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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밀대 평양냉면

누군가에게는 걸레 빤 물임을 알고 있다.

by 츤데레

정말이지 극단적인 음식이다. 약간의 허세가 담긴 미식의 상징이기도 하면서, 누군가에겐 폐기물로도 느껴지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주변만 봐도 그렇다. 최고의 일품요리이자 해장에 제격이라며 좋아하는 부류가 하나, 아무 맛도 안 나고 가끔 걸레 빤 물 같은 걸 어떻게 먹냐는 부류가 또 하나이다.




2015년 겨울 나는 을밀대에서 평양냉면을 처음 먹었다.

당시 광고회사 인턴이었던 나는 전날의 회식으로 굉장히 힘든 상태였다. 골골대고 있던 나를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을밀대로 끌고 간 것은 팀장님이었다. 겨울에는 냉면이 최고이며 해장에도 좋은데, 점심때 가면 기다리니 지금 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상사의 말이라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합법적인 농땡이를 칠 수 있다는 것이 더 끌렸다.


그렇게 나는 텅 빈 을밀대에 도착했다. 개인적으로는 함흥냉면 스타일의 질긴 냉면만 맛봤고, 먹을 때마다 체하는 물냉면의 안 좋은 추억에 굳이 먹으면 비빔냉면만 먹는 축이었다. 그런데 팀장님은 나의 주문을 자기 마음대로 바꿨고, 결국 '물냉 양마니 두 개'로 최종 주문이 들어갔다.


결과론적으로는 굉장히 맛있었고 나는 완전 흡입을 했다. 투박하게 끊어지는 적당한 식감의 메밀면이 지닌 담백한 맛도 좋았고, 살얼음 사이로 묻어나는 육향 머금은 육수도 시원했다. 칼칼한 김치찌개를 먹고 시원하다고 외치는 느낌과 다르게, 그냥 모든 게 씻겨 내려가는 듯한 깔끔한 음식이었다. 자극은 없지만 여운이 남는 음식. 내가 좋아하는 막국수를 위시로 하는 강원도 음식의 상위 호환 느낌이었다. 나는 의도하지 않은 주문의 음식을 먹었지만 결국 육수 추가까지 해서 모조리 먹어치웠다.


12.jpg 친구랑도 여자친구랑도 항상 한 잔 하며 완냉했다.


그 뒤로도 을밀대에 자주 갔다. 가족들, 친구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갔다. 그곳에서의 기억은 행복뿐이다. 맛있는 음식과 한 잔의 술, 그리고 아끼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냉면 한 그릇은 식사로도 안주로도 안성맞춤이어서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을밀대를 시작으로 수많은 평양냉면 식당들을 원정 가기에 이른다.


KakaoTalk_20180423_010440928.jpg 아직도 정복할 곳이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행복하다.


지금까지 많은 평양냉면을 먹어왔다. 을밀대에서 시작된 나의 여정은 봉피양, 평래옥, 정인면옥, 필동면옥, 평가옥, 을지면옥, 능라도 등을 거쳐 왔다. 먹으면서 평양냉면에 대한 지식도 늘었다. 면은 메밀을 위주로 식당에 따라 60%~80% (정인면옥에서는 100% 메밀 순면을 팔기도 한다.) 함유하고 있고, 육수는 소고기를 베이스로 식당에 따라 돼지고기, 닭고기, 꿩고기 등을 가미하기도 한다. 물론 조미료를 하나도 넣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수요 미식회>에서 황교익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오늘날 식당의 감칠맛에 익숙해진 사람들을 위해 어느 정도는 조미료를 더할 것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 글을 쓰는 진짜 이유는 음식의 맛에 대해서만 논하고자 함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취향에 대한 폭력성을 논하기 위함이다.




우리 사회는 굉장히 폭력적이다.

개인보다는 집단이 우선시되는 문화를 가지고 있기에 그러한 것 같다. 그러한 성향은 소수자에 대해서, 그리고 훈계할 수 있는 대상에게는 더욱 심해진다. 전자에 대해서는 다수에 대한 폭력을 행사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LGBT에 대해 행하는 차별,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행태, 집단에 반하는 일부 개성 있는 부류에게 가해지는 정신적인 린치 등이 바로 그것이다. 심각한 문제이긴 하지만, 다른 사회에서도 많이들 있는 것이기에 우리 사회만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후자의 경우는 우리 사회에서 특히 심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만의 특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 후자는 상당히 독특하다. 사람마다 취향과 성향 그리고 특성이 다른 것인데 이를 완벽하게 무시하고 본인 (혹은 본인이 속한 집단)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다. 매운 것을 먹지 못하는 사람에게 '야 그것도 못 먹냐, 자주 먹어보면 늘어'라고 말한다던지, 술을 못 먹는 사람을 사회 부적응자 취급하면서 주량을 늘리라고 강권한다던지,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편식한다고 꾸짖어대는 것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taste.jpg 존중까지는 못하더라도 혐오는 말자.


평양냉면 역시 그러하다. 특유의 심심한 맛을 즐기지 못하고 무미(無味)에 치를 떠는 사람에게 '진정한 맛을 모른다.'며 꾸짖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기에 누군가에겐 산해진미가 다른 누군가에겐 별 볼일 없는 음식일 수 있다. 이러한 단순한 일을 왜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취향을 왜 존중해주지 못하는 것일까, 의문이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상대보다 우위에 서고 싶어 하는 심리가 그 원인인 것 같다. '나의 입맛은 너보다 고고해.'라고 울부짖으며 조금이라도 위에서 남을 깔보고 싶은 우쭐함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자원 하나 없는 땅 덩어리에 5천만이 살고 있다. 인재만이 자원이라는 세뇌를 받으며 조금이라도 상대를 밟고 올라서는 것이 정의인 경쟁을 체화하면서 말이다. 조금이라도 타인 위에 있어야 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배운 사람들이기에 미식의 범주에서조차 이렇게 폭력적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싶다.




그냥 인정하고 그러려니 넘어 가자.

얼마 전에 재미있게 본 기사가 있다. 평양에서 공연을 한 우리나라의 아티스트들이 평양의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고 남긴 후기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흔히들 평양냉면이면 아무것도 넣지 않은 채 본연의 맛을 즐기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나는 예의를 떠나서 그냥 그게 맛있어서 그리 먹는다.) 평양냉면을 신성시하는 사람들은 쇠젓가락 조차 대는 것을 금기시하며 냉면에 가위질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몸서리치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옥류관 직원들이 보여준 행동은 달랐다. 옥류관 직원은 고명을 가장자리로 밀어 넣고 식초를 면에 뿌린 뒤 양념장과 겨자를 듬뿍 넣어 비벼주었다고 한다. 가수 백지영은 서울에서 먹었던 기억과는 전혀 다르다고 코멘트하기도 했다.


pn.png 많이 다르다고 한다. (출처 : 가수 백지영 매니저 최동열 뮤직웍스 이사 유튜브)


왜 우리는 저렇게 못하는 것일까. 그냥 뭘 어떻게 먹고 취향이 어떻건 넘어가면 안 되나,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못 먹는 사람들의 취향을 폄하하지 말고, 못 먹는 사람들도 평양냉면의 맛에 대해서 욕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냉면을 가지고 이야기했지만, 이런 소소한 것에서 조차 폭력적인 사회가 과연 따스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든다. 소소한 것부터 고쳐나가야 인간적인 따스함이라는 더 높은 가치도 지향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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