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츤데레 Apr 27. 2018

그냥 떠나기로 했다

존나 피곤한 성격, 조금은 내려 놓기

여행을 마음먹다.

사실 처음엔 갈 생각이 없었다. 이별의 후폭풍에서 헤매고 있었고, 퇴사 후 책 보고 글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기에도 바쁘다고 생각했다. 작가 지망생은 아니었지만,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는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렇게 정리된 생각을 바탕으로 내가 좋아하는 방향을 찾고 싶었다. 


딱히 여행을 꺼려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릴 적부터 아시아, 유럽에서 아프리카까지 웬만한 곳은 가봤기에 새로이 호기심 가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함께 가는 사람이 가족이거나 미래를 약속한 사람인 여행을 가고 싶었다. 장소보다는 함께 가는 사람의 특별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특별함이 없는 존재라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함께 해온 가족이나 앞으로 가족이 될 수 있는 사람과 떠나보고 싶었다. 그래서 세 달 정도 해외를 돌아보고 온다는 친구 H, 그리고 그와 아시아 쪽 일정을 함께 한다는 친한 형 J를 보면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


가끔은 바보가 낫다고 생각했지만, 조금은 현명해져보고자 한다.


그러다가 여행을 마음먹은 계기는 스스로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다. 피곤하면 쉬어야지, 무슨 여행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육체적으로 피곤했다면 쉬는 게 맞지만, 나는 정신적으로 지쳐있었다. 생각만 너무 많았고 평소 안 하던 고민도 사서 했다. 안 그래도 친구들이 '존나 피곤한 놈'이라고 부르곤 하는데, '더 피곤한 놈'이 되어 있었다. 김영하 작가의 책 제목처럼,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진짜 조금만 더 파괴하면 무너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정신 상태였다. 가장 측근인 어머니 조차 한 달 정도 생각을 게워내는 여행을 다녀오라고 조언을 했고, 나는 결심했다.


나는 나 자신을 조금 놓아보려고 떠나기로 했다. 

덜 피곤하고 더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를, 그리고 내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




계획을 바꾸고 바꾸고 바꾸다.

처음에는 미얀마만 갈 계획이었다. 그래서 항공권도 그것만 끊었다. 하지만 H와 계획을 짜다 보니 욕심이 생겼고, 방콕이 라다크가 되고 라다크가 델리가 되고... 뭐 그런 식으로 일정은 길어져만 갔다. 길어야 10일 남짓이었던 나의 여행은 그렇게 32일이 되었다.


가장 설레면서도 걱정되는 곳은 약 3주 정도 머물 예정인 인도였다. 더위, 사기꾼, 위생, 치안, 그리고 라다크에서의 고산병까지 거의 모든 것이 걱정되었다. 물론 걱정하는 게 맞는 것이다. 인도에 10년 넘게 살아온 친구 B의 말을 들어보면 그곳은 모든 것이 상상을 초월하는 곳이었다. 오래도록 살아도 매일매일 욕이 나온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릭샤를 타기 위해서는 최대 10분의 1 가격까지 흥정해야 하고, 가짜 경찰복을 입은 사람들이 벌금을 내라고 시비를 걸고, 주변을 쉽게 믿으면 안 되는 곳이 인도였다. 의식주를 항상 조심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며, 밤에 이동하고 싶으면 무조건 UBER를 쓰라는 조언까지 들었다. 늘 경계해야 한다는 그 말은 맞는 말 같았다. 그렇지만 B와 이야기를 하고, 공부하고, 알아볼수록 인도 역시 사람 사는 곳이었다. 비자를 받고, 주사를 맞으면서 이것저것 예약을 하다 보니 걱정은 점차 사라져 갔다. (오히려 지금은 미얀마의 고온다습한 기후가 더 무섭다.)


대충 이러한 계획이다. 세부 계획은 일부러 안 세웠다. (미얀마와 태국은 H가 인도는 내가 짠 계획표)




행동하다 : 비자, 주사, 사재기, 예약

이번 여행은 크게 '미얀마-태국-인도'를 가는데, 그중 미얀마와 인도가 비자를 요구하는 나라이다. 세상이 많이 좋아져서 e-visa를 인터넷으로 쉽게 발급받을 수 있다. (두 국가 모두 수수료 별도 $50 정도 받는다.) 인터넷으로 신청하고 나면 2~3일 있다가 메일로 발급이 확인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미얀마와는 달리 인도 비자는 채워야 하는 정보도 많고 준비해야 할 파일도 꽤나 있다. (증명사진 이미지 파일, 여권 스캔본 PDF 파일 등등) 그리고 중간중간 튕기는 현상도 잦다. 따라서 e-visa 신청 과정에서 임시 Registration Number를 꼭 적어두고, 중간 저장을 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H는 세네 번 튕겨서 중간에 심호흡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주사들을 맞았다. 미얀마와 인도는 말라리아, 콜레라, 장티푸스, A형/B형 간염, 파상풍에 대한 예방접종이 권고되는 지역이다. 그래서 보건소, 개인의원, 국립중앙의료원 등을 전전하면서 모든 예방접종을 마무리했다. 다행히도 B형 간염은 예전에 맞은 예방접종으로 인해 항체가 있어서 맞지 않았다.


보건소 : 장티푸스 (주사, 보건소에서 해주는 거라 그런지 저렴하다.)

개인의원 : 파상풍&디프테리아 (이 두 개는 세트라고 한다.)

국립중앙의료원 : 콜레라, A형 간염, 말라리아 (콜레라는 물약으로 마시고, 말라리아는 약을 복용한다.)



그 뒤엔 모든 것을 예약하고 준비해보려고 시도했다. 캐리어를 들고 가지 않는 첫 번째 여행이기에 킬리에서 50리터짜리 배낭을 샀고, 인터넷에서 샌들, 벨크로 지갑, 잉크 소분통, 필름, 가이드북, 멀티콘센트 등 소소한 소품들을 샀다. 그리고 H의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가게에서 트래킹화까지 샀다.


기차와 비행기, 숙소도 예약했다. 미얀마와 태국은 H가 담당하고 내가 인도를 담당하는 분업을 했다. 느려 터진 인도 철도청(IRCTC)을 통해 4개의 노선을, 그리고 열심히 스카이 스캐닝을 하며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까지 5개의 항공편을 예약했다. 숙소도 델리 빼고는 적당한 홈스테이나 게스트하우스로 잡았다. 적절히 쉬면서도 인도를 느껴볼 수 있게, 계획표에 있는 대로.




그리고 오늘이 되었다.

나는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 여행을 결심한 뒤의 시간들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심란하게 했던 이별도 퇴사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3주 동안 정말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책과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피아노를 쳤으며 플룻도 불었다. 집에 내려가서는 살림을 돕고 어머니가 입원하신 병원을 찾았으며, 고양이들을 돌보기도 했다. 틈틈이 운동도 하고, 그간 못 만났던 친구들도 만났다. 정말이지 연애 빼고는 다 했다. 


나는 바쁘고 빡빡한 삶을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그렇지만 이번 바쁨은 조금 달랐다. 모처럼 설렜기 때문이다. 

항상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정해주는 목표를 위해 전력투구했다. 성적, 스펙, KPI 등등 거의 모든 것들이 그랬다. 그렇지만 오롯이 스스로를 향한 도전과 목표를 생각하니 설렜다.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그런 감정으로 3주를 달려왔다.


보이는 그대로를 배낭에 넣었다. 최대한 덜 챙기려 했지만 50리터 배낭은 꽉 찼다.


배낭을 다 쌌다. 최소한의 옷과 속옷, 세면도구, 서류, 신발, 상비약들, 전자제품, 소소한 캘리그라피 도구, 수필집, 카메라 정도만 넣었는데도 배낭은 꽉 찼다. 처음으로 해외로 가면서 쇠고기 고추장과 트래킹화도 챙겨봤다. 오래된 도시를 걷는 것을 좋아하고, 휴양지의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 정도를 꿈꾸던 예전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소품들이다. 지금까지의 나와는 전혀 다른 여행이 이렇게 시작된다고 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나는 원래 돌발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나름 촘촘한 계획을 미리 세우는 편이다. 동선도 고려해서 대중교통도 이용하고, 미리 예매 가능한 곳은 최대한 조치해놓는다. 도쿄를 갈 때면 날짜별로 숙소 기준으로 갈 곳의 루트를 그려 놓았고, 빈틈없이 움직였다. 사이판을 가면 호텔이나 해변 등지를 거니는 그런 느낌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큰 틀에서의 교통수단, 그리고 숙소 정도 빼고는 현지에서의 세부 계획은 없다. 처음에는 이런 무모함에 걱정이 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설렘이 두려움을 압도하고 있다. 여행 중간에 휴양지로써 들르는 방콕을 제외한 나머지 장소에 대해서 나는 세세히 모른다. 예전 같으면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걱정하고 고민하며 스스로를 피곤하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남은 시간까지, 그리고 가서 조차도 그 순간이 주는 설렘을 즐기지 못하고 정보에 대한 공부만 하고자 했을 것 같다. 


이번엔 조금 다르다. 

이전보다는 분명 여행지에 대해 모르는 것은 많기에 헤맬까 봐 걱정이 어느 정도는 된다. 그렇지만 그 순간순간이 주는 느낌을 그냥 받아들이려고 한다. 영화 <김종욱 찾기>에서 나오는 표현처럼, '그곳의 공기가 어떤지, 냄새는 어떤지, 사람이 어떤지, 그리고 느낌이 어떤지'를 생각하며 그곳을 거닐고 싶다. 


이 여행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배낭만 매고 가는 첫 여행'이기 때문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약간 오글거리는 표현이지만, 처음으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그런 여행이기에 나는 예전과 다르게 설렌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을 계속 품고 싶다. 여행 중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4월 27일 11시 반 비행기로 떠납니다. 틈틈이 글을 쓰고 와이파이로 업로드를 하려고도 해보겠지만 한국에서처럼은 안 되겠죠. 최대한 많은 느낌들을 가지고 5월 28일에 돌아오겠습니다. 그래도 중간중간 짧은 글이라도 올릴 듯 하기는 하지만. 갔다 와서는 여행 매거진도 열심히 써보려고 해요. 지금보다 조금 더 차분해진 마음으로 inner peace를 되찾아, 더욱 차가운 반성과 따스한 위로를 전해보고자 합니다. 부디 제 오장육부와 사지육신이 멀쩡하기를 하나님, 부처님, 그리고 브라흐마신께 기도하며 글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