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굳이 돌릴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나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있다.
돌아가서 다시 그 순간을 즐기고 싶을 수도 있고, 무언가를 되돌리거나 바로잡고 싶을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에도 그러한 상황이 몇 있다. 어린 시절부터 수도 없긴 한데, 성인이 된 이후를 생각하면 한 세 번 정도 있는 듯하다. 2010년 11월의 세 번째 목요일에 본 두 번째 수능의 수리영역 시간으로 한 번, 아무 생각 없이 행복하던 2014년의 여름으로 또 한 번, 마지막으로는 2017년 12월 중순 쯔음으로 마지막 한 번. 행복했던 추억 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것도 어느 정도는 있다. 그렇지만 대개 거의 모든 경우 시간을 돌리고 싶은 경우는 후회로 점철된 기억이다.
주인공인 팀 역시도 그러하다. 시간을 되돌려서 실수를 없애보기도 하고, 짝사랑하던 사람에게 다시 고백해보기도 하고, 친한 지인의 망쳐버린 공연을 되살려내기도 한다. 이기적으로도, 이타적으로도 시간을 돌리면서 살아간다.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주변 사람들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는 정말이지 열심히 옷장 속으로 들어가 주먹을 꽉 쥐며 생각한다. "이번엔 제대로..."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의 순간은 시간을 돌려서 원하는 대로 바꿨을 때 오지 않는 듯싶다. 죽음을 앞둔 팀의 아버지는 그렇게 말한다. 시간을 돌리려면 평범한 하루를 그대로 돌려서 거의 똑같이 살아보라고, 말이다. 첫 번째 경험에서는 긴장이나 걱정 때문에 볼 수 없었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체험해보라는 의미이다. 똑같이 카페를 가도 점원에게 따스한 인사를 웃으며 건넬 수 있고, 똑같은 법원의 햇빛도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것처럼 아름다울 수 있으니깐. 특히 소음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던 지하철 옆자리 사람의 이어폰 소리에 기타를 치는 듯한 제스처를 보여주는 팀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한다.
나 역시도 시간을 돌리고 싶던 적이 참 많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느끼는 것은 아무런 깨달음이 없다면, 시간을 돌릴 수 있어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저 과거로 돌아간 똑같은 나 자신은 같은 실수를 반복할 뿐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책임하게 어떤 일을 저지르고 반복적으로 돌아가서 고쳐놓는 것이 아니다. 시간보다는 나 자신을 고쳐나가면서 더 나은 자아를 갖는 것이 중요함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행복은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르다.
'Il Mondo'가 감미롭게 펼쳐지는 영화 속 결혼식은 어떻게 보면 두 주인공에게 가장 행복한 날일 것이다. 그렇지만 결혼식 당일의 날씨는 폭풍우 그 자체이다. 비가 쏟아져서 메리가 쓴 면사포는 찢어지고, 천막은 무너지며, 모두는 거의 동치미처럼 비에 젖어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웃고 즐기긴 하지만 이렇게 왁자지껄(?)한 결혼식의 막바지에 팀은 메리에게 묻는다.
"비가 좀 안 왔으면 좋을 걸 그랬나?"
"아니, 아니. 완벽했어 정말로."
"휴"
"이제 시작이네, 많은 날들이 있겠다. 재밌을 것 같아."
메리가 별로라고 했으면 팀은 시간을 돌려서 화창한 날에 결혼식을 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벌어진 일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 순간에서 최고를 찾아 미소 짓는 메리를 보면서 팀은 안도한다. 마지막 부분에서 아버지의 조언을 듣지 않았더라도, 팀은 그러한 성향의 메리 곁에서 시간을 돌리는 것이 모든 것의 해결책이 아님을 깨달았을 것 같다. 미봉책은 미봉책이란 걸. 그렇기에 겉 보기에는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저 둘이 최고의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즐길 수 있는 것. 그럼에도 무기력하게 수용하는 것이 아니고, 주도적으로 그 순간을 누리는 것. 영화는 이 두 가지의 중요함을 역설한다. 나 역시도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면서 수없이 후회했던 적이 있다. 시간을 돌려서 그때 이러지 않았다면 혹은 이랬다면 지금도 행복하게 만났을 텐데, 라며 한없이 찌질거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순간으로 돌아가더라도 그때를 받아들일 수 있는 내가 준비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헤어진 그녀와도 이 영화를 봤다. 둘이 처음으로 함께 본 영화이다.
그땐 이런 영화인 줄 몰랐다는 점이 아쉽다.
스틸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