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게, 당당하게, 맛있게
히노키공방을 알게 된 것은 3년 전이다.
처음 알게 된 그곳은 맛집이라기보다는 내가 사는 곳 근처의 식당이었다. 일단 '공방'이라는 단어 때문에 히노키(편백나무)로 가구나 소품을 만들어서 파는 곳인 줄 알았다. 그렇지만 지나가다가 얼핏 풍기는 냄새에 식당이라는 것을 알았고, 서있는 줄을 보면서 '유명하구나'라고 생각했다.
친구와 처음 갔던 그곳에서 나는 아나고 텐동을 먹었다. 거대한 장어 튀김이 올라간 덮밥이었는데, 직원 분이 직접 장어를 커팅까지 해주셔서 좋았다. 맛도 좋았다. 장어도 기름지고 튀김도 기름진 것인데, 히노키공방의 장어튀김은 담백하면서 생선의 풍미까지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달큰한 간장의 향이다. 간장 베이스의 소스는 너무나 부드럽게 가게를 감싸고 있었는데, 덕분에 일식집이나 덮밥 전문점이라는 기억보다는 '일본 가정집'같은 느낌이 났다.
그 후로도 나는 그곳에 종종 갔다. 집 주변에서 밥이나 끼니가 아닌 '요리'가 먹고 싶을 때 갔다. 일본의 방식을 많이 가져왔기에 얼큰하고 개운한 한국의 맛은 없다. 그렇지만 따스한 집밥의 느낌을 풍기는 집은 신촌 주변에 그곳밖에 없다. 물론 나는 일본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그저 한국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한국 원주민이지만, 식당 음식이 아닌 어머니가 해준 음식 같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따스한 날에는 카쿠니정식(돼지고기조림)이나 텐동을 먹었고, 추운 날에는 나베를 먹었다.
히노키공방은 어느 계절에 가도 담백하고 깔끔한 일본의 맛을 보여주는 집이다.
지난 토요일에 모처럼 만난 고등학교 동창과 그곳에 갔다. 둘 다 마포구민이었기에 부담 없는 집이었다. 브레이크 타임과 마지막 주문이 존재하는 집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검색을 해보았다. 초록창에서 검색하여 보고 있는데 아래와 같은 공지문이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주인 분이 쓴 글 같았다.
재료 소진 시 이르게 영업 종료될 때도 있습니다.
점심 마지막 주문은 2시 10분 전까지 오세요.
저녁 마지막 주문은 8시 10분 전까지 오세요.
재료 소진 시엔 시간 관계없이 영업 종료합니다.
꼭 읽어 주세요!
1. 히노키공방은 2명이 일하는 조그만 밥집입니다. 예약은 받지 않습니다.
2. 주차 문의를 많이 해 주셨는데 주택가 안쪽에 위치하고 있고 민원이 많이 들어옵니다. 가게 주변 주차는 불가능하고요. 가게 주변 주차 시 생기는 불이익(견인, 주차위반)에 대해서는 가게에선 책임지지 못합니다. 또한 주차비 지원도 못 해 드리고 있습니다. 주차비까지 부담하면 가게 운영을 할 수 없습니다. 주차비가 부담되시면 방문하지 말아 주세요.
3. 히노키공방은 맛집이 아닙니다. 제가 실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서 오랫동안 기다려서 드셨을 때 충분한 보상을 드릴 수 있는 맛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조그만 동네 밥집입니다.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시고 방문 부탁드립니다. 정말 맛집을 원하시는 분들은 방문을 사양합니다. 저의 집은 맛집이 아닙니다.
4. 모든 걸 2명이 일 하기 때문에 빠르게 정리하고 손님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밖에서 기다려 주시면 정리하고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또한 혼자서 주방 일을 전부 하고 있어서 하루 준비할 수 있는 재료의 양이 정해져 있습니다. 무리하게 만들어서 팔 수도 없고 그 이상은 만들지도 못하오니 재료가 소진되면 영업 종료합니다.
5. 호텔 같은 서비스를 하지 못하고 할 수도 없는 아주 작은 가게입니다. 호텔 같은 서비스나 독립적인 공간에서 여유스러운 식사를 원하시는 분들도 방문하지 말아주십시오.
일본음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항상 좋은 생각과 마음으로 만들겠습니다.
(네이버 플레이스 : 히노키공방 참조)
다소 모나거나 직설적인 표현이 있어서 놀랐다.
다시 읽어 보니 이해도 공감도 되는 글이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면서 저렇게 많은 문의나 요청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무리 소문난 집이어도 말이다. 나도 회사에 다닐 때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VOC도 들어보고 팀장의 쿠사리도 먹어봤다. 회사는 많은 사람들이 분업을 하는 곳이기에 당장은 무리라고 생각돼도 그 여파가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저곳은 오래도록 주인 분과 직원 한 분이 운영해온 가게이다. 두 명이 받았을 스트레스가 나에게도 전이되었다.
식당을 소신 있게 운영하며 맛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이가 얼마나 피곤했을지 서너 번 읽으니 더욱이 와 닿았다. 자신의 식당을 맛집이 아니라고 말하며, 호텔 같은 서비스까지 원하는 분들은 사양한다고 글을 올리는 주인 분의 마음에 공감했다. 조금은 아픈 공감이었다.
이 글을 보고 나서 친구와 히노키공방에 가니 더 좋았다. 그 날 주문한 메뉴의 새우튀김이 엄청나게 맛있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에서였다. 박리다매나 회전율보다는 '좋은 생각과 마음'에 집중하는 주인이자 요리사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참 따스한 식당'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기에 친구에게도 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친구는 내 말을 듣고 식당을 검색해서 글을 읽었다. 그리고는 한 마디 했다.
"다 이해는 되는 말이긴 한데, 맛집이 아니라니.. 이렇게 맛있는데 무슨 말씀하시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