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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Jun 20. 2018

미얀마_껄로

날 것 그대로의 미얀마

트래킹을 하기 위해 껄로로 향했다. 

1,200 미터 대의 해발고도에 위치한 덕에 우리나라의 선선한 봄, 가을 날씨였다. 바간 역시 찌는 듯 덥지 않았지만, 껄로는 쾌적하기까지 했다. 헤호 공항에서 자동차로 40~5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마을, 껄로. 우리는 담합해버린 택시 기사들에게 굴복하여 어쩔 수 없이 3만 짯에 이동을 했다. 강원도에 산재한 꼬불거리는 도로를 지나 도착한 껄로는 한적한 마을이었다. 바간도 한적했지만 뭔가 유적이 많은 과거의 도시 같은 느낌이라면, 껄로는 그냥 산골 마을 같은 분위기였다.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쨍한 보라색 꽃이 너무나 아름다운 산악도로였다.


숙소에 짐을 풀고 지역의 대표 요리라 할 수 있는 샨 누들로 끼니를 때운 우리는 껄로의 이곳저곳을 산책했다. 관광이라기보다는 산책하며 둘러보았다가 맞는 표현일 것이다. 뭔가 유적이나 유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날 것 그대로의 미얀마 시골 마을의 생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트레킹의 시작점인 시골 정도로 생각하고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시장을 구경도 해보고, 동네 빵집도 가보고, Sam's Family라는 유명 업체(?)에 가서 익일 트레킹을 예약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껄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Beer Country라는 힙한 맥주집과 사람을 여유롭게 만들어주는 날씨 그 자체였다. 트레킹 역시 최고였지만, 그건 다음 글에서 다양한 사진과 함께 다루고자 한다.




#조용한 껄로의 힙스터, BEER COUNTRY

골목골목 열심히 돌아다니니 약간의 노곤함이 몰려왔다. 한국이었으면 시원한 카페를 찾았을 것이다. 도처에 깔린 것이 카페이기도 하고, 5천 원 미만의 가격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의 카페처럼 다양한 음식과 음료를 파는 곳도 드물다. 그러니 습관적으로 카페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여기는 미얀마, 그리고 그중에서도 조용한 산골 마을 느낌의 껄로였기에 그런 건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던 우리에게 한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성수동이나 연남동 뒷골목에서 보일 법한 맥주집이었다. 


외관만으로 모든 주변 가게들을 압도한다.


아무 정보도 없이 간판이 주는 힙스러운 갬성을 좇아 들어갔던 곳이라 혹시 별로일까, 잠시 걱정을 했다. 그렇지만 이내 눈에 들어온 내부 인테리어와 시크한 듯 수줍게 우리를 맞이해주던 주인장, 그리고 뭔가 분위기에 걸맞게 높은 알코올 농도의 맥주는 훌륭했다. 서부 개척시대에 살던 카우보이의 마초적인 느낌을 극대화시켜놓았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보면 볼수록 그곳만의 느낌이 있었다. 일관성은 없었다. 미국 서부의 느낌을 주는 소품들과 체 게바라의 액자, 아웅산 장군과 아웅산 수치 여사의 사진과 가족사진, 액션 영화 포스터 등등 여러 가지가 얽혀 있었다. 불교의 나라라 그런지 불교적인 요소들도 많이 있었다. 처음에는 뭐지, 싶으면서 웃었지만, 주인의 개인적인 취향이 돋보이는 소품들은 그곳 특유의 분위기 속으로 우리를 빨아들였다. 


굉장히 힙하고 투박한 감성인데, 주인 분은 수줍은 성격이다. 이런게 반전인가?



#책 읽기 딱 좋은 그런 날씨

알딸딸 이전의 살짝 불콰한 정도의 기분으로, 우리는 숙소에 돌아갔다. 흡사 개척자라도 된 듯한 당당함으로 말이다. 그리고 휴식을 취했다. 평소 같았으면 적당히 노닥거리다가 잤을 것이다. 한국에서 내내 회사에 시달려온 J와 회사는 그만뒀지만 이거 저거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나와 H는 틈만 나면 뻗어서 쉬기 바빴다. 숙소도 깔끔했고 적당한 알코올 기운에 잠이 스르르 찾아왔지만 뭔가 아까웠다. 껄로의 온도와 습도는 1년 동안 흔히 볼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호텔 테라스에 나가서 조신하게 책을 봤다. 


이런 숙소에서 어떻게 잠이 안 들 수 있을까.


김보통 작가의 책이었는데, 나의 상황과 겹치는 부분이 되어서인지 금방 읽어 내려갔다. 비슷한 처지에 있던 사람들이 담담히 살아가는 모습에 무의식적인 위로를 꽤나 받았던 듯하다. 날씨까지 도와주니 마음은 더욱 여유로워졌다. 게다가 숙소로 돌아오던 길에 샀던 미얀마 위스키 '그랜드 로얄'까지 홀짝홀짝 마시면서 그런지, 뭔가 더 분위기에 젖어드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휴가에 왔구나, 싶었는데.. 

저녁 내내 낮술이 주는 숙취의 늪에서 헤엄쳤다고 한다. 




그리고는 짐을 쌌다. 저녁의 거리를 돌아보고 그다음 날의 트레킹을 준비하느라 우리 모두 바빠졌다. 운동 중에서도 특히 등산류의 것들을 크게 즐기지 않았던 탓에, 개인적으로는 소소한 도전이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 더 부지런을 떨었다. 1박 2일의 트레킹을 제대로 즐기지 못할까 봐, 또 행여나 민폐 꾸러미가 될까 봐. 


당시 나에겐 설렘과 더불어 처음으로 접하는 무언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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