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나이는 아흔을 몇 달 남기지 않았다고 그의 큰 딸이고 나의 엄마인 환갑을 넘긴 중년의 여자가 얼마 전에 말해주었는데, 그 기억이 확실치는 않다. 심상치 않는 더위 속에서 시멘트의 세상은 현기증을 일으키고 있다. 스멀스멀 어둑어둑 한 아스팔트 위에 피어오르는 붉지 않아 더 기괴한 용암. 오전 7시도 안 된 주말의 이른 아침에 매미는 그렇게 울어 된다.
막국수 먹고 할아버지한테 다녀오자.
일반병실에 올라오심?
한참 전이라는데?
동생과의 대화 속에서 나의 무심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제, 열에 쩌든 몸은 일용할 아침을 위해 일으켜진다. 엄마까지 동행한 우리는 아침부터 붐비는 구암막국수에서 수육까지 곁들인 식사를 한다. 옅게 얼은 육수 국물은 내 몸 열붓기를 적절하게 타격하고 잡내 없이 삶아진 돼지고기와 가자미무침 톡 쏘는 맛이 시그니쳐인 말이김치 등등이 가평 잣 막걸리까지 식탁으로 불러들이는데.
거하고 늦은 외식의 아침을 마무리하고 할아버지에게로 가는 길에서, 나는 동생에게 도서관을 먼저 잠깐 들러달라는 요청을 한다. 지난주에 손에 쥐지 못한 책을 오늘은 쥐고 말리라. 배고픔이 달래지니 지적 허영이 고개를 들이민다. ‘초월하는 뇌’ 한 번 빌려다 놓고 기한을 넘기고 다시 빌려진 신경과학의 이야기는 분명 또 기한을 넘길 것이다.
마석에서 장례식장으로 더 유명한 원병원이 오늘의 최종 목적지. 느릿한 걸음으로 315호를 찾아갔을 때, 볕이 잘 들지 않는 것 같은 창문 앞 병상, 그 위에 뉘워져 있는 한 사람.
그래도 훈이는 알아보시는 거 같은데.
그래?
공부하라고 하신다. 맞지?
모르겠어 뭐라시는지.
밥을 먹지 못해 허연 액을 맞고 있는, 눈은 계속 감기고. 알게 모르게 뭐라 뭐라 중얼거리는 잘 작동이 안 되는 입으로 정말로 그 입으로 먹는 것은 언감생심.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보고 오라고 한 이유가 명확하게 그려지고 있는,
외할아버지의 병상.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대해서 나는 무얼 알고 있을까. 분침이 10번은 돌았을까, 할아버지의 손을 두어 번 정도 잡아다 놓은 시간이.
손에는 어떤 감정이 맴돌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매번이 그렇듯 알지 못하겠다. 누군가 글에서 사람은 똥과 오줌을 벗어날 수 없다고 했는데, 나는 그것을 물질론으로 이해하고 넘겼다. 오늘, 그것과 힘겹게 마주하고 있는 내 어머니를 세상에 내놓은 한 남자와 그를 만나러 가기 전, 내 동선은 과연 그 물질론의 이해로 설득이 가능할까?
Ps.
쓰고픈 말을 다 적어서 글이 마무리되는 걸까? 배가 고파져 그만 쓰는 것인가. 젠장이네.
그리고,
씁쓸함과 창피함, 할아버지의 손을 두어 번 정도 잡고 난 다음 내 손에 남았다던 감정. 내 손에서 오래 머물기 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