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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Nov 12. 2018

솔직함은 무기일까

나를 찌를 수도 있지 않을까

친구가 하는 카페에 갔을 때의 일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곳에서 나는 내가 쓴 글씨를 팔고 있다. 그날도 내가 만든 엽서를 채워 넣으러 가는 길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그걸 구입하는 단체 손님과 마주쳤다. 40~50대로 보이는 여성분들이었다. 아래는 그분들과 나눈 잠깐의 대화이다.


A : 아 작가님이세요? 작품이 너무 예뻐요~

나 : 작가라뇨..(긁적) 에이 작품이라뇨;;

A : 작품 맞죠~ 그러면 캘리그라피나 일러스트 하는 쪽에서 일하시는 분이신 거예요?

나 : 아뇨. 딱히 그건 아닌데, 그냥 취미로 하다가 어쩌다 기회가 닿아서요.

A : 아 그러면 원래 직업은 어떻게 되세요?

나 : 음 저 백수예요. 회사 관둔 지 몇 달 됐어요.

A : 에이 백수라니~ 그럴 땐 프리랜서라고 하는 거예요.

나 : 전 그냥 백수인데.. 요... 흠


소소한 영업 현장


물론 그분은 좋은 의도로 말씀하셨을 것이다. 청년실업이 문제라고 뉴스에 자주 등장하고, 대통령의 지지율과 관련해서 일자리 창출 이슈가 수시로 언급되는 세상이니.. 백수라는 단어가 함의하는 부정적인 의미는 내 생각보다 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느낀 것은 약간의 의아함이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면 없어 보이는 것인가, 하는 호기심 말이다.




나는 솔직한 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느끼는 바를 상대에게 거의 왜곡하지 않고 전달하곤 한다. 물론 그렇게 말할 때엔 예의라던지 상대의 기분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 다는 점도 알고 있다. 그래서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을 만한 선에서 사실을 이야기한다. 회사 관두고 뭐하냐고 누군가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정말 그때 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상대가 그 누구든지 간에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 있을 때면 "놀고 있어요."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처음에는 약간 당황하던 사람들도 이내 적응한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그게 편하다고들 말한다. 내가 하는 말들은 크게 이면의 의미가 없고, 그 뜻 그대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주변의 사람들은 솔직함이 나의 장점이며 무기라고들 이야기한다. 나 역시도 그걸 장점으로 인지하고 있었기에 카페에서 만났던 분들의 반응이 다소 불편했다. 검은 비닐봉지로 꽁꽁 싸맨 것이 음식물쓰레기라는 것을 알았을 때와 같이 미묘한 흠칫거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처럼 내가 백수인데 백수라고도 말을 못 하는가, 싶었다.


솔직하게 말을 하고 삶에 임하자는 생각은,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 솔직하게 되면 나도 표현하기 편하고, 상대도 내 생각을 이해하는 데에 편하다. 물론 체면이나 자존심 혹은 남의 시선이 중요하게 인식되는 한국 사회의 특성상 그러면 조금 무례해 보이거나 없어 보이긴 한다. 그래서 나는 항상 양해를 구했고, 설명했으며, 그들이 적응하기까지 기다렸다. 다행히도 나와 친한 주변 사람들은 그걸 받아들여줬고, 큰 문제없이 삶을 살아왔다.




그렇지만 요즘 느끼는 것은 솔직함이 날카롭다는 점이다.


솔직하다는 것은 직선적이어서 의사소통에 있어서 효율적인 측면이 많다. 그렇지만 그만큼 날카로워서 상대에게 부담을 주거나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인과응보처럼 나에게로 다시 날아와 꽂히게 된다. 인간의 관계 맺음은 시작과 끝이 없고, 언제 어디서 다시 이어질지 모르는 지속적인 순환 관계이기 때문이다.


일적으로 만나는 사람들과는 나름의 선을 잘 지켰다. 그렇지만 그러지 않은 관계에서는 나의 솔직한 모습이 마이너스 요소가 됐던 기억들이 존재한다. 나이 먹을수록 더욱 그러했다. 학창 시절에는 그냥 쿨함이나 유쾌한 직구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양해받아야 할 일들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친구관계나 연인관계도 점차 이전에 비해 방어기제가 강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솔직함이라는 일종의 전략은 갈수록 매력을 잃고 있다. 적어도 나의 기준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대개 본인이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에서의 경험이나 지식을 신뢰하고, 이를 통해 선입견(일종의 누적된 빅 데이터로 판단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장점도 존재한다.)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장벽 너머로 상대를 재단하게 되는데, 벽이 높을수록 이와 반비례하여 인내심은 낮아진다. 본인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니, 장벽은 높고 두터워 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솔직하기만 했던 나의 모습은 장점보다는 치기 어린 미친놈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을 것이다. 차례대로 자물쇠를 풀거나 장벽을 돌아가는 자세가 필요한데, 솔직함이라는 무기는 장벽을 뚫거나 무너뜨리려고 하는 일종의 공격성을 띠는 까닭이다.




그래서 약간의 가식을 가져보려고 한다. 가식이라고 해서 부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는 일종의 배려로 완곡한 표현이나 대화 방식을 통칭한다. 솔직함이 상대에 따라 부담일 수도 있고, 불편함을 유발할 수도 있음을 깨달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백수라고 대답하면 약간의 불편함을 느낄 상대를 위해, 프리랜서나 이직 중이라고 돌려 말하는 법을 익히고 있다. 친구가 자랑을 하면 예전처럼 괜히 갈구기보다는, 적당히 칭찬해주면서 부러움을 표현하는 방법도 배우고 있다. 뻔해 보이는 빈말에도 웃으면서 눙치는 법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다행히도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둥글둥글한 친구들이 주변에 많아서 그들에게 배운다. 다양한 표본(?)들의 모습을 통해 나의 직구를 긍정적 가식(또는 완곡함)으로 희석시키고 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러하다고 합니다.


나의 최종적인 지향점은 적재적소에 솔직함과 완곡함을 활용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거의 30년을 직선적인 표현법을 견지하며 살아와서인지, 한 번에 잘 바뀌지는 않는다. 혹자는 그렇게 되면 너의 매력을 잃는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상대방에게도 상처를 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리스크는 미리 헷지하고 싶다. 위에서도 말한 관계의 순환을 믿기 때문이다. '흐르는 물은 바다를 만난다'는 신영복 교수님의 말씀처럼, 이러한 나의 지향은 명확하기에 시간이 꽤나 걸려도 결국엔 원하는 곳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진정한 솔직함은 내 의견을 표현하면서도 상대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것이다.




커버 이미지 글 출처: 김진규 <달을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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