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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chi Nov 06. 2024

가을 산책

지척에 흔하게 도처에 모두 같은 말이다, 가을


입구에 가까운 은행나무들 초록과 노랑의 몇 그루들,

강가로 다가간 은행나무들 노랑으로 바뀌는 초록들.


나무들 밑으로 여윈 개울 위에서 은행잎 몇 흘러가고


악보받침대 휴대용스피커 기타를 튕기는 사람

시절을 보내놓은 마른 풀들이 강가에서 푸석이고

음악가는 풀들을, 강물을, 강물에 퍼진 산등성이를

관객으로 삼은걸까 연주소린 고요하고


내 발끝이 강물이 흘러오는 곳으로 가면, 강물은

내가 지나온 방향으로. 정처 없는 우리 둘.


자전거가 지나가는 도로 위에는 녹슨 솔잎들

지팡이 짚은 발에 치이고 노인의 뒤로 몰려드는

매끈한 자전거들이 가르는 바람, 억새들 사이에서

강으로 빠져나가는가 나에게 와서 사라지는가


서걱서걱 바짝 마른 나뭇잎들이 만든 터널 속에서

색을 잃은 단풍객들의 찰칵찰칵 멀리 당신들에게

음파는 강물을 따르는가 내 귀에 맴돌다 흩어지는가.


칼끝이 생선의 배를 가르듯 보트는 여직 강물을 지나고

정신없이 출렁이는 물결에 단풍이 퍼지지 못하는 것은

물들지 못한 시절에 있을까 시절을 잃은 가을에 있을까


물들지 못하고 시들어버린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들 위에 앉는다 흔들리지도 않는 메마른

나뭇잎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 본다


얼마간이었을까


그렇게 뻗대던 열기가 부서졌다

죽어라 찜찌던 습기가 흩어졌다

멀리 입구에 선 은행나무들


결국 모두


노란 은행잎을 떨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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