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하는 푸름들

by hechi

낚시배는 너울을 타고 넘으면서 바다를 미끄러져 간다.


망망대해 햇빛 조각들이 모래사장처럼 뿌려져

출렁이다 반짝이며 춤을 추다

머언 섬에 닿아 사라지는 물비늘들


너울은 멀리 섬을 아래로 보게끔 배를 위로 올렸다가, 어느새

내눈의 높이를 내 키보다 깊게깊게 내린다.


오늘 출전한 삼치잡이 선수들,

선장의 주의사항에 귀를 기울이다가 말다가.


채비보다도 먼저 바람과 밀당을 하는 여자친구의 머리칼을

그녀의 왼쪽 귀에 걸어주는 낚시꾼에게 고기잡이는 아무렴.


하얀 물비늘이 머리에 가득한 남자와 그를 모시고온 중년의 남자

말 없이 나란히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는 바다 어딘가, 그들의 시선이 만나는 곳.


나를 포항에 데리고 와준 아우들은 재빠르게 내 채비까지 마쳐주고

선체에 기대서서 사뭇 진지한 입술로 오늘의 조항을 나눈다.


나는 작일 저녁의 과음에 시름이 깊어 조반으로 대접받은

죽도 어시장 속 장기식당 소머리와 진국을 모두 다시 보고


하염없는 멀미의 세계에 눕는다. 누워서

오르고 내리는 너울 속에서


나는 이 망망대해 어디로 미끄러져 가는가 바다에

둥둥떠서 바다의 마음대로만 떠다니는가 나도

모터를 달고 너울 타고 넘으며 그곳으로 미끄러져 내달리고 싶다


하염없는 생각이 하염없이 머리 속에서 빙빙 돌기만 하는 찰라,

갑판에서 들려오는 힘 넘치는 심치들의 파닥파닥 소리가

쿵쿵쿵 낚시꾼들의 신나는 발걸음의 울림이, 그렇지!


나는 역동의 한 가운데. 역동하는 푸름들,

의미따위 태초부터 관심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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