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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Jun 22. 2018

미얀마_트레킹

껄로에서 낭쉐까지의 자연과 사람

아침이 밝고 약속 시간에 맞춰 Sam's Family로 향했다. 세 명이서 가는 걸로 했지만, 그쪽에서는 다른 여행객 네 명과 함께 가기를 넌지시 추천하는 듯한 기분이었고, 가격도 조금 떨어지는 김에 우리도 그러기로 했다. 약간 불편할 것 같기는 했지만, 여기 아니면 그럴 기회도 없으니 좋게 생각했다. 몇 분이 지나자 두 명씩 짝지은 사람들이 들어왔고, 우리는 껄로 트레킹을 처음 만든 것과 같이 느껴지는 Uncle Sam의 안내와 격려를 들었다. 프로페셔널한 그의 간략한 설명으로 인트로를 마친 우리는 트럭을 타고 1박 2일 트레킹의 출발점으로 이동했다. 




우리가 탄 트럭은 이동하면서 야채를 팔 것만 같은 느낌의 탈 것이었다. 그래서 뒷 칸에 세네 명씩 앉았는데, 뭔가 배추가 된 기분이었다. 김장거리처럼 트럭을 타고 30분 정도, 일행인 J가 약간 멀미할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우리는 출발점에 도착했다. 그리고 잠시 동안 배추에서 사람으로 기분을 재정비하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신기하게 비눗방울처럼 불 수 있는 풀도 있었다. 지금 봐도 신기하다!


말이 거창해서 트레킹이지, 산책과 같은 느낌이었다. 

자연 그대로의 미얀마를 한껏 품은 비포장도로를 편하게 거닐면서 두리번거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이드 파토의 설명에 따라 특이한 식물들을 구경하고 때로는 맛보기도 했고,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지평선 앞에서 풀을 뜯는 소를 보기도 했다. 그리고 농사일을 돕다가 외부인인 우리에게 손을 밝게 손을 흔드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우리도 인사를 하기도 했다. 수줍은 듯 경계하는 표정이었지만 웃으면서 "밍글라바~"라고 인사하는 모습은 그곳의 맑은 공기와 함께 도시에 찌든 일행의 피로를 풀어주기 충분했다.


사진으로만 봤던 시골의 한가로움을 직접 목격했다.


쭉 걸었지만 끝이 안나는 길, 때로는 엄청 숨차게 하지만 오르고 나면 시원 해지는 언덕, 그리고 곳곳에 쌓인 동물들의 질퍽한 흔적을 지나 우리는 밥을 먹었다. 현지식으로 차려진 식사여서 몇몇 반찬은 향신료 기운이 지나치게 강렬하기도 했지만, 다들 피곤해서인지 금방 해치웠다. 밥을 먹은 곳에서 2~3시간 여유롭게 쉰다고 들었지만, 비가 내리는 듯하게 날씨가 급변하면서 우리는 조금 자려고 하다가 급하게 일어났다. 그리고는 비를 피해 서둘러 길을 재촉했고, 급작스러운 비를 피해서 하룻밤 묵을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은 생각보다도 더 시골이었다. 

몇몇 비상 조명을 제외하고서는 거의 전기가 없었다. 따라서 냉장고, 에어컨, 선풍기 등등..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명의 도구들을 활용할 수 없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하수도 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마음대로 온도를 낮출 수도, 시원한 것을 먹고 마실 수도, 제대로 씻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물론 통신상황은 괜찮아서 3G정도는 터지는 느낌이었다. 전화도 가능하긴 하고.) 그렇지만 그곳 사람들은 그걸 답답해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익숙해진 것도 있겠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느낌이 강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불만족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최선을 누리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했다.


우리나라 시골이 커피라면 여기는 티오피를 증류해서 농축한 듯한 느낌이다. 정말이지 이게 끝. 더 이상의 시설과 설비는 없다.


그래서 우리도 세팍타크로를 하는 아이들을 구경하고, 물로 미지근해진 맥주를 마시고, 약간의 부채질을 하면서 동네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로 즐기려는 마음으로 생각하니, 그다지 크게 불편하지도 않았고 나름 행복했던 것 같다. 7시간 정도의 트레킹으로 지친 기운이 조금 가라앉자, 일행은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졌다. 


미국인 커플인 제이크와 셀리나는 대학원생으로, 제이크가 퇴사하고 같이 10개월째 세계를 돌아보고 있다고 했다. 캘리포니아 출신이다 보니 아무래도 그쪽에서 가까운 코스타리카부터 시작해서 남미를 거쳐 서쪽으로 돌고 도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프랑스인 커플 로망과 클로에는 함께 서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여행 중이었다. 아무래도 클로에가 휴학을 하고 Gap Year를 캄보디아에서 보내는 바람에 롱디 커플이 된 둘은, 로망이 졸업하자 짬을 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제이크와 로망에게도 물론 써주었다.


88년생부터 95년생까지 섞여 있던 우리는, 나름 비슷한 시대를 살아가는 또래로써 많은 이야기를 했다. 여행을 하는 현재에 대해서도, 약간의 미래에 대해서도, 그리고 다가올 월드컵에 대해서도 토론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다만 한 가지 신기했던 점은 생각보다 그들의 북한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는 점이다. 한국인인 우리들보다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본다는 점이 신기했다. 


"휴전 중인데 무섭지는 않아? 전쟁 나면 어떡해"


"그래도 요즘 화해 무드니깐 좋겠다. 김정은이랑 회담도 하고 한다던데?"


"이번에는 정말 잘 지내는 거 맞아? 한국인 입장에서는 북한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이러한 북한에 대한 화두는 끊이질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스포츠, 특히 축구에 대한 이야기보다 길어져서 신기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서구권의 그들에게는 분쟁지역인 한반도에 사는 당사자에게 북한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게 더 특별한 경험이었지도 모른다. 그들 덕분에 통일과 민족 등에 대한 가치를 정말 모처럼 생각해볼 수 있어서 나 역시 신선했다. 북한이건 축구건, 다양한 소재의 대화를 통해 국적을 초월해서 친해질 수 있었으니, 그저 그걸로 만족했을 뿐이다.




숙소는 우리가 밥을 먹은 가정집의 2층이었다. 허름하다면 허름했지만 딱히 특별한 건 없는 줄 알았는데, 자기 전에 가이드 파토 말로는 우리가 자는 곳의 바로 밑 1층에서는 소가 잔다고 했다. 별 일은 없을 것이지만, 혹시라도 소가 가려워서 기둥에 머리를 긁으면 약간 건물이 흔들릴 수 있는데 흔히 있는 일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코멘트도 더했다. 재밌기도 하고 약간 황당하기도 했지만, 거기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실제로 잘 때 몇 번 흔들리긴 했지만, 별 일 없이 무사히 잘 살아 돌아와서 서울에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즐거웠던 트레킹도 끝.


이튿날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우리는 또 걸었다. 자연 풍광은 달랐지만, 어느 정도 트레킹에 적응했기에 반나절은 금방 지나갔다. 점심 먹을 때가 다가오자, 인레 호수가 있는 지역에 들어가는 입장 티켓을 구매하고 저 멀리서 호수가 얼핏 보이기 시작했다. 물 냄새가 가까워질수록 트레킹의 종착점에 왔다는 기분에 상쾌하기도 했지만, 1박 2일의 시간 동안 친해진 사람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아쉬움도 컸다. 내가 처음부터 육체적으로 힘들 것이라고 생각해서 걱정했던 트레킹은 어떻게 보면 운동이라기 보다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안녕이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라는 가사의 015B의 노래도 있지만, 가이드였던 파토와 제이크, 셀리나, 로망, 클로에와의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일 가능성이 높기에 약간 씁쓰름하기도 했다.




저 사진을 찍고 나서 파토를 제외한 나머지 7명은 배를 타고 인레 호수를 끼고 있는 도시 '낭쉐'로 향했다. 30분 조금 넘게 배를 타니 우리는 한 포구에 도착했고, 헤어졌다. 헤어졌다는 말은 연인 사이가 아니더라도 참 차가운 말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여자친구와 혹은 친구들과도 약속이 끝날 때, 헤어지자는 말보다는 언제 각자의 집으로 가냐는 이상한 표현을 다소 강박적으로 쓰기도 한다.)


그래서 안녕이라는 "Good Bye"보다는 '또 보자'는 뜻으로 "See you, À bientôt!"라고 인사했다. 말이라도 그렇게 하니, 헤어짐의 아쉬움은 조금 덜 해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말이 씨앗이 되었는지, 아니면 여행하는 사람들의 코스가 거기서 거기여서 그런 건지, 우리는 돌아다니면서 틈틈이 계속 마주칠 수 있었다. 


인연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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