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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Sep 19. 2018

글을 써보니 느끼는 장점 세 가지

진작에 좀 할 걸 그랬습니다.

어쩌다 시작한 브런치.


여기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5개월이 넘었다. 나름 심란한 마음을 정리해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고, 그래서 꾸준히 1주일에 3개 정도는 올려보자고 마음먹었다. 생각이 많고 피곤한 스타일이라, 말로 뱉기보다는 글로 풀고자 했다. 물론 잘 안 써질 때도 있고 귀찮을 때도 있다. 판매용이나 과시용 글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써왔다. 재미로, 그리고 약간은 강박증적으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얻은 몇 가지 장점이 있는 것 같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킨 대가로 받은 소소한 선물들이다.




1. 조금 차분해지는 모습

나는 애초에 성격이 급하다. 그러다 보니 말도 빠르고, 같은 말을 두 번 이상하기 싫어한다. 답답한 상황에서는 조금 더 빨리 알아들으라는 식으로 필요 이상으로 쏘아붙이기도 한다. 주변에 착한 친구들이 많아서인지 감사하게도 외톨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집에 돌아올 때면 미안한 감정이 피어오르곤 했다.



프로 작가도 아니지만, 틈틈이 나 자신의 신변잡기에 대해 글을 쓰면서 나는 조금 차분해졌다. 나의 생각은 필요 이상으로 글에 모두 쏟고, 친구들을 만나니 할 이야기도 많이 정리되었다. 예전처럼 말을 엄청 빠르고 많이 할 필요가 없었다. 글로써 풀어낸 나의 생각들은 요지만 정리되어 다시 나의 머릿속에 남았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로 유명한 생텍쥐페리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완벽함이란 더 이상 추가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버릴 것이 없을 때이다."라고. 나는 지금까지 모든 걸 채우려고 했다. 완벽히 전달되지 않아 답답했던 나만큼이나, 상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채워내고자 했던 나의 욕심은 스스로에게도 상대에게도 피곤함만 안겨주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지금은 글쓰기 덕에 버리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2. 주변에도 섬세한 시선

원래 나는 스스로의 감정에 예민한 편이었다. 세상이 물질로써 존재하는 것이라고 믿지 않았고, 내가 받아들이는 대로 어느 정도의 주관이 개입된 편집본이라고 믿었다. 역사는 사실과 역사가의 상호과정임을 강조하며,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말했던 E.H.카아의 생각과도 비슷하다. 어차피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내 기준에서 최대한 합리적으로 모든 걸 해석하고 싶었다. 이기적인 삶과는 조금 다르다. 다만 나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나뿐이기에, 세상을 받아들이는 나의 관점에만 집중했을 뿐이다.


그런데 요즘 느끼는 것은 타인의 관점들이다. 어떠한 에피소드에 대해서 글을 쓰다 보면 거기에 얽혀 있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이 깊어진다. 천천히 생각을 전개하다 보니 이건 잘잘못을 가릴 문제가 아니라 시선의 충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의 기준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걸 알았으면, 타인도 그렇게 산다는 것에는 왜 이리 무감각했을까. 잘못을 깨달은 나는 주변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좀 더 섬세하게 바라보았다.


수많은 사람들 역시 각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한다. 가끔은 자신의 잣대로 변형까지 한다. 글을 쓰며 이러한 이면을 배웠다. 그러다 보니 상대의 말이나 행동의 이면이 조금씩 보이게 되고, 그걸 인정하게 되었다.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했던 예전 모습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진다.



3. 정리된 생각들

말을 할 때 논지가 분명해지고 스스로 무얼 원하는지 정확하게 파악 가능해졌다. 100%는 아니겠지만 예전보다는 조금 더 정돈된 기분이 든다. 소소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돌 때, 이를 틈틈이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힌 잡스러운 메모들은 각각에 적당한 살이 붙어 브런치에 업로드된다. 그렇게 생각을 기록하고, 여기에 고민을 더하는 과정 덕분에 마냥 잡스럽기만 하던 나의 생각이 조금 깔끔해진 기분이다. 예전에는 헝클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알파벳 순서로 바인딩해서 찾기 쉽게 캐비닛에 정리해놓은 것 같다.


이런 느낌으로. (출처 :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 중)


그래도 아직도 감정의 측면에서는 정리가 많이 힘들긴 하다. 아마 타인과의 관계가 지닌 쌍방향적인 인과관계 때문일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면서 결과도 되는 그러한 일들은 아직 버겁다. 그렇지만 계속 정리를 하다 보면 조금은 나아지겠거니, 하는 낙관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다.




위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는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글쓰기는 이토록 고마운 기억이다. 어릴 적 글짓기 대회에서 소소한 상을 탄 적이 있지만, 글쓰기가 나에게 목적인 적은 없었다. 주변에 PD나 작가, 기자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나는 그러한 환경에서도 글을 쓰는 걸 즐기진 않았다. 아마도 고요한 맨 정신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한다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마지막 학기에 들었던 전공 수업이 생각난다. TBC의 PD였던 교수님이 강의하시던 '창의적 말하기와 글쓰기'였다.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이를 말하는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교수님은 늘 말씀하셨다. 수업이 끝난 뒤에도 너희들이 앞으로도 글을 쓰기를 바란다고 여운을 남기셨다. 구식 일지 모르겠지만 해보면 좋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아무리 좋은 조언이어도 위기가 아니면 들리지 않는다. 취업도 잘 되고 별 걱정 없던 나는 대충 살았다. 그 결과는 내가 다치고, 주변도 상처받는 일이었다. 뒤늦게서야 그의 조언을 따랐다.


지금도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로 편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루키처럼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삶을 기록할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내 주변을 지켜준 많은 소중한 이들에게 떳떳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기를 꿈꾸면서 한 글자씩 세겨야겠다.


차분하고 신중하게, 그렇지만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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