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뒷담화에 대하여

그 필연성과 뒤늦게 밀려오는 후회란

by 마음정원사 안나
뒷담화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알고 있나? 사람마다 뒷담화를 하는 목적이 다르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위하여, 혹은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어찌할 줄 몰라서, 때로는 그저 앞에 있는 사람에게 동조하기 위하여 누군가를 욕하게 된다. 사실 욕이라는 것도 비판적 사고가 가능해야 할 수 있는 것인데 회사 초년생 때는 뭘 모르기도 하고, 갓 들어온 신입이라고 모두가 잘 대해주니 누군가와 대적할 일이 없기도 해서 딱히 누가 싫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남들이 욕할 때도 그저 그렇구나 하고 들어주기만 할 뿐 적극적으로 나서서 같이 욕을 한 적이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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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뒷담화

세 보이고 싶은 욕구, 정의로워 보이고자 하는 욕구

그러다가 3~4년 차가 되면서부터는 누군가를 욕하는 사람을 보면 뭔가 자기만의 주장이 있는 것 같고, 비판적 사고를 할 줄 아는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상대를 욕한다는 것은 본인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 즉, 자신들은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선긋기 하여 우월함을 드러내는 것 같아 보였고 어리석은 나는 슬슬 그들의 강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를 배워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어떠한 기준에 미달하는 자료를 보거나 아니면 앞뒤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지시나 요청을 받게 되면, 나의 보통의 반응보다 더 강하게 그 상황에 대해 비난했다. 그러면서 나의 용감함과 정의로움에 대해 속으로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남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하는 뒷담화

공감을 위해서 때로는 욕이 필요하다

때로는 남들의 의견이 왜 그런지를 애써 이해하기 위해서 같이 욕을 하기도 한다. 그들이 그(그녀)를 욕하는 이유를 딱히 모르겠지만 뭔가 다들 한마음 한 목소리로 그(그녀)를 욕할 때는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나는 욕하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어보기도 하고 상황을 나름대로 다시 해석하면서 욕하는 이유를 알아보지만 특별히 공감할만한 내용을 갖고 있지 않는 경우들도 많았다. 왜냐하면 내가 본 바로는 그 사람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달랐기 때문에. 그러다가 몇 가지 사소한 결점들이 발견되면 아 이런 것들 때문에 그런가 보다 하고 나도 내가 느낀 것에 그들이 말한 것까지 포함해서 더 크게 부풀려 욕을 하게 되는 것이다.




뒷담화(욕)은 후회를 불러온다.

정당한 욕이란 없다.

하지만 내 경험상 어떤 피치 못할 상황이었을 지라도 남을 욕하는 것은 후회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아니, 나에게 손해를 주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보통 누군가에 대해서 욕을 할 때는 한 두 가지 사건들로 그 사람 자체를 비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앞에 놓고 하는 경우보다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제 3자와 함께 비난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근데 한번 그렇게 제 3자 앞에서 A라는 사람을 욕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내 욕을 들은 사람을 의식해서라도 그 뒤로는 A와의 좋은 관계를 맺을 수가 없다. 사실 내가 보기에는 A에게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또 긍정적인 면도 분명히 가진 사람인데, 함께 동조하여 욕을 하고 나면, 앞과 뒤가 다른 사람이라는 위선자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A와 함께 하하호호하며 지내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아니, 제 3자가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나 스스로가 말과 행동이 괴리되는 현상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그에게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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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초연결 사회에 살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만난 그 사람, 앞으로 영원히 안 볼 것 같은가?? 노노노~

프로젝트가 끝난다면 어차피 관계가 정리되는 것 아니냐고? 요즘 사회에서 관계가 그럴 단편적으로 정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요즘 이직을 하게 돼도 비슷한 업종에서 돌고 돌게 된다. 또, 페이스북에도 이미 친구의 친구로 연결되어 있고, 계속 누군가를 통해서 서로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요즘과 같은 초연결 사회에서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가 프로젝트 하나를 마쳤다고 해서 칼같이 끊어지지 않는다. 멀리 외국에 휴가를 가서 쇼핑을 하다가 도 회사 사람을 만나는 게 요즘 세상이다. 이직을 해서 그 사람과 마주치지 않으라는 법이 있는가?


사실 사람이라는 게 입체적인 존재 아닌가? 누구나 한 두 개는 좀 부족할 지라도 다른 면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면을 갖고 있다. 그리고 한때는 좋지 않게 보였어도 그에게 배울만한 점들이 발견할 수 있다.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앞으로 있을 수도 있는 긍정적인 포텐셜을 한 두 가지 면으로 인해 모두 부정하게 되는 현실은 어찌 보면 매우 슬픈 일이다.




100% 내면의 목소리로 하게 되는 뒷담화

물론 순도 100% 뒷담화도 있다.

최근에는 아래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로 인한 욕을 많이 했다. 나의 상사는 아랫사람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고 기계로 대하는 것만 같았다. 일하는 사람의 자율성과 아이디어 따위는 개나 줘 버린 지 오래고 오로지 자신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밑도 끝도 없는 아이디어만 옳다고 주장하거나, 아침에 지시해서 오후까지 무리해서 만든 자료를 다음날 전혀 다른 아이디어로 휴짓조각으로 만들어 버리는 일 등이 비일비재했다. 고구마를 10개 먹은 것 같은 답답함으로 그의 리더십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나는 나의 비난은 정당한 비난이라고 100%라고 확신했다.


근데 내면의 목소리로 하는 비난으로도 후회가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욕을 하면 할수록 리더가 내리는 모든 지시가 더욱 싫어 지기만 하고, 아예 어떤 분석적 사고도 끼어들지 못하는 무조건적인 불복종 상태가 되어 버린다. 분명히 임원이 내린 지시에는 불합리한 지시 외에도 합리적인 지시도 있을 것이고, 오히려 나는 생각지도 못한 부분도 있을 텐데 말이다.



리더를 욕하고 비난하는 순간 그에게서 무언가를 배우는 자세를 갖기란 불가해 진다.

어떤 리더에게도 배울 점은 분명 있다.

하지만, 리더를 욕하고 비난하는 순간 그에게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자세는 불가능해진다. 또한, 그의 모든 것을 부정하다 보니 상대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라는 것은 할 수가 없어진다.


임원도 사장에게 쪼이고, 실적에 쪼여서 본인이 처한 난처한 상황이라는 게 있을 것이다. 임원이 처한 상황은 분명 차장 나부랭이의 상황보다 더 절박할 것이고, 어찌 보면 아랫사람은 역으로 이러한 사지에 몰린 나약한 인간을 도와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는 한줄기 빛과 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내면에서 부터 밖으로까지 전면 부정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사를 위해서 도움을 준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실 내가 일적으로 좀 더 프로페셔널 해지기 위해서는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말하기도 전에 척척 원하는 것을 내놓는 훈련을 해 볼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 보면 그런 기회들을 모두 놓치는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서는 상대의 입장에 들어가서 그 사람을 측은지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건 사랑이 있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분노만이 가득하고 나는 상사를 부정하는 쪽으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절대 그럴 가능성이 없어지는 것이다. 즉, 나의 분노로 인해 나의 성장의 가능성을 스스로 갉아먹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발전할 방법은 있다: 빌 클린턴은 미국 전 대통령은 술주정 뱅이에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의 기분을 최대한 맞춰주는 훈련을 하다 보니 나중에는 어느 누구도 5분 만에 매료되게 만들어 버리는 세계 최고의 매력남이 되었다고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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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마음 깊이 비난하게 되면 마음 깊이 어두운 기운이 가득 차게 된다.

내 마음을 오물로 가득 채우고 싶지 않으면 누군가를 증오하거나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누군가를 비난하게 되면 부정적인 기운들이 가득 올라오게 되고, 뒤돌아서 나에게 남는 것은 나쁜 기분뿐이다. 한두 번은 그럴 수 있는데 이게 매일 반복되게 되면 나의 삶은 나쁜 것들로 가득한 삶이 되어 버린다. 어느 순간 그게 너무 싫어졌다. 저 사람 때문에 내 삶의 한 부분이 부정적으로 덮여 버리는 상황이 너무 싫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고 하지 않았나. 중이 절을 떠날 생각이 없다면 적어도 자기 마음만은 보존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나의 이 소중한 시간 동안 내가 괴로울지언정 어느 한쪽으로라도 성장은 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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