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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Jun 10. 2018

미얀마_바간

석양보다 사람이 아름다운

무작정 떠난 첫 번째 나라의 첫 번째 도시다. 물론 인천을 떠나 쿠알라룸푸르를 들려서 처음으로 내린 곳은 양곤이었다. 그렇지만 양곤에서는 간단한 식사와 맥주 한두 잔이 끝이었다. 우리는 바로 바간으로 향했다. 바간이라는 도시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는데, 미얀마에 빠삭한 H는 파고다와 석양으로 아주 유명한 유서 깊은 곳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의심 없이 그곳을 향했다. 유적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해서 약간의 기대도 되었지만, 설령 그렇지 못해도 상관이 없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뭔가를 보거나 사진으로 간직하기 위함이 아니었으니.




그렇게 바간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완벽한 지방 소도시 그 자체였다. 조용하고 또 조용했다. 함께 여행을 간 세 명이 아무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말이다. 정말이지 모처럼 느껴보는 정적이었다. 서울은 항상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회사에선 팀장이 소리 질러댔고, 거리는 사람과 차들로 넘쳐났다. 항상 문장들이 귀에 꽂히는 느낌을 벗어나기 어려웠던 것이 한국에서의 나였다. 여기는 단연코 그러지 않았다.


처음 본 바간의 모습. 공항부터 뭔가 한적하고 소박하다.


시골보다는 도시를 좋아하는 나였기에 이러한 정적은 평화로움과 함께 따분함을 안겨주었다. 그렇지만 며칠 지나 보니 그 정적이 바간의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냥 볼 때는 모래 먼지가 많이 섞인 바람 사이로 파고다가 보이는 것이 전부인 고도였지만, 자세히 보니 반전이라고 할 만한 요소들이 많았다. 자세히 보고, 오래 보니 바간 역시 사랑스러웠다. 담백하게만 생각하던 된장찌개를 먹다 보니 곳곳에 숨겨있던 한우 차돌박이를 발견한 것과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바간에 대한 여행기나 블로그 후기를 들어보면 파고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천 개도 넘는 오랜 역사의 탑들이 도시 전역을 수놓았다는 점, 그러한 파고다를 요즘에는 등반할 수 없다는 주의사항, 그리고 해가 질 때 쯔음의 풍광이 아름다운 도시라는 점. 이것이 바간에 대해 사람들이 말하는 대부분이다. 여기에 추가하자면 날씨가 좋은 가을 즈음에는 열기구 투어도 가능하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굳이 론리 플래닛 여행도서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쓰고 싶지 않다. (비단 바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른 나라, 도시에 대해서도) 감상적인 허세라기보다는, 가이드북에 비해서 해당 도시에 대한 지식이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신의 무지함을 사방팔방에 폭로하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몇 가지 포인트에 대해 간략히 서술해보고자 싶다.




#바간에도 홍대와 연남동은 있다!

거의 대부분이 고요한 도시이지만, 번화가는 있었다. 바간 내에서는 엄청 번화한 편이어서 '홍대 거리'라고는 불렀지만, 막상 지나고 생각해보니 많이 알려지기 전의 연남동 정도의 분위기의 거리이다. 숙소였던 Thiri Mingalar Hotel 주변에 Thi Ri Pyitsaya 4 st. 였던 것 같다. 그 부근은 적당히 북적거리면서도 전혀 소란스럽지는 않은 중도의 미를 아는 듯한 느낌이었다.


저런 맥주가 800짯, 한화로 600~700원도 안한다.


그 거리에 식당들은 군부독재의 산물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저렴하고 맛있던 미얀마 비어를 기본으로 거의 모든 요리들(미얀마, 태국, 중국, 인도, 티베트, 이탈리안 등등등)을 취급했다. 돌아다니다가 점심 즈음은 다른 곳에서 해결하기도 했지만, 거의 모든 저녁은 여기서 해결했다. 특히나 여기서는 한 번 먹으면 엄청 많이 먹고 돈도 많이 써서 기억에 남는다. 세 남자가 가서 거의 대여섯 종류의 요리를 먹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저렴하고 맛있는 양질의 술과 음식 그리고 바간만의 분위기가 어우러져서 조금 더운 천국의 느낌이었다. 이 거리의 존재는 고요하고 운치 있는 바간을 단조롭지 않게 꾸며주기 충분했다.


#처음으로 스쿠터를 타보다!

약간 쫄보인 탓에 오토바이 및 스쿠터 류의 탈 것을 타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타봤다. 동행인, 그리고 아래 사진에서 남색 옷을 입고 스쿠터를 빌리고 있는 H에 따르면, 미얀마의 거의 모든 스쿠터는 e바이크라고 한다. 중간의 발달과정이 많이 생략되어 있어서 전기로 된 탈 것이 꽤나 보급되었다고 했다. 모바일 인터넷 역시도 3G의 보급에서 4G의 전환 (우리나라처럼)이 아닌 4G 망이 바로 깔려서 모바일 인터넷이 꽤나 빠른 상태였는데,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거의 현지인인 H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스쿠터를 기다렸다.


저렇게 하나 빌리는 데 비용은 6천 짯, 한국 돈으로는 5천 원 정도였다. 정말이지 저렴한 가격에 하루를 빌려서 우리는 바간의 이모저모를 볼 수 있었다. (물론 2018년 기준 미얀마의 최저임금이 4,800짯이니 그쪽 물가로는 완전 저렴까지는 아니다.) 전통시장에서부터 곳곳의 숨은 카페와 바, 그리고 바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파고다까지, 거의 전부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저 스쿠터는 20~40km/h 정도의 속도는 무난히 냈다. 또 오토바이류의 탈 것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한국보다는 스쿠터에 대한 배려가 느껴져서 그다지 위험하거나 무섭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특히 행복했던 부분은 도시의 틈새를 열심히 구경하다가, 더울 때쯤이면 땀을 스쿠터를 타고 이동하면서 식힐 수 있었다. 그렇게 더위에 지칠 틈이 많이 없었다. 


스쿠터와 물 한 통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사람이 석양보다 아름다워

미얀마에 가기 전, 동행인 나와 J가 H로부터 맨날 들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다른 걸 차치하고 사람으로 힐링이 되는 곳이 미얀마라고. 솔직히 가기 전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표현이었다. 2년 전 미얀마에서 꽤나 오랜 시간을 보냈다고 늘 이야기하던 H의 '미얀마 뽕'이라고만 치부했었다. 그렇지만 바간에 있다 보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이 너무 착했다. 물론 우리나라 서울특별시민들도 착하고 시민의식도 뛰어나고 그렇긴 하다. 다만 미얀마에서 느꼈던 모습들은 그러한 양태와는 다소 달랐다. 착함, 그 이상의 순박함과 맑음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숙한 듯 보이지만, 뒤에서는 시끄러운 음악에 춤추고 즐기는 분위기였다.


길 가는 사람도, 축제 중인 사람도, 관광지에서 만난 사람도 웃어주었다. 우연히 강가에서 만난 꼬맹이들과는 잠깐이지만 함께 축구를 하기도 하고, 노래하고 춤추던 사람들과는 함께 어깨도 들썩일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어깨춤을 추려면 술자리 밖에 없는 것 같았는데, 뭔가 새로운 경험이었다. 특히 식당에서 쇼핑백을 두고 온 J의 물건을 찾아준 것도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J 본인 조차도, 짐을 두고 왔는지도 모를 정도였는데, 말이다. 뭔가 우리나라 기준으로 60~70년대의 시골 풍경이었다. 나는 겪어보지 못하고 부모님께 말로만 들었던, 부모님 세대의 어린 시절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어서 특별했다.

 



물론 석양도 아름답다.

그렇지만 바간을 석양과 파고다만이 있는 곳이라고 치부하지는 말아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세 가지 핑계를 대보았다. 나는 두 번이나, 그리고 동행이었던 J와 H는 세 번이나 태양을 보러 갔었기 때문이다. 한 외국인의 사망사고 이후에 파고다 등반이 불허된 다음부터는 일출이나 일몰을 볼 수 있는 스팟이 몇 군데 따로 정해졌다. 주로 파고다 사이사이에 있는 언덕인데, 꽤나 황홀한 풍경을 보여주었다. 난그 정도로도 기대 이상의 대만족이었다. 


소위 '개와 늑대의 시간', 언덕에서 서쪽을 바라보며 멍 때리게 된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바간도 나름 열심히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타워를 만들어서 관광상품으로 만들기도 한 것만 봐도, 서구화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간을 떠날 때쯤, 그리고 한국에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점차 때 묻고 있다며 읊조리던 H의 코멘트가 생각난다. 바간의 입장에서는 발전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날 것 그대로의 고도를 볼 수 있는 것은 얼마 남지 않은 것이리라. 그래서 나중에 너무 늦지 않았을 때, 가족들과도 함께 가보고 싶다. 많이 걷기도 하고, 스쿠터도 타면서 여유롭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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