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세주의를 조금은 놓게 하는 자연의 자태
라다크로 향했을 때 기대했던 것들 중에 가장 나를 궁금하게 했던 것은 판공초였다. <세 얼간이>에서 봤던 광경은 차치하고라도, 구글에서 검색한 사진으로도 전해지는 넓고 맑은 호수의 청량함은 정말 눈이 시릴 정도였다. 자연을 구경하러 멀리 가는 것을 딱히 좋아하지 않지만 여기는 묘하게 끌렸다. 그런 곳을 마침내 가게 되었다. 레에 도착한 지 4일째 되는 날에 말이다.
원래는 뚜르뚝과 판공초 모두 돌고 싶었다. 그렇게 3박 4일 정도 지프를 타고 돌아다니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는 여건상 불가능했다. 일단 모두 도는 일정을 바라는 사람들을 고려하기 전에, 수요 자체가 적었다. 우리가 갔던 5월 초중순은 라다크 여행의 비수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행 Y 형님(이하 Y)을 겨우 섭외하여 3명이서 판공초로 떠났다.
인도답지 않은 순수한 느긋함에 빠져 지내다가도 계획이라는 것이 세우기도 무섭게 무의미해지는 것을 보며
라다크도 인도이긴 한가보다,라고 생각했다.
오전 8시쯤 모인 우리는 여행사 직원들에게 간단한 설명을 마지막으로 들었다. 그리고 이틀을 함께 할 드라이버(라고 쓰고 생명을 지켜줄 사람이라고 읽는다.)와 인사를 나눈 뒤 지프라기엔 작고 SUV라기엔 조금 큰 느낌의 차에 몸을 실었다. 준비물은 딱히 없었다. 판공초 중간 부근에 있는 메락 마을 홈스테이 숙소에서 식사가 제공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그곳에서 캠프파이어나 바베큐를 해먹을 사람들은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거나 따로 준비를 해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우리의 일행 중에서는 그러고자 하는 사람이 없었고, 시즌도 비수기라 딱히 권장되는 분위기도 아니었던 것 같다. 직접 해 먹을 것은 딱히 없으니 은하수를 보며 마실 술이나 한 병 챙기라는 조언을 나는 충실히 이행했다. 물론 생존에 꼭 필요한 그리고 숙취를 달래줄 수도 있는 생수도 2병 백팩에 넣었다.
레를 벗어나는 길부터 험난했다.
그렇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비포장 도로는 당연한 것이었고, 그곳의 도로는 왕복 1차로로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는 곡예하듯 산을 올라갔다. 위험해 보였지만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이정표가 현지인 드라이버에게는 보이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 운전을 하는 사람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잘 피해서 다녔다. 처음엔 약간 걱정이 되었지만, 여유로운 드라이버의 표정과 그가 틀어놓은 EDM을 들으며 나도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멀미는 잘 하지 않는 체질이라 좋았다. 퇴사 전에 버스를 운전하셨다던 Y도 큰 문제가 없었다. 다만 H의 경우에는 멀미가 다소 심했다. 네다섯 명이 판공초로 떠나면 최소 한 명은 멀미의 바다에서 헤엄친다고 하던데.. 안쓰러웠지만, 나는 히말라야의 설산을 신나게 폰으로 찍다가 잠들었기 때문에 멀미 이야기는 이만 줄이겠다. 험난한 도로, H의 멀미, 나의 꿀잠 등을 뒤로하고 우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도로인 창라 패스에 도착했다.
설악산 대청봉(1,797m)을 세 개 넘게 쌓은 것보다도 높은 창라의 해발고도를 당당하게 자랑하는 것 같은 비석(?)을 뒤로하고, 우리는 판공초를 향해 1시간 정도 달렸다. 혹자에게는 지루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편하게 관광 모드를 취하던 나에게는 꿀 같은 시간이었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히말라야와 그 안에 머무는 사람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가장 보기 좋았던 것은 차가워 보이는 설산과 대비되게 따스한 전원의 모습을 보여주는 염소들이었다. 그들의 수염과 털을 깎아서 지역의 특산품인 캐시미어나 파슈미나를 만든다고 하는데, 실제로 보니 장관이었다.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대단했지만, 그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는 염소들도 대견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을 뒤로하고 조금 더 지나가니, 드라이버가 한 마디 한다.
"여기가 판공초가 처음으로 얼핏 보이는 장소야. 픽쳐 타임."
다들 그때부터는 정신이 돌아온 것 같았다. 멀미를 하던 H도, 졸다 깨다를 반복하던 나와 Y도 모두 눈이 똘망똘망해졌다. 그리고는 한두 번 더 커브길을 돌아 내려오자, 호수가 보였다. 그 유명한 판공초가 눈 앞이었다.
상당수의 관광객들이 <세 얼간이>의 촬영지였던 호수 초입을 한참 구경하다가 돌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현지인들에게는 판공초 당일 투어도 꽤나 인기가 많다고 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좀 더 호수를 구경하고, 밤에는 은하수까지 마스터하기 위해서. 초입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담고 메락 마을에 향했다.
판공초는 이름 그대로 정말 길었다.
판공초라는 뜻이 '길고 좁은 마법의 호수'라더니.. 길이는 150km에 달하고, 일부는 중국 국경 쪽으로 넘어간다고 한다. 호수 하나가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보다 조금 짧은 정도이다. 호수의 초입에서 마을까지는 차로 1시간 정도 걸렸다. 길이 험한 탓도 있겠지만, 절대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드라이버를 비롯해 모든 사람이 피곤했다. 그래서 메락 마을에서 홈스테이를 운영하는 츠왕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자리에서 잠시 뻗었다. 오전 8시에 출발해서 숙소에 짐을 푸니 오후 3시 정도였고, 정신을 차리니 4시였다. 저녁까지 잠시 남은 시간은 두어 시간. 그 시간이 아까웠던 나와 Y는 호수로 떠났다.
나는 호수에 도착하자마자 물을 마셔봤다.
역시나 엄청 짰다. 히말라야가 솟아오를 때 같이 딸려온 바닷물이라는 것이 역시 사실이었다. 짜서 바로 뱉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청아한 맑은 느낌이 들었다. 수억 년 전, 인간이 없을 때 있던 오염되지 않는 물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고독한 미식가가 되어보고자 했던 모종의 실험이 끝나고, 나와 Y서로가 낯설던 두 남자는 호수를 매개로 가까워졌다. 호수를 바라보고 앉아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했다. Y형님은 산을 좋아하고, 사진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하게 얼마 전에 회사를 나온 사람이었다. 상황도 비슷했고, 취미도 비슷했다. 그래서인지 나이 차이는 꽤 났지만 이야기하기 편했다. 그는 남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투박하지만 따스했던 기억이 난다.
약간은 오랜만에 만난 듯한 오촌 지간 정도의 친분과 어색함을 나눠가진 우리는 서로의 사진을 찍어 줬다. 그때는 DSLR 액정으로 작게 봐서 잘 모른 채 감사함을 표시했었다. 하지만 나중에 메일로 받아본 그의 사진들은 영원히 간직해야 할 인생 사진 리스트에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츠왕 할아버지의 가족들과 현지식으로 간단히 저녁을 먹은 우리는, 또다시 잠에 들었다. 통신이란 것은 전혀 되지 않고 전기마저 귀한 곳이었기에 틈틈이 책을 읽거나 노트에 무언가를 끼적이는 정도의 잉여로움만 허락되었다. 그렇게 밤이 찾아왔지만, 익히 들어왔던 은하수는 보이지 않았다. 11시 넘어서까지 기다렸지만, 헛수고였다. 그러다 우연히 잠에서 깬 새벽 3시에 창 밖을 보았다. 추위를 막기 위해 약간 무겁기까지 한 두툼한 커튼을 열어보니, 하늘이 아까보다 밝아져 있었다.
은하수였다.
너무도 선명한 우윳빛 길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것이 보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은하수를 봤지만, 아무런 설명을 듣지 않고도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완벽한 어둠을 찾은 하늘에는 은하수를 중심으로 별들이 환 공포증을 일으킬 만큼 촘촘히 박혀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천체망원경을 사서 관측을 다니기도 할 정도로 하늘에 관심이 많았지만, 무의미했다. 별이 모래알처럼 많이 뿌려져 있어서 별자리를 찾고 어떤 것을 분간해본다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또 별똥별도 끊임없이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소리를 치고, 그다음부터는 소원을 빌기 위해 기도를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내 담담해졌다. 너무도 흔한 그곳 하늘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이리도 화려한 쇼는 2시간 뒤에 달이 본격적으로 산 위로 떠오르면서 끝났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달이 가장 어둡고 늦게 뜰 때 이 쪽으로 올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리고 이러한 소소함에서도 행복을 찾고 만족하고 있는 스스로를 되돌아보니 이 또한 행복했다.
하늘을 바라보느라 시간을 보내던 우리는 모두 곯아떨어졌다. 멀미 걱정에 간단한 짜이 정도만 마시고 다시 레로 출발했다. 짐을 챙겨서 나올 무렵 미소 뒤에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배웅 나오신 츠왕 할아버지가 보였다.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거나 친해졌던 사이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를 항상 챙겨주시던 외할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조금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메락 마을을 뒤로하고, 우리는 레도 돌아갔다. 잠시 호수 초입에 들러 구경을 한 것 빼고는 또 다른 기다란 오프로드 여정이었다. 다들 두 번째라 그런지 처음보다는 잘 견뎠던 것 같다. 쉴 새 없이 달려서 늦은 점심 무렵 다시금 레에 도착했다. 꽤나 긴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지만, 정말이지 찰나처럼 느껴졌다. 호수와 은하수를 본 시간 말고, 자동차를 타고 험로를 지나던 시간까지도 말이다.
나는 그런 기분 자체가 신기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자연을 둘러보는 여행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 자연은 그냥 인간 주변의 환경이나 배경일뿐이었고, 자연보다는 그 위에 인간이 만든 문명의 결과물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가 피렌체나 파리 같은 곳이다. 자연을 배경으로 오래된 건축물과 미술관이 즐비한 그런 곳 말이다.
그렇지만 라다크, 특히 그중에서도 판공초를 둘러보는 이번 여정은 나를 조금은 변화시켰다. 아마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연의 압도적인 숭고미를 처음으로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 더 부연하자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행복해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에서, 답답할 때면 늘 고수하던 회사 다닐 때의 염세주의적인 태도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무의미하게 상황을 탓하기보다는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조금은 여유로워지는 법을 어느 정도는 배운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이때부터 '나만의 인도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나 보다, 싶다.
※ PS. 그와 별개로 히말라야 산자락의 고양이는 귀엽다. 아기 표범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