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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May 02. 2018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반대가 끌리는 이유

예전에 나는 god를 좋아했다. 구구절절히 가사가 공감이 되었기 때문인데, 딱 하나 이해가 안되는 노래가 있었다. '반대가 끌리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어떻게 나와 반대의 사람이 끌리고 좋다는 건지, 싶었다. god에 대한 애정은 차츰 식어갔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항상 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랑 비슷한 사람이 주는 편안함과 반대인 사람이 주는 톡톡 튀는 느낌 중에 어떤 것이 더 우위에 있는지 말이다.




나는 그러한 고민을 하면서 몇몇의 사람들과 연애를 했다.

사람이 100%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녀들은 나와 대개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비슷한 음악을 들었고, 매콤한 음식과 곁들이는 한 잔의 술을 즐길 줄 알았다. 내가 구워주는 고기를 좋아했으며, 카페에서 함께 재잘대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바쁘게 걸어다니기 보다는 한적한 거리를 거니는 것을 좋아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러던 사람들 중에 제일 그리운 한 명이 있다. 그녀가 보고 싶은 데에는 많은 이유가 존재한다. 내가 다시 사람을 믿을 수 있게 해줘서,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줘서, 내가 특이하다기 보다는 특별하다고 생각하게 배려해줘서 등등. 물론 거기엔 그 당시에 더 잘했더라면, 하는 미련과 내 자신에 대한 자책 역시 다량 함유되어 있다. 그런 나름 거창한 이유들 중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는 것은 나와 구구절절하게 비슷했던 취향과 성격이다. 특히 그녀도 평양냉면에 소주 한 잔 하는 걸 좋아했다. 함께 갔던 을밀대가 아직도 생각난다. 난 그 뒤로 을밀대를 가지 못했다.


그냥 정 반대인 샐리와 해리


저렇게 비슷한 구석이 많았지만, 우리의 연애는 부서졌다. 진심으로 오래 만날 줄 알았기에 충격도 상당했다. 그런 상황에서 보게 된 영화 속 둘의 모습은 낯설었다. 내가 해온,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연애와는 정 반대의 양태였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해리와 샐리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남녀가 친구로 남을 수 있느냐’로 언쟁하는 둘은 그 뒤로도 사사건건 싸운다. 나중에 우연찮게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각자의 연인이 있기에 친구로는 잘 지내보자고 하지만 그래도 꽤나 부딪힌다. 긍정적이면서 현재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고자 하는 샐리와 부정적인 시선으로 매사에 시니컬한 반응을 늘어 놓는 해리는 그 자체로 반대의 사람이다. 혹시라도 죽을지 모르니 책의 마지막 부분부터 읽는다는 남자와 조금이라도 현재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소스를 따로 담아달라며 랩하듯 주문하는 여자. 그 둘 사이에서 우리는 연인이라는 관계의 시발점을 발견하긴 힘들다.


무미건조하게 달달한 장면으로 아직까지 기억난다.


물론 공유하는 최소한의 취향이 있긴하다. 소소한 걸로 작은 디베이트를 즐기기도 한다는 것. 두 사람은 사사건건 거의 모든 것에 대해 대화한다. 동시에 보고 있는 영화에 대해 전화로 컨퍼런스 콜을 펼치고, 서로의 이별에 대해 보듬어주기도 하니 말이다.


영화를 보며 느낀 것은 그 최소한의 것이 거의 모든 걸 바꿔 간다는 점이다. 성격도 성향도 취향도 다른 두 사람을 하나로 만들어 주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소소한 대화들이 모여서 정 반대를 보던 두 명을 한 방향을 보고 걸어가게 만든 것이다.


모든 걸 차치하고 이런 눈으로 상대를 바라볼 수 있다면 된 것 아닐까.


나는 또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비슷하건 비슷하지 않건 그건 딱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그걸 지향하는 지속적인 대화였다. 물론 성향이나 취향이 비슷하면 그런 대화의 전개나 관계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기는 하는 것 같다. 냉면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을밀대에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기엔 힘드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건 부가적인 요소다.


해리와 샐리가 보여주듯, 가장 중요한 건 두 사람의 노력을 보여주는 대화이고, 그 노력의 길이를 보여주는 시간이다. 영화 곳곳에서 샐리는 해리에게 “I hate you”라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결국 마지막에 그녀는 그를 싫어할 수 없는 본인의 마음을 고백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장면은 두 사람이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쏟은 노력을 보여주는 클라이막스가 아닐까.




반대가 끌리는 이유, 조금은 알 것 같다.

우선, 해리가 샐리에게, 샐리가 해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정반대의 포용력이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대화의 과정을 거쳐서 이뤄내는 그것. 두 가지 관점이 겹쳐져서 새롭고 더 넓은 시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그러한 모습일 것이다. 5년 이상의 오랜 연애를 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대개 그렇다. 비슷한 성격이 어우렁 더우렁 하는 쪽도 물론 있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서로 맞춰가는 대안을 찾는데에 익숙해진 연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나한테만 해당될 수도 있지만, 서로가 반대인 연인들만이 갖는 일종의 치열함이다. 비슷한 점이 많은 커플들은 쉽게 서로가 서로를 인연이라 믿는 경향성이 존재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쫌만 뭐가 비슷하거나, 생각이 통하면 쉽게 운명의 데스티니라고 단정지어 버리곤 했다. 그러한 안일함이 반대가 끌리는 경우엔 덜한 것 같다. 서로가 다름을 진작에 알고 있으니, 미리미리 그런 면이 갈등으로 폭발하기 전에 치열한 대화로 노력하는 것이다.


바로 위에서 언급된 두 가지 이유는 영화를 보고 최대한 정리해낸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급조된 논리로써 설득이 전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글을 마무리짓고 있는 전기 하나 들어오지 않는 미얀마 시골 마을의 밤이 주는 감성때문에 더 뻘소리하는 글이 되었을수도..) 그리고 혹자의 관점에서 보면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보지도 못한, 곧 서른이 되는 솔로 남성이 열심히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반대가 끌리건 그렇지 않건, 혹은 그 둘 중에 어떤 점이 중요하건.. 뭐 그런 고민은 이제 안하게 됐다는 것을 나는 전하고 싶다. 대화, 그리고 거기에 쏟는 둘의 시간이 모든 특성 위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스틸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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