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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톨 Sep 17. 2019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산다는 것

18년 9월에 썼던 운동 간증 글

  지난여름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싫었고, 어쨌든 이 육신으로 남은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 것도 있고, 대학원 생각이 있다고 하자 공부하는 사람은 자기 몸부터 챙겨야 한다고 했던 은사님 말씀이 불현듯 다시 생각난 것도 있다. 무엇보다도 약물 부작용과 개인적 상황 때문에 우울감이 극도로 심해져 며칠간 아무것도 못하고 방 안에 누워서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다가, 이대로 살면 죽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던 것도 있었다. 그 길로 나는 약 복용을 중단하고 무작정 헬스장에 가서 카드를 긁어버렸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지만 운동은 참 힘들다. 운동 자체도 힘들지만 굳이 땀을 흘려야겠다며 굳이 집 밖으로 나와야 하는 것도, 그 과정을 꾸준히 해내는 것도 힘들다. 운동한 게 아까우니 식단 조절도 같이 해야 하고, 운동을 하면서 나의 체력에 자괴감도 느껴야 하고 인바디 체중계 위에 올라가서는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도 반성해야 한다.


  가장 힘든 건 아무래도 바로 주어지지 않는 보상이었다. 내 본래 취미는 미식이었다. 음식은 먹으면 혀에서부터 행복감이 시작되고, 식사를 마치면 포만감이 우리의 정신을 안정시킨다. 운동은 그렇지 않다. 하는 중에도 힘들며, 끝나고 당장은 상쾌해도 다음 날 아침이면 근육통이 남는다. 곧바로 더 빠른 속도로 뛰게 될 수도 없고 한 세트를 끝낼 때마다 웨이트 중량을 1kg씩 늘릴 수도 없다. 나는 하루에 먹는 게 기껏해야 닭가슴살, 샐러드, 고구마, 귀리, 호밀 빵 샌드위치 같은 것뿐이지만 몸의 변화도 미미해 보인다. 사실 그래서 중간에 참 많이 포기하고 싶었다. 오감으로 확인 가능한 달콤한 행복들이 많으니까.


  그렇지만 운동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내가 하는 노력만큼 나에게 보상이 돌아온다는 믿음을 쌓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떠한 변화들은 한 번에 찾아오지 않고 노력을 작게라도 꾸준히 해줘야만 서서히 드러나니까.


  난 누가 봐도 감탄이 나올만한 몸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에서 잔뜩 첨언하기를 좋아할 만한 체형을 갖고 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내가 운동을 하는 지도 잘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 내가 나 자신의 변화를 잘 안다. 이전보다 몸이 가뿐해진 걸 느낀다. 웨이트 중량이 조금씩 올라가거나 스쿼트 세트가 조금씩 늘어나는 것도 그렇지만, 이전에는 중간에 쉬어가며 올라가야 했던 오르막길 꼭대기에 있는 집도, 홀로 밤 산책을 다니는 평화의 전당도 단숨에 올라갈 수 있는 몸이 되었다. 이전보다 조금 덜 자도 죽을 것처럼 피곤하지는 않다. 나는 조금씩 더 오래 버틸 수 있게 되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며 자괴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건 내가 조금이라도 체중 감량을 해서라기 보다는, 운동을 하고 내 몸의 쓰임과 근육에 집중을 하게 되면서 내 몸을 어떤 평가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나의 정신을 싣고 다니는 육체라는 생각이 더 커져서 그런 듯하다.


  운동을 꾸준히 한다는 것은 지금 당장의 내가 아닌 한 달 뒤, 일 년 뒤, 그리고 그 이상의 미래의 나를 위해 내가 현재를 조금씩 투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타인으로 빼곡하게 채워진 일상 속에서도 굳이 시간을 내 노력해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서 투자하고 스스로의 안녕을 빌어준다는 것도 의미한다. 오랫동안 우울을 겪었던 나는 미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지 못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 자신이 서서히 변화하는 것을 느끼고 노력과 그 보상을 믿게 되자 미래 계획도 차근차근 쌓아갈 수 있게 되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도 오래 우울을 견뎌왔고, 그래서 운동을 시작한다고 당장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건 아니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안다. 다만 나는 우울에서 조금 헤어 나오는 게 가능했던 짧은 시간 내에 운동을 시작했고, 마침 시간, 경제 상황이 잘 맞아떨어져서 운동을 습관처럼 만드는 게 가능해졌다. 그런 기회와 상황이 한 번쯤은, 현재 우울에 잠식된 당신에게도 갈 수가 있다. 그럴 때 스스로를 변화시키기 위한 결정을 내리려고 한다면 신체적 활동이 한 가지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이렇게 말해놓았지만 나는 사실 운동을 시작한 지 겨우 세 달 밖에 안 되었고(이전의 내 운동량이 극단적으로 적긴 했다), 부끄럽지만 마지막으로 헬스를 간 게 거의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 변명을 조금만 하자면 개강하고 아무리 바빠도 꼬박꼬박 헬스장에 나가야겠다고 다짐을 해 새벽에 집에 들어오는 한이 있어도 헬스장 문 닫는 시간까지 운동하다 돌아온 적도 많지만 지난 2주일 정도는 버겁게,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으로 살아서 도저히 여유가 안 났다. 그래서 그 와중에 마음고생할 일도 조금 있어 전에였다면 몸을 벌떡 일으켜 헬스장에 갔을 하루의 마지막 여유 시간에 그저 누워있느라 바쁘기도 했다. 운동을 하고 나에게 생겼던 변화들을 곱씹어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조금 써봤다. 이 글을 쓰며 내가 다짐을 했듯, 이 글이 당신의 일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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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운동을 그만둔 지 일 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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