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하는 커플의 주택일상 에세이
나는 아파트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다.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경주’에서 보낸 나는 ‘경주’에서도 1층 이상 높이의 건물이 없는 ‘황남동’에 살았다. 내 초, 중, 고등학교 시절 주거지였던 ‘황남동’은 1층 한옥이 대부분이며, 지금도 고층을 찾기 힘들다.
스물에 경주를 떠나 대학을 다니고자 온 부산에서는 오피스텔 또는 빌라의 원룸에서 지내왔었다. 이때 ‘1평’의 크기를 가늠하게 됐다. ‘1평’과 ‘2평’은 차이가 없지만 ‘9평’과 ‘10평’은 크게 차이가 났다. 원룸에서 ‘1평’은 꽤 차이가 크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부산에 올 때도 ‘1평’에 집착했다. 집착 덕분이었을까? 근방에서는 그나마 넓은 원룸을 구해 지낼 수 있었다. ‘1평’에 집착하면서도 좁은 원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20대를 보내고 나니 나는 유년 시절을 보낸 주택이 너무 그리웠다.
그러던 중 친한 친구 P가 아파트에 있는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고, 집들이에 초대됐다. 친구 P는 우리에게 소중한 친구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적에 나와 진하는 어미 잃은 고양이 두 마리를 구조했었고, 고맙게도 친구 P가 고양이 두 마리를 가족으로 받아줬다. 길에서 온 고양이들은 어느새 2살이 되었는데, 한 놈은 라떼(치즈), 한 놈은 모카(고등어 태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P는 10년을 한 원룸 건물에서 지내고 있었다. 심지어 주인이 한 번, 세입자들이 수십 번 바뀌는 동안에도 그녀는 그 자리를 지켰다. 굳건하게 원룸에서 생활하던 P는 회사생활을 시작하고, 두 마리의 식구가 늘면서 넓은 집으로의 이사를 결심했다. 버스를 갈아타지 않고도 출퇴근을 할 수 있는 위치의 빌라에 투룸으로 이사를 했다. 부모님이 도움을 준 전셋집이었다.
P가 키우는 고양이 라떼는 말이 많은 고양이다. 간식을 달라 보채기도 하고, 만져달라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친구 P 옆에서 종일 웅얼거렸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 라떼는 새벽에도 말을 걸었다. 불행하게도 방음이 되지 않는 건물이었는지 아래층에 사는 세입자가 문을 두드렸다. 아래층에 사는 세입자가 불만이라고 해도 라떼는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고양이었기에 주인이 속상한 마음과는 다르게 계속 울었다. 친구 P는 새벽에 잠들 수 없었고, 항상 피곤해했다. 그 기분이 고양이들에게도 영향을 줘서 세 가족은 피가 말랐다. 친구 P는 음료수 세트를 들고 찾아가서 인사도 해봤건만 아래층 세입자는 생각보다 강적이었다. 결국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몇 개월 만에 전셋집 계약을 취소하고, 이사를 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는 더 좋은 위치의 아파트 전세로 이사하게 되었다.
아파트는 낡은 옛날식 아파트지만 인테리어는 새로 해서 겉과 속이 다르다고 했다. 친구의 집은 6층. 이 건물엔 엘리베이터가 없다. 4층 계단에 발을 디딜 땐 이쯤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6층에 올라서면 여름에는 땀이 나고, 겨울에도 땀이 난다. 그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은 변기가 토하고 있는 사진이 층마다 붙어있다는 사실이다. ‘변기에 생리대, 음식물을 넣지 마세요. 변기가 토합니다.’라는 경고인데, 계단을 오르는 동안 안 보려 노력해도 6층까지 오르는 동안 하나도 안 보긴 힘들다. 이 경고를 보지 않으면 넌 6층으로 오를 수 없다고 경고하는 듯도 했다.
심지어 내가 사는 곳은 대연동, 친구 P가 사는 아파트는 낫개이다. 차로 가면 40분,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하면 1시간 20분이 소요되는 먼 곳이다. 차가 없는 나는 대중교통으로 느리게 여행하듯 가야 했다. 왜 이렇게 높은 곳에 힘들게 사는 걸까 고민하며, 문을 여는 순간 너무도 아늑했다. 알쓸신잡에 나왔던 유현준 건축가의 말처럼 이게 ‘시퀀스’가 주는 감동일까. 친구네 집은 세입자 모두가 원할 것 같은 하얀 벽지가 기본이었고, 모두가 혐오하는 체리몰드가 아닌 베이지 원목이 바탕이었다. 친구는 그 안을 원목 가구와 흰 색의 가구들로 배치했다. 공간이 넓어지니까 인테리어도 예뻤다. 비어있는 공간에 있는 가구는 더 가구다웠다.
집들이에 초대된 우리는 친구가 차려 준 맛있는 요리에 1차 감동. 2차로 공간에 크게 감동했고, 넓은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도 간절해졌다. 넓은 베란다에 침실, 화장실, 옷방, 주방, 손님용 방, 캣타워도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의 집. 고양이들도 행복해 보였다. 다만 겁많은 고양이 친구들은 우리가 있던 순간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친구 P가 보여준 아이폰 사진첩에는 방 구석구석을 즐기는 고양이 사진이 가득했다. 그 집은 찾아가기 힘든 집인 만큼 나오기도 힘들었고, 무려 비어있는 방에서 밤을 보내고 점심과 저녁까지 다 챙겨 먹고 나왔다.
원룸에 살던 우리는 좁은 공간에 갇혀있기보다는 밖이 좋았다. 평일 어느 날의 휴무, 그날도 원룸에 갇혀있기 싫다며, 밖으로 나섰다. 우리의 데이트는 대부분 골목을 걷거나 카페를 가서 얘기를 나누거나 하는 것인데, 어느 날 진하가 부동산에 가보자고 했다. 모은 돈도 한 푼 없는 나를 데리고 전셋집을 보러 가자며, 나섰다. ‘이 녀석이 나 몰래 돈을 많이 모은 모양인데?’라는 하찮은 기대도 했다. 우리의 주머니 사정은 빤한데도 말이다.
처음 간 부동산에서 우리는 낡은 아파트를 얘기했다. P의 집을 기대했다. 하지만 혐오스러운 체리몰드와 발바닥이 들러붙는 장판, 우리 수준에 맞는 아파트였지만 기대한 집과는 달라 고민이 됐다. 나온 김에 다른 부동산에 들러보기로 했다. 골목마다 부동산이 하나씩은 있다. 발에 치이는 카페보다도 부동산이 더 많아 보였다. 우리가 부동산을 선택하는 조건은 단 두 가지, 건물 외관과 직원의 얼굴. 적당한 크기의 건물에 적당히 친절한 아주머니가 있는 부동산에 들어갔다. 기대했던 직원은 그 아주머니였지만 다른 아저씨가 나와 우리를 안내했다. 금액을 듣더니 괜찮은 빌라가 있다며, 우리를 안내했다. 빌라라고 하니 왠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를 따라나섰다.
우리가 사는 원룸 건물에 있는 투룸, 그 느낌이었다. 평수에 비해 좁아 보였고, 베란다는 없었고, 어두웠다. 그 집은 전세가 1억이라고 했다. 요즘 전세가 흔치 않다며 추천하는데, 내키지 않았다. 낡았지만 넓은 아파트와 깔끔하지만 좁은 빌라 투룸. 이게 우리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인가. 조금 슬퍼졌다. 그때 우리와 함께 있던 아저씨의 전화가 울리고, 주택 하나가 있다며 보러 가자고 했다. 그 전화는 우리가 그 부동산을 선택하게 만들었던 부동산 직원 아주머니의 전화였다. 주택? 주택이라는 말에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아저씨는 젊은 우리가 지내기엔 빌라가 나을 것이라 했다. 아마도 아저씨는 주택으로 우리를 데려가며 속으로는 헛걸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도착한 주택은 하늘색 철문을 열자 담장에 초록색의 담쟁이가 가득했다. 주택답게도 마당에 개가 짖었고, 집에 들어서자 2살 정도로 보이는 아기와 아이의 할머니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낡은 주택이었지만 인테리어를 새로이 해 주방도 깨끗하고, 바닥도 깨끗했다. 아마 아이가 있는 집이라 더 깨끗했던 것 같다. 작고 넓은 방이 세 개, 짐을 넣을 수 있는 다락 하나, 부엌, 화장실, 세탁기가 간신히 들어가는 세탁 공간, 신발장이 있는 현관은 베란다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적당히 넓은 마당. 뒤이어 걱정도 됐다. 세탁기도 사야 하고, 냉장고도 사야 한다. 여름이 다가오니 에어컨도 있어야겠지. 우리 이 집에 와도 되는 걸까? 바로 계약할 수는 없었다. 뒤이어 오는 걱정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전세금이 1억 2천, 대출을 받는다고 해도 2천 4백은 우리가 있어야 하는 돈인데, 나는 한 푼 없는 사람이었다. 이사비용이나 댈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
하루 더 고민했고, 하루 더 방문했다. 집은 다시 봐도 괜찮았다. 진하는 그 길로 누나와 매형에게 전화해 돈을 빌렸고, 부동산에 전화해 계약하겠노라 선언했다. 그저 데이트처럼 부동산에 다녀왔을 뿐인데, 우리는 집을 계약하는 일을 저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