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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음 May 06. 2019

나의 사랑 리리

동거하는 커플의 주택일상 에세이





첫 직장은 대학을 나온 부산이었다. 회사 근처 원룸에서 생활을 시작했을 때, 친한 동생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며 토끼 한 마리를 내게 맡겼다. 암컷이었고, 흰 바탕 90%에 연한 갈색 털이 10%인 뽀얀 아이였다. 이 친구의 이름은 ‘리리’다. 우선 1년만 맡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게 살아있는 동물과 1년을 지내고 이별을 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리리는 내게로 와 10살 할머니가 되었다.



원룸에서 지내면서 리리에게 나는 그리고 진하는 죄인이었다. 원래 주인은 꽤 넓은 공간에 리리를 키웠었는데, 나와 함께한 순간부터 10평 남짓한 공간에 생활했다. 2kg 조금 넘는 작은 생명체가 얼마만큼의 공간이 필요한지 가늠되진 않지만 어쨌든 좀 더 넓은 집에서 작은 집으로 이사했을 때 상실감을 느끼진 않았을까 걱정됐다. 그래서 리리를 우리에 가둬두지 않았다. 리리가 침대 위로 올라오면 같이 놀았고, 사고를 쳐도 혼내지 않았다.



리리와 보낸 7년 동안 리리는 나보다 더 빨리 늙었다. 리리는 이미 자궁암 수술을 한 차례 겪은 아이인데, 10살이 되자 유선암이 생겼고, 그 암 덩어리는 자꾸만 커져만 갔다. 전셋집을 얻어 넓은 집에 리리를 내려두었을 때, 리리는 신기한 듯 이 방 저 방 킁킁거리고, 뛰었다. 그 모습을 보자 진하와 나는 전셋집 빚 걱정도 남 일처럼 느껴졌다. 원룸에서 지낼 때의 리리는 활동량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리리가 늙어서 그러려니 생각했다. 지금의 리리는 처음 왔을 때보다도 더 사고뭉치다. 방 한쪽의 장판을 다 뜯어 시멘트 바닥을 보이고, 몇 년 묵었을 벽지 속 벽지 무늬도 내게 보여준다. 그런 리리를 볼 때마다 “우리 리리 젊어졌네.” 하고 웃는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2월 23일 새벽, 리리가 우리 곁을 떠났다. 나이 때문에 치료할 수 없었던 암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죽으면 내가 키우던 동물들이 나를 마중 나와 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믿는다.










덧붙이며,


좁은 공간인 원룸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시간은 미안한 마음이 너무도 컸습니다. 조금 넓은 주택으로 이사했을 뿐인데, 나의 첫사랑이었던 '리리'는 행복해 보였어요. 리리의 시간이 나와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걸 까먹었던 저는 리리에게 그 행복의 시간을 빨리 선물해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듭니다. 글을 쓰며, 리리가 자꾸만 생각이 나서 리리의 유골함을 깨끗하게 닦아봤습니다. 리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게 살고 싶다는 눈빛을 보내왔어요. 그 표정이 자꾸만 떠올라 또 눈물이 나네요. 반려동물이 곁에 있을 때, 우리 더 잘하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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