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

by 마음힐러 지니


공부를 제법 잘했던 동생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의과대학으로 줄줄이 진학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다고 당장 돈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방값, 책값, 용돈까지, 생활비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마산 한일합섬에서 일한 경력이 있었기에 대구에서의 일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지만, 두 남동생과 예비 대학생인 막내 여동생까지 먹여 살린다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큰오빠는 안동에서 엄마를 도우며 농사일에 매달렸고, 벌써 시집간 큰언니에게 손을 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러설 곳은 없었다. 묵묵히 일하며 버티는 수밖에.


“누나야, 학교 다녀왔다.”

“민식아, 성민아. 잘 다녀왔제. 누나가 금방 밥 차려줄게.”

“우리 오는 길에 밥 먹고 왔다. 누나 빼고 먼저 먹어서 미안하데이.”

“머라카노. 어디서 뭘 먹었는데?”

“국수가 하도 맛있어 보여서 먹고 왔다. 우리 공부한데이.”


그 말들을 철석같이 믿었다. 아니, 믿으려 애썼다. 가끔은 마음이 시렸다. 공장에서 땀 흘려 일하고, 집에 와서는 실뭉치를 풀어 부업을 하며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는데, 정작 아이들은 누나 마음을 몰라주는 것만 같았으니까. 하지만 곧 다독였다. 내가 몸집이 작으니 적게 먹고도 버틸 수 있다고. 멀대같이 큰 것들이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플 거라고. 그렇게 믿지 않으면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쌀독은 언제나 바닥이 보였다. 반찬이라고 해봐야 콩나물, 두부, 가끔 얻어온 달걀 몇 알. 그날도 콩나물 한 봉지가 전부였다. 쌀은 다 떨어지고, 차라리 동생들이 바깥에서 밥을 해결하고 늦게 들어오기를 속으로 바라고 있을 때였다.


“누나야… 형아가 조금 늦을 것 같다.”

핏기 없는 얼굴, 가느다란 팔다리를 달랑거리며 성민이가 헐떡이며 뛰어왔다.

“왜 또 친구들이랑 뭐 맛난 거 먹고 온다나?” 나는 일부러 심술궂은 말투로 대꾸하며, 실을 꿰는 손길에만 집중하는 척했다.

“그게 아니라… 형이 갑자기 쓰러져서…”

그제야 눈앞이 아찔해졌다.

“뭐라꼬! 민식이가 왜 쓰러졌는데!”

“영양실조란다.”

순간, 그 말이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영양실조’라는 단어는 너무 낯설고, 또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성민의 말라비틀어진 팔과 다리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지금껏 ‘밥 먹고 왔다’던 말들이, 사실은 굶었다는 뜻이었음을.


그 길로 나는 밤길을 달려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희미한 전구 불빛 아래, 흙먼지가 발끝을 스치며 흩날렸다. 막차에 올라타 안동으로 향하면서, 마음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끝내 삼키지 못했다.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그 울음은 폭발했다.

“영양실조란다, 영양실조!”

그게 몇 달 만에 엄마에게 내뱉은 첫마디였다. 화인지 서러움인지 모를 울부짖음에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엄마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잠시 눈빛이 흔들렸지만, 금세 입술을 앙 다물고 마음을 다잡는 듯했다.

“영양실조… 죽을 병 아니다. 요란 떨지 마라. 동네 시끄럽다.”

“엄마! 내가 밥 해먹이고, 용돈 주고, 집세 내고… 할 만큼 했는데도, 애들이 굶어 영양실조가 됐다 아이가! 내는 이렇게 멀쩡한데, 저것들이 나한테 거짓말하면서…”

내 말은 눈물과 콧물, 억눌러온 울분이 뒤섞여 마구 쏟아져 나왔다.

그러다 문틈 옆 보자기에 가지런히 쌓여 있는 돈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돈을 보지 못한 척하며 다시 소리쳤다.

“엄마, 내 말고 아들들 좀 살려주라! 돈 좀 줘! 빌려주는 게 말고, 그냥 좀 줘!”

“돈이 어딨다고 준단 말이고. 다음 달에 쌀 부칠 테니 그리 알고 내려가 있어라.”

엄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등을 홱 돌려 집을 나섰다. 밖은 칠흑 같았지만, 오히려 내 마음속 어둠이 더 깊어 밤이 밝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발길이 닿는 대로, 어린 시절의 아지트였던 느티나무 아래로 향했다. 가을바람이 뺨을 스치고, 별빛이 쏟아져 내렸다. 별들은 비참할 만큼 아름답고, 잔인할 만큼 선명했다.

“야, 쪼깜 아니가?”

불쑥 들려온 목소리에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리니, 국민학교 동창 재훈이 서 있었다. 그 시절, 까맣고 작다는 이유로 붙여진 별명 ‘쪼깜’을 그가 아직도 입에 올리고 있었다.

“뭐야, 깜짝 놀랐네. 니 여기서 뭐하노.”

“니야말로. 여전히 겁 없는 거 보소. 이 밤에 여자애가 혼자 앉아 있으니까, 여전하다 여전해.” 그는 아무렇지 않게 내 옆에 털썩 앉았다.

재훈은 말수가 많지 않았지만, 몸짓 하나하나에 묘한 습관이 묻어 있었다. 모자를 벗어 손에 쥔 뒤, 손등으로 이마를 훑고는 하늘로 시선이 옮겨지는 습관은 여전했다. 시선은 길지 않았지만 묵직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작은 통나무 꾸러미 하나가 들려 있었다. 겨울이 다가오면 우리 집에 땔감을 갖다 주곤 했다는 그 꾸러미였다.

“고생 많다, 깜.” 그의 말은 덤덤했다.

“니는 그래 할 일이 없나. 우리집에 땔감 나른다길래 아직도 이 동네 사는 줄 알았네.”

“겨울에는 너무 춥다 아이가.”

짧은 대화였지만, 그 말 끝에 묘한 것이 끼어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해 온 말처럼, 마치 누군가에게 배워 온 말처럼. 나는 잠시 그가 뭔가 더 말하려다 망설이는 것을 보았다.

“니는 조신하게 민식이랑 성민이 뒷바라지 잘해라, 가시내야.”

“김양반, 아니 너거 아부지가 나더러 조신하게 살라고 하시더나. 니가 뭔데 내 동생들 뒷바라지를 잘하라 마라고.”

“너거 어매가 니 걱정 많이 하신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니 걱정하는 거 모르나.”

“동네 사람들이 언제부터 우리집, 내 걱정을 했다고. 얼른 이 양반 소굴을 뜨던지 해야지.”

“우리집 강아지도 니가 시집 안가고 동생들 뒷바라지 하는거 안다”


재훈의 목소리는 가볍게 놀리는 것 같기도 걱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의 눈이 잠깐 반짝이며, 나의 눈에 시선이 머물었다. 그의 눈빛에는 알 수 없는 책임감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내가 땔감 나르는 건, 그냥… 그냥 그래. 추우니까.” 재훈이 말끝을 얼버무렸다. 손에 든 통나무를 살짝 내쪽으로 밀어놓는 그의 제스처는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나는 그걸 밀어놓은 손등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재훈과 나는 비슷한 게 몇가지 있는 듯 했다. 엄격한 아버지, 칠남매 중 넷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은 김양반댁 아들이라는 것이었다. 의형제도 형제니, 조금의 동질감과 가족애 같은 것이 있기는 했다.

그날 밤, 재훈과 나눈 대화는 사소한 것들로 흘러갔다. 화물차 자랑, 서울 큰누나 이야기, 장래에 대한 헛된 꿈들. 그런데 그 사이사이에, 그의 말들은 종종 주머니 속에서 꺼낸 오래된 약속처럼 들리는 듯했다. 누군가에게 했던 다짐처럼, 누군가가 들려준 당부처럼, 그 모든 게 재훈의 목덜미에 언제나 걸쳐 있는 것만 같았다. 사소한고 짧은 대답 말고 누군가와 이렇게 오래 대화한 건 처음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녀석이 내 모든 속사정을 알고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 긴 밤이 그렇게 짧게 느껴지는 순간들이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병원에 있다던 민식이가 내 옆에 와 앉았다.

“누나야, 미안하다. 일부러 거짓말한 건 아니고… 누나 걱정할까봐 그랬다.”

“…….”

“우리 졸업해서 의사 되면 누나 호강 시켜 줄게. 시집 갈 때 소도 사주고…”

“민식아, 내 소 안 좋아한다. 어매가 하도 소를 금쪽같이 생각하니 돌봤던 거다. 우리 집 재산이고, 너희 등록금이기도 했으니까. 좋아서 한 게 아니다.”

“우리도… 어매가 시켜서 누나한테 얹혀사는 거다. 미안하다, 진짜.”

나는 민식이의 눈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소가 내 자식 같았다. 너희도 그렇다. 그래서 너희 대학 마칠 때까지 결혼 생각 안 한다. 내 자식 놔두고 내가 어디 가겠노.”


내 나이 스물일곱. 고향 마을에 가면, 어른이든 아이든 다들 내 이야기를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노처녀라느니, 인생 다 놓쳤다느니, 누가 데려가겠느냐느니. 그 소리들이 바람처럼 스쳐갔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 삶이 결혼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은 꽃만 바라보지만, 그 화려한 꽃을 피우기 위해 벌과 나비가 얼마나 지독하게 날갯짓을 하는지 모른다. 세상에 거저 오는 아름다운 결과는 없다. 오늘도 나는 입을 앙 다물고 해야 할 일을 꿋꿋이 계속 해 나갈 뿐이다. 아름다운 꽃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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