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깜빡이, 우리를 호위하는.
검은 아스팔트 도로가 한 여름 햇살에 익고 익어 회백색으로 꿈틀거린다. 회백색은 매끈해보이지만 노란색과 흰색으로 그어진 사회적 규율은 친절하지 못하고. 거친, 한 여름 뜨거운 파동들이 그곳에 닿아 덥게 덥게 일렁인다.
광화문에서 흥인지문으로 빠져나오는 도로는 100m를 차로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10분이 넘어가면서, 체감으로는 100분이 더 걸리는 듯 하여 솟아오르는 모든 차량의 짜증들이 거친 액셀폐달로 으르렁으르렁x100. 간신히 동대문의 오른쪽으로 빠져나와 북부간선으로 나아가는 두 개의 차로된 도로에서 말이지,
인도에 접한 한 쪽 차로를 위험하게 느릿느릿하는 폐지를 실은 손수레와 그것을 간신히 밀고 있는 늙은 몸뚱이. 버스며 화물차 오토바이 그리고 고급세단들, 연신 왼쪽 깜빡이를 거칠게 붉히고 짐승의 흥분한 울름소리로 울리는 클락션들.
온몸이 뜨꺼움에 젖은 폐지의 노인은 속도를 높일래야 높일 수 없어.
그 순간 저어 어느 곳에서 환상처럼 빛나는 비상깜빡이. 푸른색 전기 화물차는 안쓰러운 노인을 위해 그 뒤를 봐주는 호위 차량으로 변한다. 그의 삶에서 지금 이순간만이라도 함께해준겠다는 의지. 대략 50m 정도를 그 둘은 서로의 어깨를 겯고있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삶 전체를 호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럴 수 없지. 내 삶도 버젓하게 버겁고 나는 내가 가장 중요한 것을. 다만 어느 순간만이라도 우리는 온전히 그 순간을 누구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단지 비상깜빡이의 본래 기능을 생각할 수 있는 짧은 쉼 호흡, 한 번이면 가능하다는 것을.
p.s
그것이 나를 위한 또 다른 길, 아니 또 다른지 않는 같은 길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50m 정도되는 5분 가량의 한여름 도로 위.
누군가 그랬다. 세상 모든 사람들 각자 자신의 삶에서 '분투'하고 있다며, 서로 따뜻하자고. 우리가 같이 사용하고 함께 있어야 하는 모든 곳에서 불편을 주는 그런 사람들, 그들은 그러고 싶어서 그러겠는가. 물론 일부러 그러는 이들도 있다손 치더라도, 많은 사람들, 모두 각자의 삶에서 분투중일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