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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Aug 12. 2018

친구라는 단어의 정의

동갑이라고만 하기에는 조금 아린다

친구(親舊)「명사」

1)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친고(親故)

2) 나이가 비슷하거나 아래인 사람을 낮추거나 친근하게 이르는 말.


국립국어원에서 제공하는 표준국어대사전은 친구를 위와 같이 정의한다. 우리는 1번과 2번의 의미로 친구라는 단어를 많이들 써왔을 것이다. 아무리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도 의무교육과정을 거치면서 친구라고 불릴만한 이들은 생기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통념상 친구는 단순히 친하거나 가까운 사람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의 친구는 동갑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문제제기를 하고 싶다.




나는 어떠한 단어에 명확한 정의를 갖다 붙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내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친구의 정의는 단순하다. 그냥 친한 사람이다. 한자를 잘은 모르지만, 친구의 '친'이라는 글자가 친근함을 의미한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래서 나는 친하고 가까운 사람들을 친구로, 그냥 아는 사람을 지인으로 통칭한다. 그런데 내 친구를 남들에게 소개할 때 약간의 miscommunication이 발생한다. 일례를 들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흔히 겪어봤을 만한 흔한 상황이다.


"내 친구 B 알지? 외국에서 오래 살았다는 걔 있잖아. "

"아, 기억나. 그럼 걔도 90(년생)인가?"

"아니, 걘 91이야. 내가 재수해서 대학교에선 동기였지~"

"아 그럼 친구가 아니라 동생이네 ㅋㅋ"

"음... 뭐 그렇지."


대충 이런 상황들이다. 불필요한 대화가 오고 가면 나름 피곤해지는 탓에, 요즘에는 사회문화적 요소를 한껏 수용하여 '친구이지만 나보다 한 살 어려!' 정도로 코멘트를 하고는 있다. 그렇지만 대세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것과 단어의 뜻이 바르게 정의 내려지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내가 바르다고 생각하는 단어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피곤함에 어느 정도 굴복했을 뿐인 것이다.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고 한다. 92년생 친구와 함께 마셨던 추억이 있다.


어렸을 때, 외국 드라마나 영화(엄밀히 이야기하면 미국이나 유럽의)를 보고 약간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곳의 주인공들은 나이에 상관없는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한두 살 차이 나는 사람은 물론이고, 오랜 친구라며 이웃집 할아버지를 소개하는 광경도 보았다. 물론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이고 나이를 중심으로 한 위계질서 및 서열에 엄격한 탓도 있을 것이다. 한 살이라도 나이가 많은 사람은 친구보단 형으로 칭하면서 깍듯하게 대접하는 것을 어릴 적부터 프로그래밍당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내 또래의, 그리고 나보다 젊은 사람들도 친구를 동갑으로 정의 내리곤 한다. 이전 세대보다는 좀 더 유교적 사고방식에서 자유롭고 외국의 콘텐츠도 많이 접했을 텐데, 그들 역시 '협의(協議)로써의 친구'를 주된 정의로써 사용한다. 이런 걸 보면 관습의 문제는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외국처럼 나이에 관계없이 친구라고 하면 예의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형이라고 부르고 대접은 깍듯하지만, 친하고 가깝기에 친구라고 정의 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친구가 친한 사람을 칭하는 단어였으면 좋겠다. 나이에 관계없이 말이다. 좀 더 광의(廣義)로써 활용되면 좋겠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친구는 평생을 살면서 몇 만나기 어렵다. 우리가 흔히 스치는 지인들이 아닌, 우리의 옆을 지켜줄 사람들은 정말 몇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을 나이나 서열로 가르는 것은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평균적으로 70~80년 정도 사는 인생에서 10명 내외로 남을 소중한 사람들이 나이로 인해 친구가 아니고 친한 형, 친한 동생 등으로 갈린다면 약간은 슬플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나에게 소중하고 가까운 친한 '친구'의 숫자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렵게 얻을 수 있는 존재가 친구인데, 조금이라도 넓게 정의함으로써 하나라도 늘어난다면 약간은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친구를 나이로 판별해서 가르는 것은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80년생부터 95년생까지 친구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나의 이러한 마음을 알아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혹자는 나의 친구론을 듣고 '이런 예의 없는 x끼',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두가 조금이라도 친구라는 단어에 복잡한 위계질서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 날이 올 때까지 나라도 계속 이렇게 생각하고, 믿고, 주변에 소곤소곤 이야기할 것이다.


나보다 2살 많은 형이지만 친구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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