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함께 쉴 수 있는
낭쉐는 말 그대로 '물의 도시'였다. 인레 호수를 중심으로 도시가 위치하고 곳곳에 운하가 있고, 꽤나 많은 물류가 보트를 통해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얀마의 베네치아'라고 하기에는 좀 느낌이 달랐다. 지역과 문화의 차이도 있었지만, 베네치아처럼 관광지로 완벽히 정비된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도 보트 투어가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의 보트는 관광객들의 루트라기보다는 주민들의 교통수단에 가까웠다. 그래서 예전에 베네치아에서 탔던 곤돌라와는 느낌이 달랐다. (낭쉐의 보트는 모터라는 것도 한 몫했지만..)
도시라고 하기에도 조금 민망한 느낌의 그곳.
낭쉐는 사실 껄로와 비슷하게 작은 마을에 가까웠다. 나중에 양곤에서 미얀마 사람들이 어디 어디 가봤냐고 물어봤을 때, 바간은 다들 알아도 낭쉐는 모르는 경우가 꽤나 있었다. 인레 호수 근처에 있는 곳이라고 해도 다들 호수만 알았다. 낭쉐는 그 정도 사이즈의 조그만 마을이다.
그래서 그런지 도시 전역은 바간 그 이상으로 차분했다. 그리고 자동차도 많이 없었는데, 현지의 사람들은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꽤나 많이 타고 다녔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도 여기에서는 자전거를 빌려 타고 마을 곳곳을 움직였다. 아무래도 나름 높은 지대에 위치해서 그런지, 날씨도 선선했고 벌레도 생각보다 별로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움직일 때는 여름과 가을 사이의 한강 라이딩하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다만 한강보다 더 좋았던 점은 시끄러운 음악을 틀고 폭주하는 라이더들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자전거를 즐겨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보다 빠르게 달리면 미친놈이고, 나보다 느리게 가면 바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여기엔 미친놈도 바보도 없었다. 몇 대 안 되는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자전거도 어우렁 더우렁 달릴 수 있는 여유로움이 좋았다.
트레킹의 여독을 풀고 난 다음 날에는 전일 보트 투어를 했다. 우리는 숙소를 통해 예약해서 돈만 직원에게 지불하면 돼서 편했다. (약 18,000짯 정도 됐던듯하다. / 한화로는 약 15,000원) 나중에 보트 아저씨에게 들어보니, 숙소가 커미션 얼마를 떼고 보트 주인이 얼마를 받고 실질적으로 보트를 운전해주는(?) 아저씨에겐 5,000짯 정도가 들어온다고 했다. 뙤약볕에 제일 고생하는 게 그분이었는데, 반나절을 땀 흘려도 떨어지는 돈이 우리 돈으로 4천 원 정도라고 하니.. 낭쉐의 보트 위에서도 자본주의는 작동하고 있는 듯했다.
보트 투어는 전반적으로 좋았다.
호수를 끼고 있는 지역의 경치를 즐길 수 있었고, 틈틈이 껴있던 기념품 파는 것도 너무 상술이 과하지 않아서 귀여웠다. 직물을 파는 곳에서는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가르쳐 주고, 금은 세공품을 파는 곳에서는 광석을 녹여서 손으로 일일이 작업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나름 콘텐츠가 탄탄해서 지겹지 않았다. 콘텐츠 사이사이에 설명을 유창한 영어로 이어가던 현지의 소년, 소녀들이 틈틈이 한국말로 영업하는 것은 정말 미워할 수 없는 현지의 상술로 기억한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그 큰 인레 호수에서 배를 타고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볕은 강했지만, 습도가 높지 않은 날씨라 호수는 시원했다. (그래도 방심하면 뜨거운 햇볕에 덴다..) 틈틈이 튀기는 물방울도 더위를 이겨내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물살을 가르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니, 옛날 귀족이나 왕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역사책이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예전 높으신 분들이 배를 띄우고 그 위에서 시조를 읊으며 술잔을 기울이고는 한다. 솔직히 뭐 굳이 저렇게까지 하나, 싶은 생각이 많았다. 그러면서 사람마다, 시대마다 취향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낭쉐 이후로 그 마음을 새삼 공감할 수 있었다.
다만 개인적으로 조금 마음이 안 좋았던 것은 돈벌이를 위해 박제된 듯한 빠다웅족의 모습이었다. 빠다웅족이라는 소수민족은 긴 여인의 목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목에 겹겹이 링을 둘러서 목이 길어진 사진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을, 나는 그들의 기념품 매장에서 보았다. 그곳을 구경하고 나오는 곳에서는 수십 개의 링을 목에 끼고 있는 빠다웅족의 여인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피곤해 보였지만, 나름의 밝은 미소를 띠고 관광객들과 사진을 찍어 주고 있었다. 예전에 읽었던 어느 단편 소설에서 소수민족들이 박제되어 박물관에 있는 미래 시대의 모습을 읽은 적이 있다. 처음 봤을 때는 나도 신기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스산함이 떠올라 씁쓸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낭쉐는 발전하고 있다.
처음에는 '2년 전과는 다르게 낭쉐가 예전 같지 않다.'는 H의 말을 장난으로 넘겼다. 자주 하는 표현이라, 그저 일종의 '여행 홍대 병'이라고 치부했다. 그렇지만 시간을 보낼수록 나에게도 변화하는 마을의 기운이 느껴졌다. 호텔은 열심히 지어지고 있었고, 다양한 나라의 음식과 문화들도 곳곳에 퍼지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슈퍼마켓에서 발견한 참이슬과 불닭볶음면, 그리고 한국 식당에서 맛본 귀여운 맛의 김치찌개와 떡볶이가 잊히지 않는다.
이게 좋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미얀마 사람들도 잘 모르는 마을의 구석까지 세계화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다는 것은 약간은 무섭게도 느껴졌다. 안 그래도 어쩔 수 없는 현상을 스마트폰이 더 가속화했을 것이다. 세계화라는 것은 발전과 다르다. 두 모습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서 혼동될 수도 있지만, 세계화는 다양성을 없애는 평준화와 비슷한 뜻이다.
낭쉐가 발전하는 것은 좋다. 미얀마 낭쉐의 사람들에게만 조용한 시골로 남아 있으라고 하는 것은 조금 더 발전된 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기심이다. 다만 개인적인 바람은 낭쉐가 발전하면서 고유의 문화는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고유의 느낌을 버리고 무작정 발전하는 것, 이는 우리나라의 곳곳에서도 드러나는 문제점이다. 발전의 속도는 빠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장소의 특별함을 제거한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이를 잊지 않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글을 쓰면서 다시금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