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홍대에서 일이 끝나면 오늘만 살 사람처럼 기약 없이 마시고 부으며 취하고 월화수목금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하루를 맞이했다. 양쪽 볼이 빨개져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지금 생각해 보면 철이 없는 행적들이었다.
다음날에는 비몽사몽 하며 속이 안 좋은 채로 회사에 출근하고 술이 언제 깨는지도 모른 채, 일에 열중할 때가 되면 회사에서 꿀 같은 행복한 시간, 점심시간이 찾아온다. 이때는 어제 술자리에서 주량이 얼마인지. 생각보다 잘 마신다. 실없는 이야기들이 자리한다. 동료들과 선배들과 이런 시시 꼴꼴한 이야기들이 점심시간을 매웠다.
이렇게 한 달이 지나면, 첫 월급이 들어온다. 학생 때는 두발 금지 덕분에 못 했던 탈색 머리에다 돈을 버렸다. 또 부모님한테 한 소리를 듣고는 했다. 그저 빛 좋은 개살구라는 걸. 한 번은 동네 미용실에서 파란색 머리를 했었다. 근데 담당 디자이너의 솜씨의 말을 금치 못했다.
내 머리는 파란색 무늬의 달마시안 강아지가 표현되어 있었다. "내 머리 돌려주세요." 라며 나는 담당 디자이너에게 항의를 했다. "150,000원이나 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머리를 빨간색 매니큐어로 염색을 했던 게 안 빠졌던 것 같지만 어쩔 수가 없다. "머리색이 빠지면 괜찮겠지. 하며 애써 긍정을 유지한다.
네이버 클라우드를 오랜만에 들어갔더니 전 연인의 흔적들과 손절했던 인연들이 우수수 나왔다. 스쳐 지나간 인연들을 놓아줄 때가 온 것은 아닐까? 미래의 연인을 위해 번거롭게 사진을 지워야 할까? 누가 이 질문에 해답을 답한다고 해도 추억은 추억일 뿐. 현재, 나의 연인을 더욱 존중하고 싶다. 그리고 소중한 미래의 배우자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
요즘의 나는 과거의 나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다. 과거의 내가 상처를 받아서 파스와 데이밴드를 줄곧 찾았었다. 하지만 스물아홉 살의 나는 면역력이 생겼기 때문에 파스와 데이밴드는 필요 없다. 마이클 이스터는 편안함의 습격에서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나면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더 풍요로워집니다. 왜냐하면 더는 타인에게 의존해서만 돌아가는 연결 회로가 아닌, 내면이 자족적으로 작동하는 존재로서 관계에 참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스무 살 초반에는 사람을 좋아해서 집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떠다녔던 생활을 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건 당연했다. 얼마 전 도서관 가는 길에 고등학교 앞에서 사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이 모교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교복대신 사복을 입고 모교에서 사진이라니.
갓 스무 살이 된 이 아이들을 보는 내 모습은 사회생활에 찌든 여자라는 걸. 단순하게도 학교 다니던 때가 그리웠다. 하지만 학교에 다니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고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나는 학생 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다시 안 돌아갈 거야. 클라우드에서 소중한 추억들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걸.
생각해 보면 스무 살 초반의 나는 사람을 좋아해서 집에서 정착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집이 싫었다기보다는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게 답답했다. 사람이 있는 곳이 좋았고 사람이 부르면 그쪽으로 움직였다.
지금 와서 보면 꽤 피곤한 방식으로 살았는데 그땐 그게 나름의 성실함이라고 믿었다. 자유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냥 외롭지 않으려고 바빴던 걸지도.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내 안에 있는 생각들이 생각보다 많이 비어 있다는 걸 알게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내 안에 있는 결핍을 이렇게 채우려는 걸.
올해 스물아홉 살이 되면서 마지막 나의 이십 대를 어떻게 해야 보람차게 보낼 수 있을까? 아마도 서른 살이 되어도 만화를 달고 사는 건 변함이 없겠지. 하지만 나이만 든 게 아니라는 걸.
나는 독립을 또래보다는 빨리 시작했다. 나만의 공간으로 내가 가진 공간에서 생활을 하고 싶었다. 엄마의 질문 "혼자 있는 거 안 무섭냐?" 나는 "안 무서워. 진짜 무서운 건 사람이야."
자취 한지도 7년, 혼자 사는 건 유로 호흡을 하는 것과 같다. 자취 새내기들이나 나의 8살 차이의 동생에게도 여유 자금과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자취를 권한다. 커튼을 다는 것 까지도 유료라고..
나에게 이십 대는 소주와 맥주로 가득했다. 이십 대에 많이 퍼부어서 그런가 요즘은 음주를 안 하게 된다. 이런저런 경험을 하면서 클라우드에 저장된 사진을 오늘 이렇게 브런치에 적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초고는 글을 아직 다듬지 않은 상태 문장이 어색해도 말을 적어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도 그냥 쏟아낸 글이다.
「나의 스무 살, 퇴고하기」에서의 초고는 틀린 버전이 아니라 고쳐질 수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현재의 내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남기고 싶기에 이 글을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