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의 고부가가치 전략
더워지는 날씨에 시원한 비어 한 잔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오늘날 판매되는 라거에는 과학이 숨어있다. 도이치의 세균학자 코흐(R.Koch)가 개발한 순수배양기법은 한센(E.Hansen)이 라거 효모를 발견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라거 효모를 보급한 한센 덕분에 주조에 널리 사용되면서 오늘날에 라거가 전 세계를 석권하는 계기를 만들어냈다. 그와는 반대로 벨기에를 대표하는 람빅 비어는 오랜 시간 내려오는 비어의 전통 주조방식을 아직도 따르고 있다.
주조환경을 일정한 조건으로 조절해서 균일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라거와는 달리 람빅은 비어를 순수 자연 상태에 노출시켜 발효를 진행한다. 공기 중에 노출된 람빅은 발효가 오래 걸리다 보니 대량 생산하는 라거와 달리 소량의 제품만을 생산한다. 일정한 환경에서 일정한 맛으로 만들어지는 라거와는 달리 람빅은 만들어지는 자연환경이 같더라도 발효되는 오크통에 따라 맛이 다르다. 결국 효율적인 라거보다 비효율적인 람빅의 가격이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람빅을 찾는 마니아 수요층은 꾸준하며 환경의 영향으로 생산에 문제가 생겨 가격이 더 오르더라도 람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아는 소비자이기에 이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프리미엄 비어로 알려진 람빅은 생산량은 많지 않지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장(醬)이다. 대한민국의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발효음식은 크게 5가지로 나눌 수 있다. 김치를 시작으로 술, 식초, 장, 젓갈 등이다. 모두가 오래전부터 전해져오는 자연 발효법으로 만들어졌다. 발효로 음식이 만들어지는 그 시작은 자연에서 자라는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더욱 오래 보관하고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 흔적의 결과물이라 추측된다. 자연의 순리를 지키며 발전시켜 온 대한민국의 발효 문화는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고치고 다듬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 발효만의 독특함이 한류를 통해 여러 나라에 전해져 세계가 즐기는 문화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장(醬)은 다양한 식자재를 보관하는 데 사용되었기에 우리의 식문화가 발전하는데 근본적인 뿌리 역할을 하고 있다. 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건강식이라 볼 수 있다. 더불어 장을 이용해 다양한 야채를 버무려 먹거나 보관하는 데 사용한다. 그릇에 밥과 여러 가지 나물을 넣고 장에 비벼 먹는 비빔밥의 경우 장(醬)은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그 외에도 우리는 일상에서 장으로 국을 끓여 먹는 등 다양한 조리법에 사용되고 있다. 느린 것보다는 빠른 것을 찾는 시대임에도 장은 오늘날 다양한 쓰임새로 우리의 식문화에서 활약하고 있다. 우리에게 전통 장류로 이어져 오는 것은 간장, 고추장, 된장, 청국장 등이다. 만드는 방법과 절차는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모두 콩을 주원료로 사용하여 만들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콩은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단백질(40%)과 식물성 지방(20%)을 포함해 미네랄, 이소플라본, 탄수화물 등이 함유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 일반적인 상태에서는 맛을 느끼게 해주는 요소가 없어 도드라진 맛이 없을뿐더러 영양소의 체내 흡수도 쉽지 않다. 그래서 콩을 물에 넣고 삶아 호화(糊化)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수분을 머금고 열에 의해 호화된 콩은 으깬 뒤 가공을 통해 모양을 만들어 메주를 띄워 발효를 시킨다. 이때 자연 상태에 노출되는 메주에는 콩의 영양분을 먹이로 삼는 누룩곰팡이, 뿌리곰팡이, 분곰팡이, 홍국균과 고초균 등을 포함한 다양한 곰팡이와 세균이 붙어 각각 효소를 내놓으면서 발효 작용을 한다.
효소는 콩에 들어 있는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을 비롯한 여러 영양성분을 잘게 쪼개는 분해를 한다. 이런 작용을 일정한 환경과 조건에 맞춰진 상태에서 진행하는 경우 특정한 균에 의한 특정한 결과값을 얻을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일상적인 조건에 노출시켰을 때는 다양한 균이 활동을 하면서 복합적인 향을 만들어낸다. 황국균만 접종시켜 발효시키는 일본과는 달리 우리의 장에서 다양한 향과 맛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장을 만드는 기초인 메주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효소를 가지는 특성을 가지다 보니 우리의 장이 특별해지는 것이다.
영양분이 잘게 쪼개지다 보니 소화율이나 흡수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콩 속에 들어있는 다양한 영양성분이 우리 몸에 각종 영양을 공급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발효된 메주에는 단백질이 분해되어 생긴 필수아미노산을 비롯해 레시틴, 불포화지방산, 비타민 E, 식이섬유 등을 함유하고 있다. 콩의 특징적인 성분인 이소플라본(Isoflavone)은 여성의 유방암과 자궁경부암, 남성의 전립선암 등의 암세포 증식을 막아 암 예방에 도움을 주며 골다공증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 식이섬유는 간과 혈액의 콜레스테 농도를 저하시켜 혈당을 낮추고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고 대장에서는 장내 유산균의 먹이가 되어 증균(增菌)에 도움을 준다. 비타민 E와 플라보노이드 성분은 노화를 예방하는 항산화 작용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발효는 이와같이 단순히 맛이라는 역할 외에도 발효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알려져 있는 다양한 기능성 성분을 통해 우리 몸이 건강을 찾거나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면역력에 대한 중요성이 주목받았다. 일상에서 어떤 음식을 먹는지에 따라 건강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장(醬)은 여러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들어가다 보니 장의 부가가치를 식품 대기업에서 주목하고 있다. 기존에는 기업이 이익을 많이 남기기 위해 대량 생산체계를 갖추고 저가 재료를 사용하여 규모의 경제로 장을 생산해왔었다면 최근에는 프리미엄에 대한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장류를 만드는 중소업체들 못지않게 좋은 재료와 자연 발효과정을 거치는 장류를 생산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이런 기업의 변화는 소비자의 욕구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산업성장기 시절에는 소비자가 가격에 민감했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고 그저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경제 규모가 성장하고 이에 따른 GDP가 성장하면서 가계의 소득도 점차 증가하였다. 일상의 생활 수준도 예전과 달라지면서 이에 따라 가성비보다는 좋은 재료와 좋은 환경에서 만들어진 좋은 제품을 찾는 소비자의 손길이 늘어나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이런 변화에 기업은 발 빠르게 움직이며 소비자의 니즈에 맞춰 고부가가치를 가진 장류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소비시장이 기업을 중심으로 한 단순한 브랜드 마케팅이었다면 오늘날은 소비자의 니즈가 좀 더 존중받는 시대로 변해가고 있다. 그래서 시장의 규모가 작더라도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소비자의 니즈를 찾으려는 기업들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는 안전이 확보된 먹거리를 안심하고 먹는 것을 넘어 건강(영양)이 담긴 먹거리를 찾고 있다. 거기에 기능성까지 가미된다면 그 제품은 소비자의 눈길을 한 번 더 받을 수 있다. 이런 목표화가 가능한 것이 바로 장(醬) 산업이다. 전통 장류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는 여전하다. 산업화와 함께 찾아온 서구화된 식생활로 인해 대한민국을 사는 국민의 질병 패턴도 달라졌다. 이에 우리에게 이어져 온 식생활의 모습을 되찾으려고 시도하는 사람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다.
청국장의 예를 들어보면 2013년에는 300억 원대의 소비 규모를 유지하다가 2016년 62.4%가 급증한 600억 원대의 소비시장을 형성하였다. 이런 변화의 주된 요인으로 꼽히는 게 일본의 ‘낫토’다. 전문가들은 2006년경부터 형성된 것으로 보는 낫토 시장의 규모를 약 25억 원으로 추산했다. 이후 2017년에 이르러 325억 원 규모로 성장하였을 것으로 추산하는데 이는 약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13배가 성장한 것이다. 건강식품으로 인식된 낫토로 인해 청국장에 대한 인식까지 바꾸면서 소비가 늘었다고 분석될 수 있다. 이는 청국장의 소비시장에 희망을 주는 요인이다. 낫토가 냉장 상태로 유통되는 것을 감안하면 청국장도 유통방식이나 홍보를 통한 인식 변화를 통해 얼마든지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청국장은 발효과정에서 나토키나제와 같은 효소를 만드는데 이는 혈관 건강에 영향을 준다. 발효과정에서 나오는 또 하나의 물질인 폴리감마글루탐산은 칼슘이 체내에 흡수를 돕는다. 또 면역에 관여하는 NK세포의 활성도가 50% 이상 높아지는데도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청국장의 이런 다양한 사례는 콩으로 발효하는 장의 부가가치가 높다는 것을 알려준다.
최근 장류의 직접적인 소비는 감소했지만 ‘코로나19사태’로 인해 급성장한 간편식(HMR) 시장의 영향으로 장을 넣어 만드는 소스가 증가하면서 장류의 간접적인 소비는 계속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여러 사례를 통해 우리의 건강에 장이 기여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해지자 간편식에 전통 방식으로 만든 장(醬)을 베이스로 만든 소스를 첨가하여 고급화 전략으로 추구하고 있다. 식품업계에서는 간편식 시장의 크기를 5조 원 이상으로 보고 있다. 기업들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제품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간편식의 편리함을 강조하면서도 품질의 고급스러움을 내세우기 위해 선택한 것은 전통 방식으로 만든 장(醬)이다. 전통 장류 특유의 풍미를 강조하면서 프리미엄이라는 이미지를 동시에 부각하는 제품의 출시가 늘어나는 추세다.
또 소비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MZ세대의 소비패턴을 보더라도 예전의 대규모로 생산되는 제품보다는 ‘인디브랜드(Indibrand)’라 하더라도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을 이미지를 드러낼 수 있는 상징적인 것을 소비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는 미술품 시장과 전통주 소비시장에서 증명된 사실이다. 앞서서 성공한 이런 사례들을 전통 장류 산업에서 잘 활용한다면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은 물론 다른 나라와 차별화된 우리나라만의 발효 문화의 부가가치 역시 높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