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만 늘어가는 시점입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되는 것이 싫었다.
따뜻하게 나를 챙겨주는 부모님 슬하를 벗어나지 않고 살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어린애라는 명목으로 수긍해주는 많은 것들에서 꽤나 편리함도 느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늙어간다는 것이 싫었다. 죽음은 그렇게 두렵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의 노화는 두려웠다. 건강이 나빠지는 과정과 더불어 내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여러 가지 이유로 내 곁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이 무서웠다.
그렇게 나이 듦을 싫어했지만, 어찌 됐건 나는 꾸준히 나이를 먹어왔다. 그리고 지금은 서른이 코 앞인 그런 나이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내가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에 대해 정리해보고자 한다. 서른이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닌데 뭐 이런 똥글을 써재끼냐고 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더 나이 먹으면 이런 순간이 많아질 텐데, 그런 순간이 다섯 개 정도 일 때 정리하고 넘어가고 싶은 약간의 이기심이다.
지금도 개인적으로 투명한 술은 안 좋아하는 편이다. 술이라면 딱히 가리지 않지만, 소주와 보드카 같은 투명한 술이 주는 특유의 알코올 향을 싫어했다.(청하는 조금 예외적으로 마시는 편이었다.) 특히 소주의 경우에는 알코올 향을 넘어, 뭔가 소독약 냄새가 나는 듯한 기분이 나서 싫었다. 조금 취하면 올라오는 소주 냄새라고 불리는 것은 역시 공장에서 찍어낸 술이라는 방증이라 믿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소주를 찾아서 먹는다. 삼겹살에도, 치킨에도, 심지어 피자에도 소주를 마신다. 배가 부르지 않으면서 깔끔하게 음식의 잔향을 지워주는 그 맛을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가격도 저렴해서 친구들이랑 꽤나 마셔도 다른 주류에 비해 부담도 되지 않는다. 20도 안팎의 도수에 편의점 기준으로 1500원 내외, 식당 기준으로 4000원 내외의 이 술은 굉장한 가성비로 사람들을 어우러지게 해주는 힘을 지녔던 것이다. 소위 허세 담기게 이야기하는 '소주는 인생의 쓴맛'이라는 것은 딱히 모르겠다. 다만 소주가 주는 쓴맛 뒤에 오는 아련한 단맛을 알게 된 정도인 것 같다.
긴 말할 필요가 없는 부분이다. 예전에는 친구들과 주 8회 음주가무를 즐긴 적도 있고, 그래도 멀쩡했다. 밤새 놀더라도, 해장 버거를 먹고 잠깐 자고 일어나면 개운해졌다. 그리고는 또 놀러 가곤 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격일도 힘든 나이가 되어버렸다.
굳이 피곤해가면서 사람을 만나야 되는지 싶다. 20살 이후로 몇몇 사람들을 만났다. 상대방의 성격이나 외모는 다 달랐지만, 연애라는 것의 기승전결은 흡사했던 것 같다. 서로 알게 되고, 썸 타면서 간 보다가, 한 명이 고백해서 사귀게 된다. 100일 정도 되는 시간까지는 엄청나게 꼬수운 깨를 볶아대고 천생연분이며 운명의 반쪽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조금씩 현실적인 면을 머리로 이해하게 되면서 서로의 차이가 보이고, 그로 인해 싸우게 된다. 싸우다 화해하고 또다시 행복해지고, 그걸 반복하던 평범한 연애는 권태기로 접어들고 이내 이별을 고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너무 피곤해졌다. 물론 내가 그런 것이고, 주변에서는 2~3년 이상 잘 만나면서 지내는 친구들도 꽤나 많다. 그렇지만 그러한 연애를 보면 항상 한 사람이 포기해야 하는 것이 어마어마하다는 점이다. 물론 양측이 서로 희생하고 양보해가면서 맞춰가는 과정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 둘 중 하나는 양보를 넘어선 포기의 경지에 이른 경우가 많다. 그런 단상을 보면서, 굳이 내 모습을 하나하나 바꾸고 포기해가는 노력을 굳이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조금씩 양보하면 행복한 'the 반쪽'을 만난다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니. 그렇다, 그렇게 귀찮아진 것이다.
지금까지 연애의 종말은 크게 두 가지였다. 권태기와 권선징악이 바로 그것이다. 전자는 오랜 기간 동안 만나면서 서서히 페이드 아웃하는 관계이거나, 성격차이로 인해 결국은 결말이 이별임을 서서히 깨닫는 과정이다. 후자는 상대가 바람을 피우는 등의 나쁜 짓을 해서, 그로 인한 이별이다.
그렇지만 요즘 내 주변의 사람들이 또 다른 이유로 헤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결혼으로 대표되는 미래에 대한 사유이다. 6년을 넘게 만난 연인이 미래에 아이를 가질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헤어지기도 하고, 상대와 연애는 좋지만 결혼까진 모르겠다며 관계를 끝내는 사람도 있다. 물론 내 주변에는 없지만 상대와의 조건 차이로 헤어지는 이들도 상당수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뭔가 벌어진 일들이 이유가 되었다면, 지금부터는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벌어질' 중요한 일들이 이별의 원인이 되는 것 같다. 씁쓰름한 어른들의 세계의 잔인한 맛을 미리 맛본 것 같아서 혀가 아린다.
친구들은 약속만 정한다면 이내 볼 수 있는 존재였다. 서로 부담 없이 연락할 수 있었고, 시간만 조율해서 만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지금부터는 조금 달라졌다. 물론 물리적으로 바빠지는 것 일수도 있지만, 그것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 내면 :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20대엔 학벌, 30대엔 재산, 40대엔 자녀... 뭐 이런 식으로 사람들 간의 서열이 생긴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나는 별생각 없이 살아왔고, 저런 말을 흘려들었다. 그렇지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다만 상대와의 차이에 주목하기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신감의 문제는 자격지심으로 이어지기 쉬운데, 이럴 경우 상대방과의 끊임없는 비교로 자신을 갉아먹기 십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아 손상은 상대에게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기에, 그 관계 또한 망가뜨리기 쉽다. 본인이 정말 어떤지에 대해 고민해보고 친구를 만나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 외면 : 상대가 느낄 부담
지금까지 친구와 나는 주로 처해있는 상황이 비슷했다. 수능을 잘 보기 위해서 같이 노력하고, 고학점을 위해 밤을 새우고, 취업을 위해 자소서를 쓰는 등...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10~20대가 그러하듯 말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조금씩 달라졌다. 나와 친구들은 대부분의 경우 전혀 다른 상황 속에서 살아간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상대가 느낄 부담감에 대한 고민까지 필요한 상황 말이다.
예를 들면 회사라는 곳은 너무 편차가 크다. 회사라는 하나의 단어로 묶어 놓기에 버거울 만큼, 업종별로 차이가 극심하다. 그렇기에 친구와의 상황은 조금씩 벌어지고, 그로 인해 쉽게 불러내기가 어렵다. 나에게는 편한 때나 상황이, 친구에겐 그러지 못할 경우가 많이 때문이다. 또, 오랜 연애를 하고 있거나 결혼을 앞둔 친구의 경우(기혼자는 말할 것도 없고..)에도 비슷하다. 나와는 극심하게 다른 상황 차이가 있는 것이다. 여자 친구 혹은 부인과의 관계 및 그녀들의 허가까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이와 같은 여러 부담까지 짊어지고 친구를 불러내기는 참 어렵다.
서른이 되기 전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20대의 청춘을 화려하게 불태우고 사그라들어 버리는 '요절한 천재'를 꿈꾸던 오글거리는 때가 기억난다. 그렇지만 어찌 됐건 나는 꾸역꾸역 살아남아서 여기까지 왔다. 곧 서른이 되고, 앞으로도 큰 이변이 없는 한 꾸준히 늙어 갈 것이다.
다섯 가지 이유를 다시 읽어보니, 첫 번째 빼고는 다 슬픈 이야기 같다.
현실에 대해 깨닫고 조금은 철이 들어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뭔가 씁쓰름한 기분은 감출 수 없다. 지금까지처럼 덜 무겁고 솔직하게 살아가고 싶은데, 그러한 진심이 '생각 없음'으로 치부될 수 있으니 말이다. '어른스러움'이 '재미없다'와 동의어라면 그냥 철없이 살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렇지만 마냥 그렇게 세상이나 주변 친구들을 생각하지 않고, 내 주장만 내지를 수 있는 때는 어느 정도 지난 것 같다. 그래서 고민에 고민을 더하며 글을 이어갔다.
술과 숙취 이야기하면서 재밌게 써보려고 시작했었다. 그렇지만 나이 듦에 대해 곱씹으며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답답함만 더해진다.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이다. 뭔가 결론이나 방향성을 띄었으면 했는데, 곧 서른이 되는 20대 후반의 푸념만 가득해졌다. 당장 어른이 될 수 없다면, 나중에 결국 되어야만 할 때에는 그럴싸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생각을 깊이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