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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Sep 22. 2018

명절이 부담스럽지 않은 세 가지 이유

부모님께 감사하는 바입니다.

나는 장남이다. 그리고 장손이다. 


외동아들이니깐 그런 게 뭐 있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외동아들은 어떻게 보면 더 부담스러운 자리이다. 내 맘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류의 무책임한 사람은 아니다. 나름의 책임이나 무게를 이고 산다. 하나뿐인 아들로서 듬직하고 묵묵한 아들의 노릇도, 사근사근한 딸 노릇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잘 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의 노력 덕분이다. 그들은 나를 소유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해주신다. 한국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러한 마음 가짐은 쉽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자식이라도 부모는 그들이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있는 만큼, 그들과 분리해서 생각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명절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빨간 날로 생각하는 것은 아래와 같은 이유에 근거한다. 반추해볼수록 부모님께 매우 감사한 일이다. 5천만 중 대부분이 겪는 명절 스트레스에서 나는 항시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등 신랑감인데.. 흠



1.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기독교를 믿는다는 점 이외에도, 우리는 딱히 그런 것에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다. 제사라는 이름이 아닌, 추도식이라는 명목 하에 조상들을 기리기는 한다. 그렇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구색을 챙기지는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몰상식해서라거나, 예의가 없다거나, 돈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참으로 실리적인 부모님 덕분이다.


딱 이 정도인데, 너무 맛있고 지금도 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는 어머니의 뜻대로 우리는 합리적인 대안을 찾았다. 모든 명절 음식을 만들기보다는 각 식구 별로 좋아하는 음식 2개씩 준비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갈비찜과 조기,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나물과 생선, 내가 좋아하는 새우전과 고기말이를 만드는 것이 그러한 예이다. 그러다 보니 명절 식탁의 구색은 적절히 갖추면서,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식사가 되었다. 



2. 친척간의 교류가 많지는 않다.

나는 가족과 친척을 구분한다. 가족은 부모님과 나, 그리고 고양이 두 마리 정도이다. 나머지는 다 친척이다. 외할머니는 나를 키워주시고, 어머니의 어머니이니 조금 더 챙기긴 한다. 그렇지만 그 외의 사람들과는 딱히 교류가 많지는 않다. 어릴 때는 왁자지껄한 주변의 모습이 부럽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평소에도 인간관계에서의 피로감을 쉽게 느끼는 성격 탓인지, 피상적인 다수보다는 구체적인 소수가 좋다. 


우리 셋은 명절에 모이면 화목하다. TV 드라마에서 나오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지만,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맛있는 걸 먹으며 시간을 함께 보낸다. 불필요한 오지랖이나 간섭은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들 명절 때 많이 듣는다는 클리셰들을 나는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명절이라는 타이틀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부담이라기보다는 모여서 쉴 수 있는 공휴일이라는 사실뿐이다. 명절이라는 기간 동안 우리 가족에게 부여되는 거의 대부분은 휴식이다.



3. 항상 연습하는 부모님의 모습

나의 부모님은 세상에서 나를 가장 신경 쓰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항상 나를 놓는 연습도 하신다. 때로는 너무 선을 긋는 것 같아서 약간 김 빠지는 듯한 서운함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 주변을 바라보니 이는 죄송하면서도 감사한 그런 일이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준 것 이상을 받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소위 말하는 기브-앤-테이크가 그런 논리일 것이다. 내리사랑에는 끝도 없다고는 하지만, 부모도 사람인지라 저러한 논리에선 크게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부모님은 그들의 부모님(즉, 나의 조부모님들)에게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주 6일을 일하시는 와중에도 틈틈이 전주에 있는 친할머니 병원을 찾아가서 시간을 보내던 사람이다. 나의 어머니 역시 자신이 아픈 와중에도 이를 숨기고 외할머니의 기분을 신경 쓰던 사람이다. 이렇게 최대한의 예의로 자신을 희생했던 사람들이 자식인 나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상식적으로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포기하는 노력을 한다. 최대한 나의 자유 의지를 존중해주시는 것이다. 내가 지켜야 할 최소한만 일러주시고, 그 밖은 터치하지 않으신다. 어릴 때는 이러한 감사함을 잘 몰랐다. 그저 당연한 것인 줄만 알았을 뿐이다. 나이가 먹어가니 이는 감사함에서 나아가 죄송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도 나를 존중해주시니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태생이 효자는 아니지만, 그래서 좀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이번에도 거창한 제사상은 없다. 


주말은 우리 셋이 보내고, 차주 월요일과 화요일은 부모님 두 분이서 선산 쪽으로 내려가시는 정도이다. 화요일의 반과 연휴의 마지막 날인 수요일은 함께 보낼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현재의 나에 대한 배려이며 앞으로 한 여자를 만나 새로운 가정을 이끌 가장에 대한 존중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도, 그분들도 각자의 최선과 예의를 다하는 것이다.


잘 지내보자...ㅋ


그래서 감사하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그 최선에 대해 며칠째 고민 중이다. 명료하지는 않지만 나름 몇 가지는 찾은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 지금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주말에 함께 장을 보고 준비를 돕는 것, 그리고 두 분의 부재 시 고양이들을 잘 돌보는 것, 정도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 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공자는 서른을 이립(而立)이라고 했다. 마음이 확고하여 모든 기초를 세우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변은 든든한데 나는 다소 부유하는 것 같다.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조금이나마 흔들리지 않는 방향성을 띄기 위해 집중해야겠다. 매번 속아달라고 농담하듯 말해왔다. 자식의 권리라고 생각했지만, 조금은 부끄러운 게 지금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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