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아침 햇살 높게 무성한 나뭇잎들에서 앉았다가 또 역시 한 여름 어디선가에서 온 바람으로 흩어진다. 저어 하늘에선 산비둘기들일까, 이름 모를 너희들일까. 아름다운 비행의 군무로 하이얗게 더운 구름 속으로 역시 흩어지고.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약 3년 정도를 사용했던 휴대전화에선 언제 어떻게 무슨 이유로 선곡해 놓은지 모를 그 노래들이 흘러나온다. 도로에서는 휴일의 달콤함을 어디에라도 팔아야한다는 강한 의지라고하자, 그런 것들이 쉼 없이 굴러간다.
모쪼록 정리의 시절이 나에게 왔다. 지난 겨울은 빛나는 눈들과 눈꽃들을 검은 배경과 어두운 은막에서 바라보고 느끼는 시절이었지. 다시금 침잠하던 시린 내 눈에는 늘 불안이 비추어 흔들렸었다. 그럼에도 단단히 빛나는 어떤 것들, 나의 그것들을 저어 그곳 북극성에 박아 놓는 시절이었다는 것을 나는, 찬란하고 다소 더워서 거북했던 아직은 차가워야할 매화와 이제는 따뜻해야할 개나리가 동시에 피고 지는 시절에 어렴풋. 알았다.
벚꽃은 여전히 강한 위력으로 세상에 휘날렸고, 검은 겨울에 시작한 어떤 정신이상자가 내가 사는 이 땅에 파렴치하고 멍청하며 실력마저도 아마추어도 못되는 짓을 저지른 일에 대한 수 없는 혀놀림이 실제적 어떤 행동도 만들지 못하면서, 그렇게 세상은 돌아갔다.
오이 하나의 가격은 3,000원에서 떨어질지 모르고 기름값과 점심값은 우리의 주머니를 한 없이 초라하게 만들며 근면해야한다는 뒤떨어진 노동의 가치를 강탈하였다. 그것은 지금도 현재 진행중.
어엿하게 40대에 안착한 나는 모든 전자세계에 꾸준히 내보냈던 내 글들의 모습을 오랫동안 감추었고, 그저 읽고 그저 여기저기 메모처럼 써 놓은 짧고 또는 긴 시들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내 40번째 시절은 흐르고 있었고 이제는 다시 그 시절들을 정리할 시간이라는 또한 어렴풋한 기분으로 다시 맥북을 열어 놓고 나를 고백하고 있다.
뭐, 시기상으로 2025년이라는 세상의 시간축이 절반을 넘기기도 했다는 모종의 압박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것들도 영향을 주었으리라.
모순이라는 것, 짧은 순간 속에서 영원을 길어올려 나에게 그리고 너에게 기쁨과 위안을 선사한다는 이야기의 전개, 너의 마음을 열어주고, 우리의 고민을 다른 시선에서 이야기하는 일, 우리에게 아무런 관심 없이 오고 가는 자연의 섭리가 내 마음에 어떤 자리를 만들어준다는 것.
모순은 외려 분명하다. 창과 방패는 정확하고 명료하게 50% 확률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해준다. 중요한 것은 삶은 반과 그 반대의 반으로 나뉘어져 있지 않다는 것. 삶은 분명하게 모호하게 있다. 그간에 나는 그 모호를 분명하게 보려고 무던히 애를 쓰던 강박 그리고 집착 같은 것들과 불안과 조급들.
그러면서 오늘 아침과 어제 밤에 계시처럼내 내려오는 말들은,
편안하고 여유롭게 자신감으로.
그리고 남은 이야기는,
내가 선택한 많은 경험들은 분명 내가 죽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될 일을 찾아서 그 길을 걸어 갈 때, 도움과 유용일 될 것이다라는 오래전 다짐이 지금 현실이 되고 나를 실존하게 한다는 것의 확인. 그리고 그 지나옴들이 지금 나를, 내 세상을 만들어주었다는 것.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나는 나를 믿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감사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