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저어 밑에까지 내려왔다

by hechi

“단풍이 저어 밑에까지 내려왔다”


양치를 하시면서 화장실의 매우 작은 창문을 통해서 보이는 바깥을 향해서, 그리고 문을 열고 나서는 그 바깥으로일까, 나에게도 아버지가 한 마디를 흘려내신다.


“그러게요”


나는 짧게 대답하고. 문을 열기 위해 한 손에 모두 움켜잡고 있던 지난 어떤 것들을 다시 양손에 나누며.


단풍이, 저어 위에서 붉은 그것이 우리들의 눈앞까지 내려온 시간은 한나절일까 혹은 반나절? 다시 생각해 본다. 그것은 빈가지에서 연약한 색으로 시작하여 푸른의 충분을 보내고 나서 이제 그만이라는 절정까지, 그들이 또 한 번 모든 계절을, 충분한/했던 시간을 떨어뜨리려는 작정이지 않는가.


나는 어떤 문을 열고 나온 것인가. 나는 어떤 지난 것들을 한 손에서 다시 양손으로 나누어 들고 버리려는가. 나는 어떤 작정과 작별을 이루어 낼 수 있는가.


낙엽은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떨어지는’ 잎이면 공중에서 머뭇머뭇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다가 누군가의 말에서 낙엽은 ‘떨어진’ 잎이라는 것을 주워 삼켰다. 떨어진은 완료의 상태일까. 그러나 자신을 놓아낸 나무 밑에서 여전히 어떤 소리를 내고 있는 떨어진 잎의 소리들은 무엇을 그렇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모든 것들은 의도, 누구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고 휘갈겨지는데 나만 홀로 머릿속으로만 골몰하고 있는가.


바람이 불어온다. 어떤 차를 뒤덮은 노오란 나뭇잎들이 도로에서 다시 너무도 빠르게 먼지로 가고 있다.


“불조심을 해야 하는 날이야”


한 손에 도서관에서 할당해 주는 다섯 권을 한 번에 움켜쥐고 문을 열며 들어오던 내가 중문에서 멀뚱한 엄마에게. 엄마는,


“화장실을 가려고 하는데 딱 맞춰서 들어오냐”


한 시간 전에 아빠는 그곳에서 단풍이 여기까지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어떤 문을 나가고 어떤 것을 버리고, 다시.

어떤 것을 움켜쥐고 어떤 문을 다시, 들어오는가.


충분한 것이 기어이 이제는 그만이라는 말을 조용히 지속하는 오늘은 아마도 만추가 끝나는 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것이 사라지지는 않는 달이라고 아메리카에서 살아온 이들의 예전 조상들의 한 부족에서는, 11월을 그렇게 불렀다고 한 말은 언제부터고 내 11월을 장악하고 있다. 몇 해 전까지 나는 사라지지 않는 것에 방점을 찍었었는데, 이제는 사라진 것들은 어디에서 다시 시작을 하는 것인지가 궁금하다.


그것은 아마도 너무도 상투적인 논리들의 귀결로, 앞으로 생에서 발현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그러므로 사라지지 않은, 남은 것은 실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사라질 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과 사라진 것은 그것이 완료 됐기에 기어이 다시, 다시라는 것.


단풍이 저어 밑까지 내려왔다는 말은 그런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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