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레

결혼이란

by 마음힐러 지니

결혼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감옥에 발을 들이는 일이었다.
문은 닫혔고, 열쇠는 없었다. 다만 매일 같은 하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결혼 후, 한 아이를 떠나보내고 난 뒤 첫째 아이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남자아이를 안았을 때 두려움보다 놀라움이 먼저였다. 이렇게 작고 연약한 존재가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둘째가 태어났다. 남매였다. 울음의 온도도, 잠드는 방식도 달랐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두 아이의 울음을 구분해내는 사람이 되어갔다.


남편은 화물트럭을 몰았다. 새벽 어둠 속으로 나가 밤이 깊어져서야 돌아왔다. 집에는 늘 아이들과 나만 남았다. 남편의 부재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계속 살아내는 사람이 되어갔다. 집에는 세탁기가 없었다. 단독주택의 작은 마당 한켠에 놓인 고무 대야에서 천기저귀를 빨았다. 물에 불리고, 손으로 비비고, 다시 헹군 뒤 큰 솥에 넣어 삶았다. 증기가 오를 때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이는 등에 업힌 채 잠들었고, 아이를 업은 허리는 늘 앞으로 조금 굽어 있었다.

기저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젖었다. 마르지 않은 천이 다시 물에 들어가고, 물은 다시 끓었다. 손등은 갈라졌고, 겨울에는 물에 닿을 때마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고통을 느끼는 법을 잊어갔다. 느낀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밤이 되면 아이들은 번갈아 울었다. 한 아이를 재우면 다른 아이가 깼다. 아이를 안고 집 안을 옮겨 다니는 일이 반복되었다. 발소리를 줄이기 위해 뒷꿈치를 살짝 들고 오래 걸었다. 아이가 잠든 뒤에도 쉽게 눕지 못했다. 혹시라도 다시 울까 봐, 늘 준비된 상태로 앉아 있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자주 말했다.


아내니까.
엄마니까.
다들 이렇게 사는 거니까.

그 말들은 위로처럼 들렸지만, 실은 벗어날 수 없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어느 날, 아이들의 울음이 겹쳐지던 오후였다. 남편은 연락도 없이 늦었다. 울던 아이들을 겨우 방에 눕혔다. 집 안은 잠시 고요해졌다. 그러나 그 고요는 나를 쉬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좁은 철재 계단을 올라, 하늘이 내려앉은 옥상으로 향했다. 낮은 난간 너머로 동네의 지붕들이 보였다. 빨랫줄, 연탄재, 오래된 물탱크. 바람은 차지 않았고, 햇볕은 지나치게 밝았다. 그때, 오래된 이름 하나가 입술을 밀고 나왔다.


“아버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람.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하고 헤어진 사람.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기대어 울 수 없었던 존재. 소리를 죽였지만, 울음은 가슴에서 입으로 새어 나왔다. 어깨가 들썩였고, 숨이 막혔다. 아무도 보지 않는 옥상에서, 하늘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잠시 딸이 되었다. 울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들이 떠올랐다. 나는 다시 계단을 내려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밥을 하고, 아이를 안았다.


삶은 결코 가벼워지지 않았다. 어느 날은 모든 것이 너무 무거워서 잠시라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사이, 약봉지를 손에 쥐었다.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죽음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쉬고 싶었다. 아주 깊게. 약을 삼키고 바닥에 누웠다. 아이들의 숨소리가 멀어졌다.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왔다. 그날, 우연처럼 남편이 일찍 집에 들어왔다.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남편의 손길이 느껴지는 것 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응급실의 불빛, 차가운 침대, 누군가의 목소리. 깨어났을 때 다시 온전히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아이들도 무사했다. 남편은 그날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일은 가족의 기록 어디에도 남지 않았다. 다만 몸과 마음 어딘가에 깊게 남았다. 말하지 않기로 한 이야기, 그러나 잊히지 않는 이야기로.


거짓말 같은 일들이 지나고, 나는 다시 일어났다. 다시 기저귀를 삶고, 밥을 짓고, 아이들을 키웠다. 누구도 나를 특별히 불러주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그땐 다 그랬다.”


믿고 싶은 말들이 있었다. 나를 설득시키기 위한, 나만의 논리 같은 것들이 있었다.

훗날, 이 굴레를 견뎌낸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엄마의 삶으로, 누군가에게는 한 시대의 얼굴로 남게 되기를. 나는 오늘도 말없이 살아내는 법을 안다. 그것이 살아오며 배운 유일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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