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사물에게 배우는 글쓰기
요즘 세상엔 넘치는 게 너무 많다.
정보도, 편리함을 주는 물건도, 말도, 감정도. 그리고 글도.
스크롤 한 번이면 누군가의 일상, 대화, 생각, 분석 등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자꾸 뭔가를 더 채워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더 깊게 쓰고, 더 특별하게 말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생활 속에서도 비슷하다.
물건도, 일정도, 사람도, 감정도 자꾸만 더해지고 쌓여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마음은 점점 답답해진다.
어느 날 책상을 보다 문득 쓰지 않은 지 오래된 지우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운데가 움푹 파이고 테두리만 남은 아이.
처음엔 말간 하얀빛이었을 텐데 그 사이 잿빛을 띠고 있는
딱 봐도 오랜 세월을 견뎌낸 지우개였다.
그걸 손에 쥐고 바라보는데 이런 생각을 했다.
“나도 지우개처럼 글을 쓰고 싶다.”
지우개는 무언가를 없애기 위해 존재한다.
무언가를 더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덜어내고, 비워내고, 지워냄으로써 문장이 명확해지고 생각이 다듬어진다.
우리가 종종 멈춰야 하는 이유도 그렇다.
지우는 건 후퇴나 포기가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을 드러내기 위한 과정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초고를 쓰고 나서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문장을 지우는 일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글을 만들려고 애쓴다.
예쁘게 보이려고 덧댄 말들
남이 좋아할까 싶어 집어넣은 문장들
사실은 나와 별 상관없는 주장들.
그 모든 것을 하나씩 지우고 나면 그제야 진짜 내 말이 남는다.
요즘 나는 글을 쓸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문장은 정말 필요한지.
이 말이 빠지면 오히려 숨 쉴 틈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
글이 너무 가득 차면 독자의 생각이 들어설 틈이 없다.
생각의 숨 쉴 틈이 없이 문장만 가득한 글은 금세 지치게 한다.
비움이 필요한 건 글도, 삶도 마찬가지다.
삶에서도 채우기보다는 비우기에 더 신경 써야 하듯이
글을 쓸 때에도 비움이 중요하다.
지우개처럼 글을 쓰면
글은 더 간결해지고 쓰는 이의 마음은 더 가벼워진다.
무언가를 애써 지우다 보면 오히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남는다.
또한 읽는 이는 쉽고 술술 읽히게 된다.
지우는 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나의 생각이나 감정이 더 잘 드러나는 과정임을 나는 이제 조금 안다.
요즘 내 글에 여백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말하지 않는 용기
지워내는 겸손
그리고 가끔은 남기지 않는 배려.
그것들이 모여 내 글의 온도와 감촉을 조금은 부드럽게 만들어간다.
나는 오늘도 지우개처럼 글을 쓴다.
덜어내고, 지우고, 조용히 비워내며
결국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남기는 글을 완성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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