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에 대한 두려움, 그 불안함에 대한 이야기
행복한 순간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 행복이 언제 끝날까 두려워하면서 그 시간을 보낸다. 혹자는 그들을 '물이 반 컵만 남았네'라고 생각하는 부류라고 정의 내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끝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모든 것이 유한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부정적이거나 염세적이라기보다는 현실이 가지고 있는 잔인함에 대한 상처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종욱 찾기>에 나오는 서지우(임수정 분)도 그렇다. 책은 결말이 본인의 생각과 다를까 봐 결말은 읽지 않고, 호두과자 역시 마지막 것은 먹지 않는다. 끝을 안내면 좋은 느낌 그대로 두고두고 남는다며, 그래야 마음이 놓인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첫사랑이라고 말하면서 찾겠다고 마음먹은 김종욱도, 그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면서도 찾지 않는다. 심지어 그녀는 그와 재회하기로 했던 날에도 일부러 그곳에 가지 않았다. 행복한 기억이 추억이 되면 영원하지만, 현실이 되면 유한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녀를 한기준(공유 분)은 비판한다. 찾는 순간에는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면서 좋았겠지만, 눈 앞에 데려다 놓으면 도망갔을 거라고. 다시 만난 김종욱이 그때 그 사람이 아닐까 봐, 완벽한 첫사랑의 기억마저 깨지게 될까 봐 엔딩 같은 건 만들지 않은 것 아니냐고, 말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행복의 끝을 두려워하는 부류를 대하는 전형적인 태도이다. 너는 왜 도망치냐고, 현재에 집중하면 되는 건데 벌어지지도 않는 일을 걱정하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영화를 총 다섯 번 봤다. 처음에는 인도의 풍경에 꽂혔고, 그다음부터는 기준이 이야기하는 용기의 편에 섰다. 진짜 사랑이라면, '첫사랑'이라고 정의 내릴 만큼의 기억이라면 두려워도 다가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게 본인에게도, 사랑의 대상에게도 좋은 것이라고만 막연히 믿었다. 조드푸르와 서울은 장소만 다를 뿐, 사람의 마음은 그대로인데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사람의 마음이 사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지우의 두려움을 공감하기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고 최근에 이 영화를 다시 봤다. 헤어진 여자 친구가 그립거나 솔로 생활의 밋밋함을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풀어보고 싶었기 때문은 아니다. 곧 가게 되는 인도 라자스탄 지역의 풍경이 궁금했기 때문에 미리 간접 경험을 하고 싶어서 찾아봤다. 그렇지만 내가 이번에 본 것은 인도도, 사랑도 아닌 두려움 그 자체였다. 몇 번의 연애에서 항상 내가 가지고 있던 그 불안함이 바로 그것이다.
긴 연애를 많이 해본 적이 없다.
아니 거의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3년 남짓 되는 20대 초중반의 연애 말고는 길어야 3~4개월이 전부였다. 나는 범죄를 저지른 전과자도 아니고, 바람을 피우는 쓰레기 역시도 아니다. 그런데도 왜 나는 한때 소중했던 그녀와의 관계를 길게 이어가지 못했을까, 항상 고민했다.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불안정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상당히 근본적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조금씩 결론지어가는 중이다.
지우처럼 나 역시도 행복이 최고점을 향해 달려갈수록 불안해하는 사람이다. 행복감과 불안감이 각각 x축과 y축에 있다면, 나의 그래프는 y=2x 정도 될 것이다. 즉, 불안함 증가 폭이 더 크다는 말이다. 사랑할수록, 그리고 그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게 깨질 순간이 무서워서 불안해졌다. 나만 불안하고 걱정하는 것이면 괜찮다. 물론 그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게 상대방에게까지 전이된다는 점이다. 상대방은 나를 좋아하고 사랑할수록, 그 냄새를 더 잘 맡게 되는 것 같다. 나에 대한 걱정으로 시작된 상대의 감정은 피곤함으로 나아가고, 결국 지치게 된다. 더 심한 경우에는 당황스러운 분노로 치달을 수도 있다. 보통 범주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폭과는 다르기에 어이가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진지하게 마음을 주는 연애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었다. 좋아는 할 수 있지만, 사랑은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제대로 만나보자고 하면 지금도 좋은데 굳이 정의 짓지 말고 같이 시간을 보내자며 웃으며 눙치고 넘어갔고, 결혼을 넌지시 이야기하면 매몰차게 선을 그었다. 핑계이고 합리화 포인트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렇긴 하다. 그렇지만 나름의 사정은 있다고 변명을 하고 싶은 것이다. 감정적인 소수자인 지우 같은 사람들에게도 다수의 일반 범주의 사람들의 고민만큼의 짐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도 후회되는 말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요즘 가장 되돌리고 싶은 순간은 어떤 친구를 만나기 전에 있었던 대화이다. 나름의 호감을 확인한 관계였지만, 나는 시작도 전에 끝이 두려워졌었다. 친구로서 이미 소중한 사람이고 내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인데 잃을 것이 벌써부터 두려웠다. 그래서 그렇게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연애의 끝은 결혼 아니면 이별인데, 나는 당분간 결혼 생각은 없어."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그게 너라서가 아니야. 너는 나한테 제일 소중한 친구인데 이 관계가 이별로 끝나면 안 되잖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보통 남자들은 그럴 때 잘 만나보자고 하는데, 그 말 한마디도 못하니. 정말.."
지우와 달리 지극히 현실 속에 존재하는 '평범하면서 찌질하고 일관성이 다소 결여된' 20대 남자인 나는 저렇게 말해놓고도 그녀와 만났다. 그녀가 착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그녀의 자존감을 무너뜨렸지만, 그녀는 불안해하는 나를 최대한 공감해주려고 노력했다. '네가 상처받는 것도 내가 상처받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야.'라고 말하면서 날 토닥이기도 했다. 시작조차 하기 어려웠던 연애는 그렇게 가능해졌다. 그렇지만 그녀의 따스함은 나를 변화시키기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수십 년을 다르게 살아온 두 명이 만나서, 좋아한다는 감정 하나만으로 태생적인 불안감을 고치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불안감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역시 내 말이 맞지' 라며 잘난 척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나의 불안감이 관계를 갉아먹은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관계 자체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나는 벌어지지도 않은 이별에 대해 두려워했고, 이는 두 명 모두를 감정적 그로기 상태로 만들기 충분했다. 현실 속 연애는, 그리고 사랑은 결코 두 사람의 마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서 다시금 깨달았다.
물론 <김종욱 찾기>는 영화이기에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그렇지만 과연 그게 해피엔딩인지는 의문이다. 지우와 기준이 달콤하게 키스하면서 영화가 끝나기는 하지만, 지극히 다른 두 사람의 모습이 어떤 결말을 낼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내 경험 상 기준이 지우의 끝에 대한 불안감을 바꾸긴 어려울 것이다. 물론 노력은 하겠지만, 오롯이 그녀에게 집중할 수 있을 때나 노력이 효과를 발휘할 뿐이다. 다양한 사건 사고가 수시로 터지는 다이내믹한 현실에서 그게 가능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사실을 알기에 이번에 봤을 때는 마음이 다소 무겁다. 더욱이 내가 영화 속 저 둘의 사랑을 걱정할만한 처지가 아니기에 더욱 그러하다.
스틸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