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더라
저는 수능을 총 세 번 봤습니다. 후회 없는 입시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당시에는 커다란 시련이자 상처였습니다. 지속적인 입시 실패와 다시 휴학했던 학교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 저는 학벌에 과하게 집착했고, 그로 인해 입시에 시간과 노력을 쏟으며 자격지심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실패 후 와신상담을 하며, 도전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학벌보다는 제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 것입니다. 제가 원하는 도전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고 학교를 다니며 이와 관련하여... (후략)
가장 힘들었던 실패의 경험을 쓰라는 자기소개서의 문항이 나오면 즐겨 썼던 이야기다. 말 그대로 나는 수능을 세 번 보았다. 남자는 삼세판이라던지, 3이라는 숫자에 대한 평소의 강박이라던지, 뭐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다. 결론적으로는 서울대학교에 가고 싶어서 그랬다. 그렇기에 변명거리는 매번 달랐지만, 수능이라는 시험이 주는 결과가 불만족스러워서 계속해서 다시 봤다. 한 번 더 했더라면, 하고 후회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수능이라는 관문에서는 항상 만족스러운 열매를 얻지 못했다.
첫 번째 수능은 그저 내가 부족했다. 친구들에 비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 비해 정신 차린 시기가 조금 늦었다. 뛰어난 친구들 사이에서 미리 깨지면서 현실을 자각하고 스스로를 재평가하며 이를 악물기도 했지만, 그게 오래가지 않은 탓이 컸다. 그 당시의 나는 자신감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지로 나의 자만심과 게으름을 감싸기 바빴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역대급 불수능으로 꼽히는 2009학년도 수능에 불타버렸다.
두 번째 수능은 운이 안 좋았다. 재수학원 전체에서 순위권에 들고, 전국 모의고사도 항상 잘 나왔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렇지만 2010학년도 수능은 전년도의 피드백 때문인지 역사적인 물수능으로 기록되어 있다. 나는 항상 난이도에 관계없이 비슷한 개수를 틀리곤 했는데, 그 개수가 전체에서 10문제 안팎이라 보통 때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의 꾸준함이라고 생각되던 그 포인트는 쉬운 수능에서 엄청난 약점이 되었다. 원 점수로는 평소와 큰 차이가 없어서 잘 본 줄 알았지만, 이내 공개되는 예상 표준 점수와 등급 컷을 바라보며 평소 대비 상당한 하락임을 깨닫고 좌절했다.
세 번째 수능은 답도 없었다. 삼수부터는 내신이 고등학교 성적이 아닌, 수능 점수에 비례한 비교내신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도전했던 시험이다. 두 번째 수능 성적으로 갔던 대학교에서 1학기 동안 11학점을 들으며 빈둥거리다가 가을 학기는 휴학하고 시험을 준비했다. 재수 시절의 바이브도 남아 있고, 나름 꾸준히 공부도 했던 기억이 난다. 인강도 열심히 보며 공부했고 모의고사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렇지만 나는 수능을 망쳤고, 다시 복학을 했다. 왜 망쳤을까,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명확한 답은 아직도 모른다. 다만 아무래도 휴학을 했기에 돌아갈 수 있는 안전장치가 있어서 무의식 중에 안일해지지 않았나, 싶다.
자기소개서에서 쓴 말처럼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끝나고 한 마리의 연어가 되어 복학을 했을 때는 마음이 참 불편했다. 나보다 더 좋은 대학에 다니면서 이런저런 스펙을 채워나가는 친구들을 보는 것도 힘들었고, 입시의 실패자로 낙인찍혀 대학 생활에서의 부적응자가 될까 봐 두렵기도 했다. 이렇게 복잡한 마음들 중에서도 제일 힘들었던 것은 묵묵히 뒷바라지를 해주시던 부모님(특히 어머니)이 가지고 계실 상처였다. 입시의 늪에서 쉽사리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내 심경을 짐작하고 슬픔을 속으로 삭히고 있을 부모님의 마음이 점차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소 불쾌했던 입시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의 덕이 크다. 부모님은 끊임없이 나를 믿어주셨고, 친구들은 나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며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내 편인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니, 아무래도 입시의 암울함에서 조금씩 벗어 나올 수 있었고, '대학교'라는 주제 이외의 것들에도 신경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수많은 날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그 뒤로는 나름 바쁘고 열심히 살았다. 원하는 분야의 수업도 듣고, 동아리도 해보고, 공모전에 나가서 상을 받기도 하고, 인턴도 두 번 정도 했다. 틈틈이 친구들이랑 술도 진탕 마시며 놀기도 했고, 수줍은 20대의 연애도 몇 번한 기억이 있다. 입시라는 외적 변수에 집중하다가, 스스로의 미래라는 내적 변수에 집중하게 되니 삶이 조금씩 활기차게 변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행복한 사람이 되어갔다.
그러면서 느낀 점은 삶의 포인트를 '비교'라는 것에서 잡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20대엔 입시와 취업, 30대엔 승진과 결혼, 40대엔 자식 이야기가 주요 대화 거리가 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각각의 나이 때에 걸맞은 화제가 존재하고, 그 관심사에 초점을 맞추고 관계에 임하게 된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저 이야기에 대해 논하고 싶다. 사람들은 저런 주요 화제를 매개로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끝없이 비교해 나간다는 점이다. 이러한 악순환에 빠져버리면 엄청나게 소모적으로 인생이 변하기 마련이다.
내가 입시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린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나의 경우에도 지나간 일보다는 앞으로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했고, 과거의 실수에 후회하기보다는 이를 반성하여 반복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근시안적인 관점으로 상황에 임했기에, 조금 더 대학을 잘 갔던 친구들을 보며 열등감이나 자격지심만 얻었을 뿐이다. 지금은 자기소개서의 내용처럼 삶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들 덕분에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의 늪에서 거의 빠져나왔지만,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1월 셋째 주 목요일이 다가오면 수능을 보지 않더라도 긴장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뉴스를 보고 나서야 수능 일정을 알게 된다. 수능과 입시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인생의 모든 것을 뒤흔들 정도의 한 방 역시 아니라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여정에 있어서 한 방을 결판나는 무언가는 없다. 그러니 정량적인 외부 요소들을 비교하며 서두르는 것보다는, 스스로의 삶의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지금 이 상황의 수험생들에게 이런 말이 위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아물고, 흉터가 되어 시련을 이긴 훈장처럼 자리하게 된다. 그러니 수능과 입시가 주는 압박으로 인해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수험생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써봤다. 지나고 보면 은근 별 것 아니다. 수능 또한 다 지나가기 마련이다.
당시에는 인생이 끝난 줄 알았던 삼반수 시절을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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