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_아그라

사랑이란 이기적인 것

by 츤데레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아그라에 갔다.


아그라 포트도 있고 다른 볼거리 또한 있다고 했지만, 오로지 그 건물 하나를 보기 위해 델리에서 아그라로 향했다. 처음으로 타는 인도 기차가 4시간 정도 연착이 되고, 기온은 45도를 넘나들었다. 그래도 갔다. 개인적으로는 그만큼 기대를 많이 했던 곳이었다.


IMG_2126.JPG 더위만큼이나 기다림도 끝없는 인도의 기차..


다섯 살 혹은 여섯 살 쯔음, 나는 타지마할을 TV에서 처음 봤다. 세계 7대 불가사의를 다루던 다큐멘터리였던 것 같다. 그리고는 어린 마음에 저런 장소들에 언젠가는 모두 가리라, 다짐했다. 그곳들 중에 이미 다녀온 곳도, 앞으로 손꼽아 가고 싶어 하는 곳도 있다. 그렇지만 제일 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타지마할이다. 이번 여행 이전의 나는 인도를 좀 꺼려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결국 인도에 왔고, 20년도 넘는 시간 전부터 궁금해했던 그곳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40도.

아그라 역시 매우 더웠다. 태양이 작열하기 전에 타지마할에 들어가고자 했던 나와 H는 아침부터 서둘렀다. 줄은 매우 길었다. 그렇지만 외국인 게이트는 따로 있었고, 우리는 한산한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인도의 거의 모든 유적(특히 그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면 더더욱)은 외국인과 현지인 구분을 해서 돈을 받고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해준다. 외국인 티켓이 훨씬 비싸지만, 기다리는 시간도 적고 가끔은 물도 챙겨주는 그런 방식이다. 타지마할의 경우 자국민에게는 50루피(약 800원), 외국인에게는 1,000루피(약 16,000원)를 받는다. 20배 정도 비싼 가격을 내는 대가로 외국인인 우리가 얻은 것은 쾌적한 입장과 타지마할 내부 관람 때 필요한 일회용 신발 싸개이다.(현지 사람들은 그 뜨거운 바닥을 맨발로 돌아다닌다.)


타지마할의 경우 입장 후 검문검색도 엄청나게 빡센 편(힘들다는 표현은 모자란다.)이다. 폭탄 및 흉기는 당연히 안되고, 펜과 마이크를 비롯한 우리가 여행지에서 일상적으로 쓸 수도 있는 것도 안 되는 것이 많다. 낙서를 비롯한 오염을 사전 차단하여 문화재를 보호하겠다는 인도 당국의 의지가 보이는 부분이다. 검색도 X-레이로만 하는 게 아니고, 경찰들이 가방 방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꺼내서 살펴본다. 약간 귀찮고 번거로움이 있지만, 지금껏 상당히 훼손된 인도의 문화유산들을 봐온 결과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복잡한 코스를 무난하게 넘기면 멀리서나마 타지마할의 돔이 보인다.

붉은 사암으로 만든 문을 지나면 드디어 그 화려한 자태를 드러내겠지, 싶은 마음만 든다.


두근. 두근.

그러고 나서 한 번 더 티켓 검사를 하면, 타지마할을 볼 준비를 마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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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지나는 과정에서 액자 안의 그림처럼, 타지마할을 볼 수 있다. 약간의 설렘이 조금씩 증폭된다. 몇 걸음만 더 걸으면 하얀 진주 빛깔로 수놓은 예술 작품을 두 눈으로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의 경우에도 문을 나가자 압도되는 타지마할에 숨이 멎을 듯했다.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는 인도의 유적에 비하면 다소 작다고도 볼 수 있지만, 철저히 계산한 대칭구조를 토대로 한 화려함이 하나의 개인에게 주는 압도감은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런 하나하나까지 건축가가 의도한 기획이라고 하는데, 그 섬세함에 경의를 표한다. (스탕달 증후군이 심한 사람이라면 쓰러질 수도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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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과 관계없이 사람들의 표정은 거의 비슷하다. 설렘과 환호.


들어가자마자 다양한 포즈와 각도로 타지마할과의 추억을 담으려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너무 아름다우니, 다들 그럴 수밖에. 인도에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인도 역시 중국급 대국이기에 쉽게 타지에 가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 이런 유서 깊은 곳에 오면 더 설레는 것이라고 현지인들을 내게 말해줬다. 조금 더 지나가면 다이애나비가 사진 찍은 곳으로 유명한 다이애나 벤치가 나오고, 또 다른 포토제닉의 현장이 펼쳐진다.


그래서 나도...


KakaoTalk_20180820_002743880.jpg 쪽팔림은 잠깐이지만, 인생샷은 영원하다.


현지의 더위가 엄청났던 탓에, 나와 동행인 H는 30분 정도 있다가 먼저 숙소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나는 2시간 정도 더 그곳에 있었다. 딱히 뭘 한 것은 아닌데, 그냥 타지마할에 압도됐었다. 그래서 멍-때리면서, 여러 각도에서 그 건물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틈틈이 사진 같이 찍자고 말하는 인도인들과 사진을 많이 찍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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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각도에서 아름답고, 대칭적이다. 대칭적이지 않은 곳은 내부의 묘소 두 개라고 한다.



결론은 어디서 봐도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예쁘다고 하기엔 고급스러운 웅장함과 역사가 말해주는 슬픔이 담겨 있기에 아름답다는 표현을 써야 할 것 같았다. 화려하면서도 지나치지 않는 대칭미가 정갈하게 느껴지고, 이슬람과 힌두 건축의 정수를 오묘하게 섞어서 조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조화로움도 느껴진다. 그래서 더위를 뚫고도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17세기의 감성에 감탄을 하는 것이리라 믿는다.


2시간이 넘는 그곳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나는 릭샤를 타고 아그라 포트로 갔다. 아그라 포트도 인상적인 곳이었고, 꽤나 긴 시간 동안 머물렀다. 그렇지만 타지마할에 대한 생각을 거둘 수가 없었다.


아그라 포트에서 아지랑이처럼 보이는 타지마할은 샤 자한의 슬픔을 보여주는 것 같다.


무굴제국의 5대 황제 샤 자한은 자신이 그렇게 사랑하던 아내인 뭄타즈 마할이 죽은 뒤 타지마할이라는 무덤을 기획하고, 전력을 쏟아부어 지었다고 한다. 22년 동안 현재 시세로 9천억 원이 넘는 돈이 소모됐고, 유지비는 끝이 없을 정도였다니.. 그 정성이 알만하다. 그렇지만 뭄타즈 마할의 죽음 이후 성군에서 암군이 되어버린 샤 자한을 보는 시선은 곱지 못했다. 셋째 아들인 아우랑제브가 반란을 일으켜 그를 폐위시켰을 때엔 모두가 그냥 수긍해버렸을 정도이니 말이다. 실제로 샤 자한은 아그라 포트에 유폐되어 멀리서나마 저렇게 타지마할을 바라보다가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아내에 대한 순애보적 사랑으로 인해 아들에게 쫓겨나서 8년 동안 갇혀 살다가 죽은 황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업자득이라고 해버리기엔 가슴이 쓰리다.




타지마할을 보러 가기 전부터 H는 그렇게 말했다.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끝나버린 사랑을 지나치게 좇는 것은 미련한 미련(그것도 심지어 죽음이니)이며,

황제라는 위치에서 거시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만 따른 것은 잘못이다.

이로 인해 제국의 위세는 기울고, 백성들의 삶 또한 힘들어졌다니 폭군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다가 쫓겨났다니 자업자득이다.


엄밀한 워딩은 저러지 않았지만, 틈틈이 지속적으로 들은 타지마할에 대한 코멘트는 저러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모두가 반대했던 독불장군식의 공사가 후손들의 살림살이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라고도 말했던 기억이 난다.


KakaoTalk_20180817_215626511.jpg 타지마할에는 거의 아무것도 못 가지고 들어가서, 뒤늦게 한국에서 써봤다.


나 역시 저렇게 생각했었다. 무굴제국이 당시 세계적인 패권국이었다고는 하지만, 아무런 실용적 가치가 없는 건축물에 1조 원 가까이 투자하는 것은 무리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당시는 오늘날의 건설현장과 같은 분위기도 아니고, 강압적인 모습도 강했을 것이기에 나도 비슷하게 샤 자한의 자세를 욕했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타지마할을 볼 때쯤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사랑은 이기적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반론을 제기할 듯하다. 그렇지만 내가 저렇게 말하는 이유는 '사랑은 그 한 사람만 생각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샤 자한은 황제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간이었다.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아내인 뭄타즈 마할에게 몰두했고 사랑을 쏟았다. 그러니 그 사람이 떠난 뒤에 겪은 황제의 슬픔은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살아 있을 때에도 충분히 잘해줬을 터이니, 죽은 뒤의 그리움은 사무칠 터. 황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사랑했던 한 여성을 기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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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 (출처 : 위키피디아)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최고 존엄이라고 평가되는 재벌의 경우에도 어떠한 목적을 갖게 되면 그 뒤로는 물불을 안 가리는 모습을 많이 목격한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삶을 묘사한 영화에서 흔히 등장한다. 굳이 영화까지 안 가더라도 뉴스에서 접하기도 쉽다. 안 그래도 당시에는 철저한 신분사회였고, 황제는 그 어떤 존재보다도 강력한 위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패권국인 무굴제국의 황제는 어땠을지, 그리고 최고로 융성한 시기를 이끌었던 샤 자한의 자신감은 어땠을지..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 번 마음을 먹은 이기심은 모든 것을 자신의 땔감으로 삼으면서 타오른다. 죽은 아내를 향한 자신의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이다. 신하들의 만류도, 백성들의 고통도, 줄어드는 제국의 창고도 관심 없다. 황제에 눈에는 뭄타즈 마할을 기리는 것 이외의 그 어떤 것도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아내의 죽음 이후에 보여준 샤 자한의 군주로써의 자질은 욕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하나의 인간으로서 그를 욕하기는 어렵다. 요한복음의 내용을 약간 응용하자면, '우리 중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이기적인 행동을 해보지 않은 자들만이 샤 자한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말하고 싶다.


죽은 아내를 향한 순애보, 그리고 그걸 향한 한 사람의 권력이 빚어낸 이기심. 그러한 복잡 미묘한 감정을 예술이라는 매체를 통해 번역해낸 것이 타지마할이 아닐까? 예술이 보이지 않는 가치를 보이게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타지마할은 단연코 최고의 예술 작품일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진 극단적인 모습을 절제감 있는 아름다움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