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_라다크_레 #2

오래된 미래 속 그곳은 없지만

by 츤데레

레에는 딱히 볼거리가 없다.


곰파라는 사원과 레 왕궁, 그리고 몇 개의 스팟이 있기는 한 것 같지만, 엄청난 무언가가 있지는 않다. 파리에 가면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찍고 루브르 박물관을 가고 샹젤리제에서 쇼핑을 하지 않는가. 그런 것처럼 화려하고 팬시한 볼거리는 없다는 말이다. 캄보디아에는 그런 느낌이 아니더라도 장엄한 앙코르와트가 있지만, 여긴 그런 것도 없다. 그런 것을 기대하면 실망하게 될 장소이다.


흔한 카페 뷰 (feat. 히말라야)


내가 1주일 정도 머물면서 느낀 레의 매력은, 그런 뭔가 손꼽을만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레에는 거의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 것이 오히려 편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차분하게 모든 주변을 바라볼 수 있다. 주변을 압도하고 초라하게 만드는 것들이 없으니, 아이러니하게도 거의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병풍같이 둘러싼 히말라야를 틈틈이 흘기면서 오랜 시간 동안 자신들만의 문화를 영위해온 작은 마을의 역사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좋다. 구름이 낄 때마다 LTE는 물론 와이파이까지 가로막는 특유의 통신 상황은 이러한 고요함을 배가시킨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하늘 위의 평화'같은 분위기를 그곳에선 느낄 수 있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에서 라다크를 처음 접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개인적으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모습으로도 개인적으로는 만족했다. 그렇지만 동행인 H처럼 지금의 모습에서는 그때 책에서 본 라다크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고 아쉬워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의 레는 꾸준히 발전 중인 모습이다. 도시 곳곳에서는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고, 끊임없이 인도와 중국의 문물들에서 나아가 세계의 거의 모든 것들이 들어오고 있다.


고요함 사이로 스마트폰을 하는 사람들과 바쁘게 공사하는 건물들이 보인다.


이러한 발전은 아무래도 스마트폰의 유입과 함께 가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곳에 통신 기반이라고 할 만한 것이 갖춰진 지는 몇 년도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이후의 레는 이전과 전혀 달라졌다고 현지의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히말라야 밖 주변의 문물들이 사람들에 의해 스멀스멀 유입되는 것에서 나아가, 서구를 비롯한 거의 모든 현대 문명의 이기라고 할 만한 것들이 5인치 정도 되는 화면을 통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라는 기계를 통한 인터넷을 통해서 모든 문화가 평준화되고, 특수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을 레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갔을 때도 그런 면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어딜 가도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 티베트 불교에 깊게 귀의하신 노승도 스마트폰을 통해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었다. 이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가족 같은 공동체를 구성하여 따뜻한 느낌을 풍기던 책 속의 라다크는 이제 희미해졌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래된 미래>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저 정도는 아니지만 아직도 여전히 저런 너그러움은 남아있다.


라다크의 변화를 아쉬워하던 동행 H가 이후에 덧붙인 말을 인용하자면, '라다크만 변하지 말고 예전의 따스한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 역시 이기심'일 것이다. 내 생각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구의 학자들이 라다크를 타자화시켜서 관찰하고 바라보듯, 우리가 라다크가 그대로 머물기를 바란다면 우리도 오리엔탈리즘적인 관점을 그대로 답습한다고 할 수 있다. 라다크도 다 같은 사람 사는 곳이고 그곳의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일 뿐이다. 하나의 사회가 변하고 발전하는 것에 대해서 타자가 호불호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며, 그곳을 멀리서 관찰하려고 하는 학문적 이기심에 불과하다.




옛날 라다크에 대한 헛된 그리움을 버리고 본 레는 황량했지만 아름다웠다. 험준한 환경 속에서 꿋꿋이 살아온 라다크 왕국의 후예들과 그들의 삶의 터전을 거닐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그런 미(美)를 체감했다. 폐허가 된 왕궁은 고산에 위치해서 올라가기에 숨이 무지하게 찼지만 아름다웠다. 들어가서 볼 유적이라 할 것은 별로 없었으나, 올라가는 길과 왕궁에서 내려다 보이는 레 시내와 히말라야가 눈부셨기에 후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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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 내부엔 정말 아무것도 없다. (휴.. 내 2,000루피..)


소위 '때 묻은' 레도 좋았다.

다양한 문화가 조금씩 섞이는 상황으로 인해 관광객으로써 편리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느낀 것이지만, 인도의 다른 지역과 다르게 이곳의 사람들은 바가지를 씌우는 것도 거의 없고 유순하다. 순수하게 착한 그들에게 친절하다는 표현은 다소 상업적으로 들려서 표현을 순화해야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이었던 지그멧, 하얀 히말라야 여행사의 사장 겟쵸와 한국인 사모님, 그리고 캐시미어 매장과 기념품 가게에서 만난 수많은 현지 사람들을 돌이켜보면 아직도 그곳의 따스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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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은데 김치는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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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왕국의 흔적을 가진 히말라야의 마을에서 따스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미국식 피자, 중국식 볶음면, 한국식 닭볶음탕과 라면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책에서 읽은 모습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측면들을 취사선택해서 모두 즐길 수 있었기에 만족스러웠다. 의식주에 대한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은 채로, 좋은 사람들과 적당한 환경에서 고요함을 즐길 수 있어서 행복했다.




<오래된 미래> 속의 라다크는 이제 없다.

그렇지만 그 기억을 간직한 사람들과 히말라야의 매서운 추위와 바람을 견뎌낸 마을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떼가 탔는지 여부를 판단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그곳을 느껴보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라다크에 사는 사람들도 어떠한 관찰 대상이 아닌 사람일 뿐이고, 라다크도 다른 어디와도 같은 지역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곳을 그냥 내버려두자. 학문적 호기심이나 과거에 대한 동경이라는 핑계의 이기심은 버려두고.

그러면 라다크에 방문했을 때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