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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라피 시작하기 : 종이

별거 아니어 보이는데 생각보다 많이 중요한

by 츤데레
살면서 어떤 종이를 쓸지 고민해본 적이 있을까.

펜까지는 고민해본 사람이 많았을 텐데, 종이는 딱히 없을 것 같다. 나도 캘리그라피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냥 글씨가 보이는 정도면 되지,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캘리그라피의 영역에서 종이는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글씨가 써지는 느낌도 다르게 보이게 하고 특유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에 기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이유는 필기구에 따라 특정 종이에는 아예 뭘 쓸 수 조차 없기 때문이다.


연필이나 펜은 종이를 아예 타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일단 펜으로 글씨 연습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그냥 본인이 좋아하는 노트를 아무거나 사서 쓰면 된다. 만년필이나 붓펜 정도는 너무 얇지 않은 종이면 된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한 번에 많은 양의 잉크를 뿜어낼 수 있는 딥펜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서로 맞지 않는 종이에 쓰게 된다면 잉크가 번져 아. 무. 것. 도 쓰지 못할 수 있다.




나 역시도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펜으로 연습을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엔 일반적인 노트를 사서 별 문제가 없었지만, 딥펜에 빠져들고 나니 문제가 차츰 생기기 시작했다. 블로그를 보고 노트를 몇 권씩 사기도 했지만, 종이가 잘 안 맞아서 못 쓰고 남겨둔 것도 꽤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시행착오를 다른 분들은 겪지 않았으면 해서 세 가지의 종이를 소개해보고 싶다.


1. 밀크 포토지 120g/㎡ (A4)

종이의 이미지가 없어서, 써논 버전으로 대신했다. 검색하면 바로 나온다.

한국제지에서 만든 종이로, 포토지라고 부르는 걸 보니 사진 출력용인 듯싶다. 그래서 그런지 종이가 정말 빳빳하고 도톰하면서도 매끈거린다. 매끈거려서 아무래도 잉크가 많이 흘러내렸을 경우 물방울 맺히듯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대개의 경우 스무스하게 써지며, 절대 번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도톰해서 뒤에 비치지도 않으니 앞 뒤 모두 쓸 수 있다는 점도 연습 용지로써 추천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이 종이를 제본해서 노트를 만들어 캘리그라피를 연습하기도 한다. 가격은 인터넷 기준 200매(1권)에 4000원 조금 못되어 가성비가 최강이고, 오프라인 문구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을 만큼 접근성이 좋은 종이이다.



2. Fabriano Watercolour 250g/㎡ (104x15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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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톰도톰한게 매력이다. 그림 그려도 잘 먹는 느낌.


수채화용 종이인데 도톰하고 사이즈도 적당해서 쓴다.(A6 사이즈라고 생각하면 된다. 보통 사람 손바닥 정도.) Rough Finish라고 쓰여있는 부분은 종이가 스케치북 같은 재질임을 알려준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미술용 스케치북 조금 좋은 버전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앞에는 글씨를 쓰고 뒤에는 편지를 써서 엽서처럼 활용할 수도 있다. 4x6 사이즈의 액자에 딱 들어가서, 개인적으로는 주변에 소중한 사람들에게 캘리그라피 엽서를 만들어 액자에 넣어 선물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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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 느낌으로 액자를 만들 수 있다. 뒤에는 편지를 쓸 수도 있고.


오프라인에서는 좀 큰 문구점(교보 핫트랙스 등등)에서만 팔며, 인터넷에서는 초록창 검색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인터넷 기준으로 한 권(20매) 당 2000원 조금 못 되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3. 미도리 '북극의 북극곰'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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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써본 노트 중 최고이다. 단연코.

가장 최근에 접한 문물이다. 개인적으로 노트로 되어 있는 제품들에 많이 낚인 편이다. 노트로 되어 있는 종이는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비닐 포장이 되어있어서 쉽게 체험이 어렵다. 그리고 블로그 후기를 보더라도 나와 펜촉이나 잉크가 다르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지 않다. 따라서 많이 낚이고 많이 쓰지도 못한 채 쟁겨둔 제품들이 많다. 그렇지만 이 제품은 '믿고 쓰는 미도리'라고 칭찬이 하도 자자해서 사봤는데.. 너/무/좋/다.


디자인도 이쁘고, 종이가 얇은데도 잘 번지지 않고 매끈하게 써진다. 딥펜이나 만년필로 써보니 뒷면에도 거의 비치지 않아 양면을 모두 활용할 수 있을 정도이다. (물론 그렇게는 잘 안 할 듯싶지만..) 다만 두꺼운 붓펜을 사용할 경우 두께 때문인지 약간 뒤에 비친다. 가격은 인터넷 기준으로 A5 사이즈가 11,000원 정도, A6 사이즈가 8,000원 정도 한다. 100장짜리 노트가 이 정도 가격이면 가성비가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퀄리티가 너-무 좋아서 군소리 않고 만족 중이다.


아마 곧 떠날 미얀마-태국-인도 여행에서도 이걸 가져가서 쓸 듯하다.





이 글은 나름의 가이드라인일 뿐, 정답은 아니다.

매번 이야기하지만, 모든 캘리그라피 도구는 개인의 취향이기 때문이다. 다만, 딥펜에 맞지 않는 종이를 잘못 사서 (예전의 저처럼..) 쓸데없는 돈을 날리지 않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이 있을 뿐이다. 잘못 사서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노트가 쌓여가는 것은, 읽지 않는 자기계발서가 늘어가는 것 만큼의 은은한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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