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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음 Apr 22. 2019

마당의 사계

동거하는 커플의 주택일상 에세이

4월의 마지막 날 이사를 했다. 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장미가 흐드러지게 폈다. 장미가 꼿꼿하게 설 수 있도록 지지대를 받쳐 묶어주었다. 장미가 질 무렵 대문 위 작은 텃밭에는 부추와 상추가 가득했다. 삼겹살을 먹을 때마다 부추를 따서 고춧가루와 멸치액젓, 약간의 식초, 설탕과 버무려 함께 쌈해 먹었다.


장미의 옆에 있던 나무에서도 초록색의 잎이 났다. 감나무였다. 감나무 잎은 우리가 키우는 토끼인 리리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반질반질하고 큰 잎이 나기에 우리는 깨끗하게 헹궈 리리의 간식으로 주었다. 감나무에 열린 감은 우리가 수확하기엔 너무 높았고, 까치의 밥이 되었다. 못 먹는 감이라. 이럴 때 쓰는 말인가.


감나무 옆의 큰나무 한 그루가 더 있다. 그 나무는 우리 마당에서 가장 큰 나무다. 어떤 나무인지 궁금했다. 어느 날엔 귤처럼 열매가 열렸다. 내가 아는 귤나무보다는 커서 귤이 아닐 것이라 짐작했다. 귤같이 생긴 열매는 조금 더 컸다. 혹시 한라봉이나 천혜향인가도 생각했다. 고민만 하다가 잘 익어 떨어진 열매를 손에 쥐고 냄새를 맡았다. 유자였다. 우리 마당에 유자가 있다니 매우 놀랐다. 놀람과 함께 의지가 생겼다. 유자청을 담아보겠다! 잘 익은 유자를 네 개 정도 수확했다. 게으른 내 손에 들어온 네 개의 유자는 주방에 머물러 있다가 마당의 비료 신세가 되었다.



봄, 여름, 가을, 진하는 부지런히 마당에 물을 줬다. 겨울이 되고는 진하도 나도 마당에 무관심했다. 담을 뒤덮고 있던 담쟁이도 잎이 바싹 말라 떨어지고, 모든 나무의 잎이 하나씩 갈변하여 떨어졌다. 예쁘고, 아름다웠던 모습은 없고, 스산했다.


다시 봄이 되자 마당에 천리향이 피었다. 천리향은 작은 나무인데, 세 그루 중 두 그루가 겨울 사이 우리의 무관심에 죽고, 한 그루만 살아남았다. 집에 들어서는 골목에서부터 천리향 냄새가 났다. 다른 이름으로는 서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향수의 원료로 쓰인다고 들었다. 가히 그럴만한 꽃이었고, 향기였다.

천리향이 한창일 때, 언제 필까 궁금했던 동백의 봉우리가 활짝 피었다. 동백꽃은 걱정될 정도로 한 나무에 많은 수의 동백꽃이 주렁주렁 열렸다. 동백꽃이 하나, 둘 떨어지고 나면 장미의 새잎이 반질반질하다. 곧 처음 만났던 모습처럼 장미꽃도 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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