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는 마흔에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고, 엄마는 열여덟 소녀로 낯선 도시 마산의 공장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지금, 나는 학예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마산에 서 있다. 엄마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그곳, 한일합섬을 주제로 전시를 준비하며, 나는 의도치 않게 엄마의 지난 시간을 따라 걷고 있는 셈이었다.
창원은 참 특이한 도시다. 행정적으로는 마산, 창원, 진해가 하나로 묶였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서로 다른 시간과 기억이 얽혀 있다. 내가 사는 집 주소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 599-31번지>다. 길게 늘어선 주소 속에는 옛 마산과 현재의 창원이 함께 자리 잡고 있었다. 주소만으로도 이 도시가 품은 격동의 역사를 보여주는 듯했다.
월영동(月影洞). 이름만 들어도 달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낭만이 배어 있는 동네. 내가 매일 걸어 들어서는 이 동네는 1970년대에는 국군 통합병원이 들어섰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 중포병대대가 주둔하던 자리였다. 같은 땅 위에 전혀 다른 시간이 겹쳐 있는 풍경. 나는 그 위에서 또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다.
마산 앞바다는 항상 호수처럼 잔잔했다. 파도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얌전하고, 물결은 마치 오래된 기억을 감싸 안은 듯 고요했다. 뒤로는 무학산이 병풍처럼 도시를 감싸 안고 있었다. 그 품 안에서 자라난 수많은 삶들을 생각하니, 나는 매일 걷는 길에서도 낯선 경외심을 느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달부터 새로 일하게 된 학예사 김혜진입니다."
박물관 성인 교육 프로그램에서 마이크를 잡고 인사를 하자, 맨 앞줄에 앉은 노인이 나를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경북서 왔구만. 경북 말씨잖아. 경북 사람이 마산을 알기는 하겠나."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웃음을 띠며 대답했다.
"경북이나 경남이나 경상도지요. 같은 경상도의 딸이라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고, 석사 논문도 삼한시기 경남 지역 유물로 완성했습니다. 부족하지만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여러 박물관을 돌며 배운 기술은 전시 기획뿐 아니라, 능구렁이 같은 언변과 상황을 무마하는 여유였다. 특히 어르신들을 상대하다 보면, 30대의 얼굴에 50대의 표정을 장착할 수 있는 기술까지 생긴다. 교육이 끝난 뒤, 그 노인이 다가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김 선생, 마산이 어떤 도시였는지 아나?"
"네, 어르신. 삼한시대 변한 시기부터 철 생산과 해상 교류로 중요한 곳이었고—"
내 말을 끊으며 노인이 껄껄 웃었다.
"그런 건 책에나 있는 얘기고. 내 젊었을 적 마산은 사람으로 가득했어. 길바닥이 안 보였다니까. 앞사람 뒤통수밖에 안 보였어. 버스 타면 껌 한 통 사서 아가씨 하나 꼬시는 게 일도 아니었지. 그만큼 사람이 많았어."
과장이 섞인 말이었지만, 전혀 틀린 이야기도 아니었다. 1960년대 말, 마산에 들어선 한일합섬은 전국의 여고생들과 젊은이들을 불러 모았다. 마산수출자유지역과 함께 도시의 위상은 단숨에 '전국 7대 도시'로 뛰어올랐다. 그때부터 '여공'이라는 말이 일상 속에 뿌리내렸다.
"첫 전시 주제는 정했는가?" 함께 일하는 계장이 물었다. 그의 표정은 늘 긴장으로 굳어 있었고, 내 기획이 그의 승진과도 맞물려 있었다.
"네, 한일합섬을 중심으로 당시 경제개발의 흐름과, 그 속에 숨겨진 여공들의 삶을 조명하려 합니다."
내 설명에 그는 못마땅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마산 하면 술도 유명하고, 공룡 발자국도 있는데… 공순이 전시가 주목을 끌겠어?"
나는 차분히 대답했다.
"사람들은 공순이라 불렀지만, 사실 그 수많은 소녀들이 산업의 뼈대를 세우고 한 집안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기억하지 않는다면, 마산의 역사는 반쪽일 겁니다. 앞으로 한일합섬뿐만 아니라 마산에서 재조명되어야 할 역사를 전시로 소개할 생각입니다."
"말은 청산유수네. 시장님도 오실 거니까 그럴듯하게 좀 꾸며봐."
그 말 뒤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수장고에 보관된 오래된 문서들이 떠올라 지하 수장고로 내려갔다. 여사원 모집 안내. 응시 자격, 제출 서류, 전형 일정, 특전까지 빼곡히 적혀 있는 홍보물. 당시 한일합섬은 소녀들의 몸까지 조건으로 걸었다. 키 155cm 이상, 몸무게 45kg 이상. 수치로만 규정된 소녀들의 삶이 활자로 남아 있었다. 문서를 덮는 순간, 나는 마치 엄마의 그림자가 내 앞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했다.
작고 여린 몸으로 재봉틀 앞에 앉아 있던 엄마. 낯선 도시의 기숙사 창문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눈물을 삼켰을 소녀. 그 소녀가 바로 나의 엄마라는 사실이, 가슴 깊숙이 내려앉아 숨을 막았다. 나는 전시의 주제를 다시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여공의 삶을 조명한다는 건, 곧 엄마와 그 시대의 청춘들의 애환을 불러내는 일이다.'
마산 앞바다는 여전히 호수처럼 잔잔했다. 그러나 그 고요한 물결 속에는 수많은 여공들의 웃음과 울음, 그리고 엄마의 숨결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나는 이제야, 그 바다가 품고 있던 진짜 이야기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선생님, 그런데 도대체 한일합섬 공장이 어디에 있었어요? 전 마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도 그걸 모르고 있네요." 함께 일하는 학예연구원 석화가 조금 부끄럽다는 듯 이야기를 꺼냈다. 그럴 만했다. 문화재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물이 남아있다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일합섬과 관련된 것은 옛 공장 터였던 메트로시티 공원 내에 설치된 작은 표지석이 전부였다.
"석화야, 우리 오늘 옛 한일합섬 자리에 출장 다녀올까?"
내 제안에 무엇이든 좋다는 그녀는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동료였다.
"좋아요! 가서 전시에 필요한 거라면 다 찾아와요, 선생님!"
출장을 낸 게 민망할 정도로 박물관에서 출발한 지 10분 만에 옛 한일합섬 터였던 양덕동 메트로시티 공원에 도착했다. 예전 한일합섬 자리에는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어! 여기 제 친구 서경이도 사는 곳이고, 사촌 언니도 살고 있는데... 아무도 한일합섬 얘기는 안 하던데요?"
석화의 목소리에는 놀라움이 배어 있었다.
"이 표지석도 몇 년 전에 세워졌다고 하니 젊은 세대들은 아무것도 모를 수 있겠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석화는 그 자리에서 친구와 사촌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한일합섬에 대해 설명했지만, 상대방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왜 몰랐냐고 하니까, 오히려 저더러 공부 좀 더 하라네요. 그래서 학예사 할 수 있겠냐면서요."
석화가 헛웃음을 지었다.
"나도 몰랐어. 전시 준비하다 보니 하나하나 알게 되는 거지. 전시가 그래. 처음부터 다 알고 하면 재미가 없어. 탐정처럼 하나하나 찾아내고 연결하다 보면 어느새 전시가 완성되어 있지."
"그런 표현은 처음 들어봐요. 이번 전시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석화의 눈이 반짝였다.
"우리 엄마는 왜 한일합섬에서 일 한 번 안 해봤나 몰라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올해 수간호사가 된 엄마를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석화였다. 역시 자식은 부모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또 주목하고 있구나. 나도 항상 엄마가 자랑스러웠다. 대단한 직업을 가진 것도, 엄청난 재산을 모은 것도 아니지만 우리 남매를 키워낸 것만으로도 엄마는 내게 자랑이자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표지석 앞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에서 수많은 소녀들이 꿈을 품고 일했을 시간들이 아른거렸다. 엄마도 이 길을 걸었을 것이고, 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고향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지금은 아파트와 상가로 빼곡히 들어찬 이곳이, 한때는 젊은 여공들의 웃음소리와 기계 돌아가는 소리로 가득했을 터였다.
"선생님, 그 시절 여공들은 정말 어떻게 살았을까요?"
석화의 질문에 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것은 단순히 전시를 위한 호기심이 아니라, 조여사의 청춘을 향한 물음이기도 했다.
박물관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전시를 준비해 나갔다. 먼저 큰 주제와 세부 주제, 상세 내용을 설정하고 그에 맞는 자료를 찾아 뼈대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다. 단행본, 논문, 구술자료까지 샅샅이 뒤지며 퍼즐 조각을 맞춰 나갔다. 전시될 유물 목록을 주제에 맞게 정리하는 작업은 늘 하는 일이지만 매번 새로웠다. 전시되는 유물은 항상 달라도, 기본적으로 입력되는 정보들은 정해져 있었다. 유물명, 이미지, 크기, 소장처, 유물설명, 상세설명, 시대. 이런 세세한 내용을 하나하나 조사하고 채워넣다 보면 어느새 엑셀 시트 위에 전시의 윤곽이 드러났다.
숫자와 글자로 가득한 화면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 목록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숨어 있다는 것을. 특히 이번 전시는 더욱 그랬다. 한 줄 한 줄이 모두 엄마와 같은 소녀들의 이야기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