년 뒤 1922년 12월 6일 당시 잉글랜드 왕인 조지 5세의 선언으로 아일랜드는 자유국의 신분을 갖게 된다. 이때 약간의 잡음이 발생한다.  






 바로 하프 때문이다. 아일랜드사람들에게 하프는 굉장히 신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아일랜드에서 사용되는 하프는 아이리시 하프(Irish harp, 이하 하프) 또는 브리안 보루스 하프(Brian Boru’s harp), 켈틱하프(Celtic Harp)라고도 불린다. 1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것으로 알려진 이 하프는 분열되어 있던 아일랜드를 최초로 통일한 전설적인 영웅인 브리안 보루마 막 케네티그(Brian Bóruma mac Cennétig, 이하 보루마)대왕이 좋아했던 것에서 유래가 시작된다. 하프 연주를 듣는 것은 물론이고 연주에도 소질이 있어 직접 연주를 하며 즐겼다고 한다. 






 941년경에 아일랜드 서남부지역의 소국이었던 ‘달카시아 왕국’에서 케네티그 막 로르칸(Cennétig mac Lorcáin) 왕의 12명 자녀 중 하나로 태어난다. 951년에 전사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형이 집권했지만 2년 뒤에 암살당한다. 또 다른 형이 왕위를 이어 나라를 다스렸으나 바이킹이나 주변 소국과의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보루마도 성년이 되면서 형과 함께 전쟁을 치르며 나라를 이끌었다. 978년 왕이었던 형이 전사하자 35세의 나이로 왕위를 계승했다. 






 소국들 사이에서도 미약한 존재였었던 달카시아 왕국이었지만 보루마는 그동안 치른 전투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얻게 된 통찰력에 군사적인 재능까지 더해져 남부의 소왕국들을 차례로 병합하며 세력을 키웠다. 보루마는 997년 아르드리(아일랜드 전체를 대표하는 통치자)였던 북부의 말 세크날과 함께 아일랜드를 양분하기에 이를 정도로 세력은 강대해졌고 시간이 흘러 결국 말 세크날마저 굴복시키며 아르드리(Ard Ri)에 올라 아일랜드를 통일하기에 이른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 하프를 아일랜드인들은 천국으로 인도하는 악기라고 인식했다. 그래서 십자군 전쟁에서도 아일랜드 출신의 십자군을 위해 하프가 연주되었다. 하프는 아이의 탄생과 결혼처럼 새로운 출발을 축복하는 순간에 연주되었고 전쟁에서 돌아온 용사들의 용맹함을 칭송하거나 전사한 이들을 애도할 때도 연주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하프 연주는 단순한 전통을 넘어 아일랜드인 삶의 일부분을 차지한 문화였다. 잉글랜드에게 정복당했을 때 하프는 아일랜드의 고유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 아일랜드인에게 보루마 왕이 자랑스러운 정신적인 버팀목인 만큼 하프 연주도 아일랜드인의 정체성을 되새기는 계기였다. 하프 연주를 들으며 아일랜드인들은 희노애락의 여러 감정을 교류했고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했다. 하프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기에 아일랜드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잦았다. 






 1759년에 아일랜드의 더블린의 버려진 폐허를 헐값에 임대(임대기간 9,000년)해 양조장으로 사용하던 아서 기네스는 ‘기네스 엑스트라 스트롱 포터’라는 비어를 잉글랜드에 수출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아서 기네스 2세에 이어 벤자민 리 기네스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성장을 하던 기네스는 1862년에 브랜드의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보다 확고히 정착시키려고 아일랜드의 상징으로 이미 알려져 있던 하프를 사용하기로 한다. 기네스의 이름과 창립자 아서 기네스의 서명, 아일랜드 상징인 하프까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상표는 이때 도입된 것이다.






 1922년 12월 6일 잉글랜드는 아일랜드의 자유국 신분을 인정한다. 이때 발생한 잠깐의 잡음이 기네스와 아일랜드 자유국 사이에 발생한다. 아일랜드의 핵심 정체성을 하프라고 판단한 아일랜드 자유국은 나라를 상징하는 국장(國章)으로 하프를 사용하려고 했는데 기네스에서 하프를 레이블에 넣어 오랜 기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부는 정부대로 국가의 상징으로 하프 이미지를 사용하고 싶었다. 국가의 인장, 주화, 여권의 표식부터 공공기관의 서류에 들어가는 표식, 공공 요원의 복장, 국가기념물 등 공공업무에 적용하고자 했다. 






 기네스는 새로운 정부의 뜻에 맞춰 60여 년간 회사의 상징으로 사용해온 상표를 바꿔야 할지 정부의 요청을 거부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때 우연히 거울에 비쳤던 상표에서 힌트를 얻은 기네스는 정부에게 하프의 공명통 방향을 반대로 바꾸는 것을 제안했다. 기네스의 제안에 이해가 맞은 정부도 동의하면서 기네스의 상표에 있는 하프는 기존대로 공명통을 왼쪽에 두고 아일랜드 자유국의 국장에 있는 하프는 공명통을 오른쪽에 두게 된다. 






 이후 아일랜드는 1945년 11월 9일부터 변경된 국장을 정부와 국립대학을 비롯한 여러 국책 기관의 로고에 사용하고 있지만 공명통의 방향은 기네스와 합의한 대로 오른쪽에 두도록 디자인했다. 오늘날 우리가 비어를 마시면서 보고 있는 상표 속 기네스의 하프는 레이블에 하프를 넣기 시작한 1862년 이후 시대별로 여섯 차례에 걸쳐 수정된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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