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바라지

by 마음힐러 지니


마산에서 일하면서 가장 큰 궁금증은 바다가 왜 저리도 잔잔하고 호수 같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만 내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건 지금으로선 저 넓은 바다뿐이었다.


"마산 바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어. 그래서 수면이 호수처럼 잔잔하고 수심이 깊은 거야. 그리고 돝섬, 모도 같은 섬들이 주변에 있는 거 보이지? 그 섬들이 방파제 역할을 해서 사람 살기에도 좋았지만, 전쟁 나기에도 딱 좋았던 곳이지."


함께 일하는 미혜 언니는 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면 한시도 책을 놓지 않았다. 그야말로 주경야독의 삶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책의 중요성을 그닥 알지 못했다. 그저 나에게 중요한 것은 소와 땔감이었기에. 책을 사랑하는 미혜 언니의 고향은 강원도 삼척이라고 했다. 우리 중 가장 먼 곳에서 왔을 것이다. 언니의 입모양은 항상 두 이를 앙 다물어 모으고 입술에 힘을 꽉 주고 있었다. 입술에 힘을 너무 주다 보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보였다. 눈은 매섭지만 입은 웃고 있는 모습은 일할 때도 공부할 때도 똑같았다.


"미혜 언니야. 언제까지 마산에 있을 건데?"


내가 나에게 묻고 싶은 질문을 언니에게 먼저 던졌다. 재봉틀 소리에 시끄러운 공장 내 소음과 풀풀 날리는 먼지 때문에 내 목소리를 못 들은 건지 미혜 언니는 대답이 없었다.


"언니야, 언니야. 내 말 안 들리나? 언제까지 여기서 일할 거냐고?"

"계산해 봤어, 이 가시나야. 내 동생 넷에 오라버니 하나까지 다 대학 갈라면 몇 년이나 걸리겠냐? 오 년? 십 년? 그때까지 이 공장이 그냥 팽팽 돌아가 줘야 되는데 말이다."


나는 속으로 '그래도 나는 밑으로 동생 셋이니까 이 언니보다는 빨리 이곳을 떠나겠다'고 생각하며 히죽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처음 내가 안동을 떠나 마산으로 왔을 때는 분명 나를 위한 길이라고 믿었다. 응원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자신감도 충만했다. 신이 나를 도와줄 거라 생각했다. 마산에서 일한 지 딱 한 달째 됐을 때 둘째 오빠가 나를 찾아왔다. 형제 중 내 맘을 제일 잘 알아주는 동생 민식이에게 편지를 썼는데, 아마 그 주소를 보고 찾아왔겠지 싶었다.


"오빠. 내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알고 왔노? 그 아지매가 말했나!"

오랜만에 낯선 곳에서 오빠 얼굴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또 어색하기도 해서 오히려 성질을 내버렸다.

"니는. 니는. 가시나. 어매 걱정하는 것도 모르고. 어매가 너 열심히 해서 동생들 뒷바라지 좀 하라고 하더라. 큰 형이나 나도 보탤 거니까 너무 부담 가지지 말고."

"내가 가들 뒷바라지 할라고 여기 와 있는 거 몰랐나? 어매한테 전해줘. 내 여기서 돈 진짜 많이 벌어서 소도 다시 사고, 민식이랑 성민이랑 영희까지 다 뒷바라지할 테니까."

"가시나. 또 죽기 살기로 하지 말고. 너는 너무 열심히 해서 탈이야. 니 몸도 생각하면서 해라. 간다."


마산까지 그 먼 길을 와 준 오빠가 반가웠고, 오빠 너머로 들리는 것만 같은 엄마 목소리도 반가웠다. 뒷바라지. 내가 가족들 뒷바라지를 하지 않은 적이 한시라도 있었던가. 태어나 말하고 걸으면서 큰언니 따라다니며 집안일 돕고, 몸에 힘이 생겼을 때는 막둥이 업어 키우고. 또 더 힘이 생겼을 때는 우리집 소들 똥치우고 꼴 해 먹이고. 겨울에는 땔감 해다 나르고. 생각해 보니 지금 이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안동에서 일했을 때가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마산에서는 적어도 작게나마 내 자리, 내 공간, 내 시간이 있다. 가족들과 있을 때보다 혼자 떨어져 있을 때 비로소 내가 보였다. 비록 나의 긴긴 시간과 맞바꾼 봉급 봉투를 뜯어보지도 않고 고향으로 보내야 했지만, 내가 이제야 정말 도움이 되는구나, 또는 살아 있음을 느꼈다.


몇 주 전부터 공장 분위기는 부산스러웠다. 양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부산하게 공장 곳곳을 살피고 다녔고, 그 뒤로는 공장장과 반장들이 줄줄이 따라다니며 이런저런 것들을 설명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여기로 온다네. 무슨 일이니 이게." 매서운 미혜 언니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언니야. 대통령이 와도 윗사람들 만나고 가겠지, 우리는 그 그림자도 못 볼걸?"

나는 관심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대통령이 오든지 부통령이 오든지 우리랑 무슨 상관이겠노. 내년에 월급이나 좀 더 올려 주면 좋겠네!"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던 나였다. 나라에서 세운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덕분에 안 그래도 열심히 일하고 있던 농촌 사람들이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계기가 되었다.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도 함께 기적을 만들어내야만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이 나와는 무관하게 느껴졌다. 드디어 미혜 언니와 공장 사람들 대부분이 기대하고 기대하던 대통령이 오는 날 아침이 밝았다. 나는 보통날처럼 준비를 일찍 마치고 공장으로 향했다. 오전반이 끝나기도 전에 입구 문이 열리고 검정 양장을 입은 키 큰 사내들과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한 사람과 그 옆의 한복 입은 중년의 여성을 에워싸고 걸어왔다.


"각하 이 공장을 중심으로 수출 10억 달러가 돌파되었습니다."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대통령. 나라일에 관심이 없었지만 신문에 항상 등장하는 대통령의 모습이라 모를 수가 없었다. 선글라스를 쓰고 내 앞에 선 대통령은 짧고 강한 질문을 던졌다.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이냐?"


까만 선글라스를 벗은 매의 눈이 번뜩이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미혜 언니는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나를 주시하고 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지만 다시 정신을 다잡았다. 호랑이 굴에 끌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 나올 수 있다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공... 공부가 하고 싶어요."


대통령의 입에서 어떠한 대답도 반응도 없었다. 그저 고개를 한 번 까딱하고는 뒤를 돌아 그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공장 밖으로 사라졌다. 낯선 이들이 공장을 모두 빠져나가고서야 다리에 힘이 풀리고 목이 탔다. 미혜 언니가 내 어깨를 잡고 앞뒤로 마구 흔들었다. "니가 그 뭐냐. 잔다르크가 잔다르크야! 내가 하고 싶은 말 니가 해줬다. 니가 해 줬어!" 언니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짐과 동시에 공장 안은 박수 소리로 가득했다. 박수소리, 환호 소리. 잠깐이지만 모든 기계소리가 온전히 멈춘 것만 같았다.


대통령이 다녀가고 1년이 되지 않아 '한일여자실업학교'가 설립되었다. 미혜 언니가, 우리 모두가 그토록 원하던 공부를 이곳에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돈도 벌고 공부도 하고. 역시 신은 내 편이라는 생각과 마산이 제2의 고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기대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둘째 오빠의 염려대로 나는 주어진 일을 그 이상으로 너무 열심히 해냈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자 잠을 잊은 채 공부했다. 무쇠인 줄만 알았던 내 몸은 어느 날부터 손가락이 하나하나 부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온몸이 풍선처럼 부풀고 있었다. 기계를 멈출 수 없어 소변을 참는 날이 많았는데, 어느 날부터는 소변에서 빨간 피가 섞여 나왔다. 그래도 참았다. 그랬더니 이제는 배는 아픈데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증상 때문에 병원에 가지는 않았다. 대단한 피로감이 몰려와 눈꺼풀이 더 이상 위로 올라가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의사를 찾았다.


"왜 몸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있었어요? 신부전이야. 신부전. 무조건 쉬고 짜게 먹지 말고 해야 돼요. 나가면 간호사가 더 자세히 알려줄 거니까 명심하고! 더 무리하면 죽는다, 죽어!"

고집을 부려보고 싶었다. 나는 무쇠 몸에 밟아도 다시 사는 잡초라고. 조금만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돈도 벌고 공부도 시켜주는 이곳을 내 손으로 놓을 수는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미혜 언니는 나를 대신해 고향집으로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며칠 뒤 둘째 오빠에게 이끌려 다시 안동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내 손에 들린 건 보자기에 허술하게 싸맨 수저 한 짝이 전부였다. 처음 마산으로 오던 날처럼 내가 가진 건 수저 한 짝 뿐이었다.

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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