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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May 15. 2019

절실하면 된다고?

중요한 것은 변하려는 마음일 뿐

궁즉통 [窮則通],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다.


어떤 일에 임할 때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면, 도리어 해결책이 생긴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절실하면 안 풀리던 일의 실마리가 보이고 잘 풀릴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해석을 조금 달리해서 궁극에 달하면 통한다는 버전도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가장 흔히 쓰는 뉘앙스는 바로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다.


이 표현은 정말이지, 우리 사회 내에서 자주 통용된다. 소위 '선배' 세대가 말하는, '네가 아직 덜 절박해서 그래! 나 때는 말이야...'라던지 '배가 덜 고파서 그래!'라는 표현은 이 문장의 흔한 변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자의반 타의반, 저 표현에 젖어 있다.




나 역시도 나름 이 문장을 믿고 살아왔다. 위기의 순간에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극적인 반전이 생기는 것을 몇 번 목격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입시가 그랬고, 꽤나 다사다난했던 대학 생활이 그랬다. 때로는 친구들이나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그런 일은 종종 있었던 것 같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 임팩트는 상상을 초월했다. 거의 좌절할 뻔한 나를 일으켜준 기억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억 깊숙이 자리 잡은 저 말을 나도 믿게 되었다. 스스로 위기에 강한 남자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조금씩 조금씩 나이를 먹을수록 느끼는 것은, 저게 꼭 옳은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나에게는 더더욱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경우, 궁하면 통한다기보다는 쫄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쫄린다는 말이 나의 멘붕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 말은 나의 조급성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나는 궁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 되면 조급해진다. 어떻게든 빠르게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 발버둥 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걸 노력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이는 과한 칭찬이다. 지난 몇 번의 사건들처럼 극적 반전을 이룰 때도 있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운이 많이 작용했다.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이라고 해도 딱히 할 말은 없다.


돌이켜보면 오히려 실수한 적이 더 많았다. 침착함을 잃은 노력은 방향성이 모호하기 마련이다. 스스로에게 있는 문제를 상대에게 찾으려고 했던 경우도 있고, 상대가 가진 결함을 스스로에게 탓한 적도 있다. 두 경우 모두 나 스스로와 상대방을 모두 힘들게 한 기억들이다. 그 때문에 돌이켜보면 미안한 기억들이다.


절박하기만 하면 조급해질 뿐이다.


이 표현을 계속 곱씹다가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알게 된 사실은 원래 '궁즉통'이라는 표현은 주역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놀랐던 것은 저 뒤에 딸려 있는 표현들이 있다는 것이다.


궁즉통, 통즉변, 변즉구 [窮則通 通則變 變則久]


막히게 되면 통하게 되어있고, 통하게 되면 변하게 되어있고, 변하게 되면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 는 것이 원래의 온전한 표현이라고 한다. 저 말처럼 궁하면 통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설령 우리가 궁했을 때 발견한 실마리로 통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잠깐일 수 있으니 더욱 노력하여 변해야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변했을 때 원래의 위기에서 벗어나 오래도록 평온해질 수 있다는 뜻이라고 나는 믿는다.




조급한 노력으로 찾은 해결책은 임시방편이다. 설령 효과적이라고 하더라도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다를 것 없는 하나의 운이라는 것이다. 궁하면 통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통한다면, 우리는 변해야 한다. 그것에 감사하며 앞으로의 위기에 미리 준비하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나는 조금 더 단단하고 둥근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침착하게 미소 지을 수 있으면서도, 상대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함께 울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궁할 때에도,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궁할 때에도 언제나 통할 수 있게 조금씩 변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아마 그것이 이렇게라도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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