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 그리고 사람까지 모든 걸 품고 있는
내가 경험한 델리를 세 가지 키워드로 풀어보고자 한다.
델리는 역사도 오래되고, 워낙 크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정리하기가 어려운 곳이다. 그렇지만 며칠 동안 보고 느꼈던 것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들을 추려보니 딱 세 가지였다. 과거의 유물, 발전하는 현재, 그리고 그 시간의 수평선 상에서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델리의 과거는 그곳을 점령했던 수많은 국가들이 세운 건축물에서 드러난다. 올드 델리에 있는 레드 포트를 시작으로 델리 남쪽 외곽 지역의 꾸뜹 미나르, 후마윤의 묘 등은 그곳을 점유하던 다양한 세력들의 문화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후마윤의 묘로 가는 릭샤에서 기사 분이 나에게 했던 말은 인도인 특유의 문화적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저기 보이는 불교 사원 보이지? 저거 거의 1000년 된 거야."
"와 대박, 장난 아니네."
"근데 이 정도는 오래된 것도 아니야. 인도에서는!"
약간 당황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역시나 세계 4대 문명의 발원지 중 한 곳이라 그런지, 정말 발에 차이는 게 유적지였다. 델리에서만 구경해도 몇 주는 걸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말이다. 모든 걸 다 돌아볼 수 없어서 가이드북과 인터넷, 그리고 다양한 주변 사람들의 후기가 꼽아주는 곳을 전전했다. 나는 아그라센 키 바오리, 인디아 게이트, 라즈 가트, 로디 가든, 꾸뜹 미나르, 후마윤의 묘.. 이 정도에 가 보았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곳에 대해 잘 안다고도 다 보았다고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델리라는 도시의 역사가 주는 여운만은 충분히 느꼈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인도의 유적들은 중국처럼이나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사이즈도 크고, 부지도 넓고, 그 구석구석 섬세하게 꾸며놓은 장식까지 일품이다. 하지만 차이점은 뭔가 더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중국이 인도보다는 더 발전해서인지(?), 중국의 유적에 가보면 관광상품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에 비해 인도의 유적들은 방치되어 있다. 그래서 보존도는 다소 안 좋은 게 마음 아프지만, 현재에 살아가는 사람들과 어우러지면서 자연스러운 공원 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로 꾸뜹 미나르에서는 유적으로 보이는 돌덩이 위에 누워 편히 쉬고 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처음에는 에티켓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내 과거의 유산이 박제되어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오늘날에 녹아들 수도 있다는.. '인도식' 사고를 약간은 이해하게 되었다.
델리의 신시가지인 뉴델리의 상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코넛 플레이스라는 번화가를 들고 싶다. 여행자의 거리로 대표되며 없는 게 없는 빠하르간지도, 인디아 게이트를 중심으로 형성된 인도 정치가도 뭔가 새로운 인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그렇지만 코넛 플레이스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인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준 장소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인도는 매우 보수적이고, 종교적이며, 발전이 되지 않은 나라이다. 사실 아닌 부분이 많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나 또한 그리 믿었다. 우리나라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몇십 년 전에 쓰인 책을 토대로 인도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흡사 서구의 사람들이 한국전쟁만을 떠올리며 우리나라 하면 폐허를 상상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그렇지만 코넛 플레이스에서의 인도는 조금 달랐다. 노출이 심하고 개성적인 의상을 입고 거리를 당당하게 활보하는 20대 남녀들, 에펠탑 앞을 보는 듯한 과감한(?) 스킨십, 스타벅스를 비롯하여 다양한 글로벌 기업들이 입점해있는 쇼핑몰, 낮술이 가능한 바에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버펄로 패티로 만든 버거(뭐 엄밀히 이야기하면 인도에서는 BEEF와 BUFALO MEAT를 구분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건 소고기가 아니랜다.)를 파는 햄버거 가게까지.
우리가 상상하는 종교의 나라 인도가 그곳에는 없었다. 물론 나도 겉으로만 본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겉으로라도 그렇게 보이는 것은 '인도같이 종교의 힘이 전통적으로 강한 보수적인 나라'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그곳에서 본 풍경이 다른 어떤 유적이나 유물보다도 인상적이었다. 많은 유적들이 인도의 시간을 과거로 박제시켰다면, 코넛 플레이스는 오늘날 시점을 인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다른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델리에서 수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본인의 나라이지만 모르는 곳이 많다며 배낭여행을 하고 있던 네이트라, 친절하게 동선을 짜주던 릭샤 기사 비비크마, 이슬람에 대해 오해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주던 이크발 등등. 우리나라였다면 만나지 못했을 많은, 그리고 다양한 범주의 사람들을 만났던 것 같다.
세상이 평등하고 공평한 곳이라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민주주의의 시대이기에 계급이라는 개념의 색채는 옅어지고 있지만 엄연히 계층은 존재한다. 자본에 관해서라면 이는 더 확연히 드러난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심화되는 양극화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시점이니 말이다.
더욱이 인도는 그러한 격차 문제가 더욱 심한 곳이다. 부자는 정말 상상도 못 할 정도이지만, 그 반대도 뭐.. 상상하지 못할 정도이긴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보다 생각할 수 있는 계층의 폭이 아-주 넓은 인도는 우리의 관념대로라면 암울한 곳이어야 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정도의 생활도 못 누리는 사람이 우리나라 인구의 몇 배는 될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거긴 그렇지 않았다.
물론 내가 노숙자 혹은 부랑자로 추정되는 사람들과 대화해보지는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내가 만난 대다수의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그들보다 윤택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우리는 항상 미간에 주름이 가득한데.. 그러한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이제는 종교에서 나아가 생활로써 스며든 힌두교적인 가르침 덕이 아닌가, 생각해봤다. (모든걸 일반화해서 인과관계를 정리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지만 이것 말고도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또 다른 범주의 모습들도 익히 겪었다. 꾸뜹 미나르에 갔을 때엔 능숙하게 사진 포인트를 가르쳐주면서 친절하게 내 사진을 찍어주던 아저씨가 있었다. 자발적(?) 가이드를 해주던 그는 본인 나름의 동선을 마무리 지었는지, 조금 뒤에 시크한 인도 악센트로 "띱(Tip)"을 속삭였다. 나에게 많은 돈을 바란 것도 아니고, 나도 그렇게 주지도 않았지만.. 뭐 재밌는 경험이었다. (바라나시와 기타 등등 다른 도시에서도 익히 있던 일이다.)
그리고 항상 외국인인 나와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당연히 연예인이나 모델급의 외모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 눈에는 내가 신기한가 보다. 안 그래도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던데, 자주 못 보는 백인이나 동아시아인을 보면 뭔가 인형탈 쓴 놀이공원 직원 같을 것이다. 그래서 진짜 말 그대로 엄-청 찍었다. 아이를 안고도 찍고, 어깨동무를 하고 찍기도 하고, V를 그리기도 하고.. 피사체가 되는 것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그곳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저런 현상보다 더 신기했던 것은 난데없는 사진이었지만, 그들과의 촬영은 불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사진첩을 보다가 그들과 찍은 사진을 발견하면 살짝 미소가 머금어진다.
정말 인도는 신기하다. 여러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