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_델리 #1

무질서 속의 질서를 보여주는 흥정의 도시

by 츤데레

나는 델리에서 두 번 묵었다.


동행이던 H가 고산 증세로 힘들어해서 예정보다 며칠 일찍 델리로 와서 묵은 사흘과 원래 나의 예정대로 보낸 이틀, 총 5박 6일 정도의 시간이었다. 나에게 델리는 훌륭한 여행지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동시에 교통의 요지로써 훌륭한 경유지였고, 인도에서 틈틈이 '나름의 문명'을 느낄 수 있는 대도시이기도 했다. 인구밀도가 낮은 라다크와는 달리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사는 이 도시는, 인도의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 준 고마운 곳이기도 하다.




올드 델리와 뉴 델리를 통칭하여 이르는 델리는, 인구 1천6백만 명 이상이 사는 정말 큰 도시이다. 역사도 오래된 도시로 이슬람과 힌두교 문화권의 유적도 즐비하다. 인디아 게이트와 코넛 플레이스 주변으로는 완전한 신시가지를 이루고 있고(우리나라의 홍대나 명동 같은 분위기인 코넛플레이스에는 스타벅스를 비롯한 프랜차이즈를 비롯해서 다양한 매장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버팔로 고기로 소고기에 대한 향수를 채울 수도 있다..), 올드 델리와 그 밖의 몇 군데 지역은 우리나라 70년대 정도의 분위기에 오래된 유물이 향신료처럼 자리하고 있다.


쭉쭉 뻗어 나가는 도로에는 빽빽하게 자전거, 인력거, 오토바이, 릭샤(뚝뚝이), 버스, 자가용 등등 다양한 교통수단이 난무한다. 과거와 현재가 오묘하게 공존하면서 엄청나게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신기함과 함께 약간의 공포를 안겨주기도 하는 곳이다.


뭐 대충 여기 공항이랑 공항철도까지만 깔-끔하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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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정의 시작은 금방 우리에게 다가왔다.

순박하고 맑은 땅인 라다크에서 인디라 간디 공항에 도착해서 델리 시내로 가려는 순간, 그 첫인상을 기억한다. 45도 정도의 건조하고 더운 날씨에서 모든 사람이 바쁘게 움직이던 모습, 그리고 그 틈틈이 소소한 돈이나마 벌어보겠다고 소리 지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좋게 말하자면 그런 건 열정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의 열정은 조금 과해서 탈이었다. 나와 H가 공항철도로 델리에 가려고 지하철 타는 곳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에게 호객 행위를 하던 택시 기사가 던진 말이 압권이었다.


"일요일이라 오늘은 지하철 운행 안 해. 그니까 택시 타야 돼, 쁘랜!"


뭐.. 당황스러웠지만 미리 알아본 덕에 그 말을 무시하고 지하철 역으로 향했고, 역시나 책과 인터넷에서 미리 본 대로 열차는 순조롭게 운행 중이었다. 택시 기사가 던졌던 그 구라를 곱씹으며 우리는 시내로 향했다. 생각보다 좋은 시설의 공항철도는 약간 적응이 안될 정도였는데, 30분 정도 타고 뉴델리 역에 도착하니 인도의 분위기에 바로 적응할 수 있었다.


릭샤 겨우 탔는데, 아재는 오토바이 운전자랑 싸움났다. 쉴 틈이 없는 곳이다.


인도에서 11년 정도 살았던 내 친구 B가 해준 말이 기억난다. 그는 그곳에서의 삶이 끝없는 흥정의 연속이라고 했다. 처음엔 재미도 있지만 끝나지 않는 흥정이 이내 짜증 나게 될 것이라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그가 덧붙였던 말은, 그래도 결코 포기하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

뉴델리 역에서부터 쭈욱, 우리는 끝없는 흥정의 상황에 대면했다. 그들은 항상 "마이 쁘랜, 굳뜨 쁘라이쓰 뽀유! 잇츠 칩!" 등의 말을 달고 살았지만, 최소 3~4배가 넘는 금액을 대면서 우리를 꼬셨다. 물론 친구에게 교육을 잘 받은 덕에 쉽게 당해주지만은 않았다. 현지인이 타는 릭샤 가격이 100루피라면 그들은 400루피 정도를 불렀고, 나는 열심히 흥정해서 130루피 정도에는 타고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치고 짜증 날 때도 있었다. 특히 한국 돈으로 환산해봤을 때 1~2천 원 정도면 그냥 넘어가고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들의 부당한 바가지 금액에 순순히 응하게 된다면, 이는 내 뒤에 올 여행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민폐가 된다. 그리고 점점 지나다 보니, 조금이라도 더 벌고자 하는 그들의 순수한 열정(?)에 나도 합리적인 가격을 지불하고 싶은 순수한 열정(!)으로 대응해주는 게 맞다는 생각도 들었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좋게 생각하니 나도 최대한 좋게 좋게 그들을 상대했고, 점차 그들의 삶에 적응해갔던 것 같다.




모든 게 흥정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안 되는 것도 되고, 되는 것도 안 되는 곳.

그게 바로 인도다. 가끔 외국인이라서, 힌디어를 못해서 호구 잡힐 때도 있다. 그렇지만 조금만 '한국 깍쟁이' 느낌을 버리고 웃으면서 다가가면 안 될 법한 게 금방 되기도 한다. 인도 유심을 개통할 때가 바로 그런 경험이다. 인도는 다른 곳과 다르게 유심 개통을 하는 절차가 조금 복잡하다. 증명사진과 여권이 필요하고, 발급 신청을 한 주(state)에서 일정 기간 벗어나면 안 된다. 그리고 추가적인 신청을 개인 단말로 해야 된다고 들었다. 이러한 복잡한 절차를 쉽게 하기 위해서 약간의 웃돈을 주면 대행을 해주는 곳이 많다.



유심 대행을 신청할 때 H와 달리 나의 경우에는 증명사진이 없어서 골치가 아팠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만난 한국어를 독학하는 현지인의 도움으로 사진이 빠르게 나온다는 사진관에 갔다. 그곳에서는 줄이 매우 길었지만, 나와 함께 했던 사람의 도움으로 나는 그 인파들을 뚫고 3분 만에 사진 인화까지 마쳤던 기억이 난다. 인도는 그만큼 반전이 있는 곳이다.


택배를 보낼 때도 그랬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현지 사람들의 도움으로 우체국을 찾고, 국제 배송은 더 큰 곳으로 가야 한다는 안내를 받고 그곳으로 이동해서 택배를 겨우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고생했던 부분은 그곳의 밀봉 방식이 한국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특히 북인도에서는, 밀봉을 천으로 한다고 했다. 박스로 물건을 포장하고 테이프로 간단히 붙인 뒤, 하얀 천으로 박스를 덮고 꼼꼼하게 꿰매는 방식이다. 이 또한 우체국 주변 행인들이 손짓 발짓 다 해서 알려줬기에 업체를 찾아서 포장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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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식으로 시작해서 오른쪽 사진처럼 완성된다. 거의 수공예 작품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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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천 위에 주소를 쓰고 이런 딱지를 받으면 된다. 약 1달 뒤에 도착한다.


라다크에서의 두꺼운 옷 같은 짐들을 보내려면 꼭 필요했던 일이라 어쩔 수 없이 했지만 웬만하면 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택배 포장만 넉넉히 1시간 정도 소요되었는데, 50도 조금 안 되는 더위에서 그걸 기다리는 것은 고역이다. 물론 하시는 분들도 힘들겠지만 말이다.




이처럼 델리는 자본주의적인 친절이 난무하는 곳이었다.

뭐 델리만 그런 것이 아니고, 나중에 보니 인도가 좀 그런 느낌이 강했지만 말이다. 흥정과 바가지 같은 것들이 난무하면 흔히들 질리기 마련이고 짜증도 꽤나 날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인도를 좋아하고 델리에 또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이유는 저러한 우여곡절을 재미로 만들어주는 사람들과 쉴 새 없이 양질의 만족감을 주는 볼거리 때문이다. 수많은 유적들과 그것들이 품고 있는 인도의 오랜 역사와 종교, 예술은 정말 스케일이 다르다. 질적으로도 우수하지만, 인도 역시 대국(大國)이라 그런지 양적으로도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라다크에서는 자연에 압도당했다면, 델리에서는 과거의 사람들이 만든 흔적과 현재의 사람들이 만드는 분위기에 압도당했다고 할 수 있다.


1편에서 델리가 뿜어내는 문화를 흥정을 중심으로 풀어보았다. 엄청 오래 머물지는 않았지만, 그곳을 표현할 수많은 단어 중에 제일 또렷하게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이 나에겐 '흥정'이었을 뿐이다. 충분히 뻘소리를 길게 작성한 것 같으니, 델리에서 기억나는 볼거리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델리 2편에서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다음 편은 글보단 사진이 많겠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