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정원사 안나 Dec 23. 2023

우리가 애를 낳지 않는 이유

효율 만능주의, 정신적 가뭄의 시대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기사에 오르는 주제가 있다. '인.구.소.멸' 

지금의 추세라면 2040년에는 유소년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고,  50년 뒤에는 전체 인구에서 1400만명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다. 인류학자에 더하여 일론 머스크가 나서서 2300년에는 대한민국 자체가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릴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출산률 0.7은 흑사병이 창궐했던 시기 인구 감소율보다 더 가파른 자발적 인구감소라고 하니 전 세계의 학자들이 혀를 내두르며 위기론을 내세울만 하다. 한 노학자가 국내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싸며 두 눈알이 빠질듯 경악스런 표정을 짓는 사진은 한동안 뉴스 전면에 실렸고, 이 사건이 얼마나 쇼킹한 것인지 다시한번 일깨워주었다. 우리는 경제 성장률에 이어서 또한번 세계를 놀라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이런 일은 오래 전부터 예고되지 않았던가? 나는 많은 젊은이들이 이미 자라면서부터 자식을 낳지 말아야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정부에서 내놓는 수많은 대책들, 아이를 낳으면 몇 십만원을 준다는 정책부터, 다자녀 가족에게 아파트 분양, 세금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 법안까지, 이런 대책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돈이 없어서 아이를 안낳는다고 생각하는가? 정말 돈이 없어서 아이를 안낳는 다면 그렇게 한달에 몇십 만원 주는 돈으로 그 갭을 메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가?


정신적 가뭄의 시대 


문제는 돈을 제외한 나머지 가치가 사라져 버린 정신적 가뭄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의 사회는 모든 것을 효율성으로 생각한다. 무엇이든 성과를 내야 하고 그리고 그것은 돈으로 환산이 된다. 세상의 어떤 일도 돈으로 환산되지 못하면 인정을 받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지금으로서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돈으로 환산하지 못하는 가치들에 더 소중하게 여겼던 때가 있었다. 달동네에 병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의료 봉사를 하는 의사들을 귀하게 여겼고, 아이들의 미래를 밝혀주는 선생님을 존중했다. 가난과 역경 속에서도 자식들을 길러내는 어머니의 사랑을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어떤가? 집에서 아이를 기르는 엄마를 존중해 주는 사회 분위기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다. 사회적으로도, 그리고 스스로도 금전적인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엄마라는 단어를 부담스러워 한다. 아이를 기르는 엄마를 가리켜 벌레라는 혐오스러운 표현을 붙여서 맘충이라고 부르는 것이 요즘 엄마라는 단어에 대한 이미지에 더 가깝다. 선생님은 어떠한가? 아이들의 미래를 밝혀주는 숭고한 직업에서 낮은 봉급으로 고객에게 만족을 시켜줘야 하는 서비스직으로 전락했다. 강남에서 전문직 학부모를 대해야 하는 교사들은 그들이 교사를 대하는 태도에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더욱 느끼고 있다. 의사는 어떠한가? 아픈 사람을 낫게 해 주는 숭고한 직업에서 이제는 가장 확실하게 졸업후에 고소득을 보장하는 직업으로 인식이 굳혀졌다. 이제 대학 입시에서 스카이를 제치고 의대를 지원하는 기이한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달동네에 가서 의료봉사를 하는 의사는 먼지가 쌓인 옛 이야기가 되었다.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모두가 관심을 갖는 것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어낼 수 있는지 뿐이다.  


이렇게 돈과 효율성 그리고 성과주의의 가치 사회에서 나머지 인간적인 가치들은 너무나 버려져왔다. 사회가 무엇을 중시하고 어떤 것을 배제하는 지를 본능적으로 잘 아는 어린 세대들은 어려서부터 이런 가치를 체화하며 자랐다. 그들에게 효용성 측면에서, 그리고 궁극적으로 돈을 버는 측면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너무나 비효율적인 선택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돈이 없어서 아이를 안낳는 것이 아니라 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외에는 가치를 두지 않는 사회적 현상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이 아닐까 싶다. 



진화생물학자가 말하는 출산율이 오르지 않아도 되는 이유 


얼마 전 진화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가 '출산율이 오르지 않아도 된다' 라는 말을 하여서 화제가 되었다. 

https://www.wikitree.co.kr/articles/912401  인류는 이미 지구의 수용가능 인구를 넘어섰고, 앞으로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 및 기후위기로 인한 재앙들이 더 빈번해 질 시대에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진화론적으로 합당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인구가 늘어야 잘 산다는 것은 지극히 국민을 생산성과 그에 따른 돈의 가치로 환산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산을 사람의 머릿수로만 세려고 생각하지 말고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 보았을 때, 정말 더 아이를 낳으라고 할 수 있을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고 하고 싶다. 


정부 정책 담당자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우리가 인구를 국가의 생산력을 위한 도구로만 보았을 때 자신도 기계처럼 돌아가는 노동력으로 착취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으로서의 고귀함과 가치보다도 생산력을 위한 도구로 사람을 대할 때, 아이들은 청소년 시기부터 기계처럼 공부하고, 어른들은 기계처럼 일만 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삶의 다양한 가치들은 버려진다. 학창 시절의 친구들과의 추억이 버려지고, 연애하고 결혼하는 선택지가 버려지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버려진다. 그리고 그렇게 생산성만을 중요시 여기는 사회 속에서 개개인이 어떻게 느끼고 살아가는지는 매 순간 버려지고 있다. 



생산성을 선택하고 마음이 버려진 시대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리고 불안과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우울증 환자가 100만명인 시대에 살고 있다. 20대는 5명 중 한명인 18.6%가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고, 20대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라고 한다.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고? 가파른 성장률 속에 죽어가는 마음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우리는 성장률을 택하고 인간의 마음을 버려버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시대마다 추구하던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어느정도 다 병리적이었다. 종교적 윤리를 병적으로 추구하던 시대, 무속 신상으로 인간을 무자비 하게 바치던 시대, 봉건주의로 군주들이 무한 권력을 누리던 시대 등등,,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자본주의의 병리적인 모습도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인류의 시대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다. 


학자들은 이제 자본주의가 한계에 다다랐다고 말한다.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 과도한 물질 만능 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삶은 점점 더 피폐해져 가고 있고, 더이상은 자본주의가 주는 이점을 찾아보기 힘든 시점에 왔다고 한다.  


요즘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고 있고, 기업들도 직원들의 복지에 대해 더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을 그 변화의 시작이라고 봐도 좋을까? 


인구 붕괴의 위기로 어떻게 인구를 되돌릴지 고민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가치를 다시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직을 망가뜨리는 사조직의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