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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Aug 17. 2018

변화를 좋아하진 않습니다

핑계라기보단 취향이라는 점

친구 : 너 아직도 거기 살아?


나 : 응, 그때 너도 와봤던 거기야.


친구 : 아직도? 왜? 어차피 월세잖아. 안 옮겨?


나 : 음... 그냥;;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흔히 내가 듣는 말이다. 나는 부모님 곁을 떠나 집을 나와서 산지 올해로 13년 차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였고, 그 뒤로도 대학교 기숙사를 거쳐서 2015년 2월부터 현재 사는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다. 본격적인 자취를 3년 넘게 하면서 나는 쭉 같은 곳에 살고 있다. 이사하기 귀찮기도 하고, 현재 집이 싼 편은 아니지만 위치나 시설을 생각해보면 그리 비싼 편도 아니다. 또 집주인 내외분도 좋으시고, 나름 관리도 잘되며, 주변 동네도 마음에 든다.


나는 이러한 환경이 변하는 것이 싫다.




바야흐로 오늘날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이다. 나름 IT블로거였던 때도 있었고, 그러한 업계에서 일해본 경험도 있어서 나도 그게 뭔지는 잘 안다. 드론으로 물류 혁명이 일어나고, IoT 환경은 공장에서도 집에서도 사람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준다. 3D 프린터는 물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뒤엎어버린다고 하고, 스마트 디바이스들은 사람의 건강까지 관여하고, VR과 AR 따위의 기술력은 현실과 허구의 장벽을 모호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할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상 참 좋아졌다.


그래서 변화는 모두가 장려하는 미덕이다. 조금이라도 뒤처지지 않게 사람이건 그 무엇이건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고들 부르짖는다. 변화를 하지 않는 것은 게으름을 부리는 것으로 치부되기 마련이고, 그러한 상태는 도태로 이어진다고 쉽게 말한다. 모두가 전쟁의 폐허를 보면서 혀만 차던 나라에서 상당히 발전된 선진 국가로 나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저런 풍조가 더 심하다. 거의 모든 옛 것을 밀어버리고 새로운 무언가로 대체하며 빠르게 성장해온 성공의 경험을 신뢰하는 것이다.


다만 내가 궁금한 것은 변화가 항상 좋은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의문을 품는 이유는 '혁신을 위한 변화'보다는 '변화만을 위한 변화'를 많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회사를 다닐 때의 경험이다. 그들의 담론은 항상 혁신의 예시로 시작한다. 가까이에서는 세종대왕부터 멀리 서는 잡스까지, 거의 모든 혁신의 아이콘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차츰 범위를 좁혀가면서 회사로, 본부로, 팀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면서 우리도 실적 향상과 목표 달성을 위해서 창조적 혁신과 틀을 깨부수는 변화의 노력을 해야 된다고 피를 토한다. 통찰력이 뛰어나신 사장님께서 한 마디 보태주시면 금상첨화이다.


그렇게 되면 그 아랫사람들은 뭐든 생각해내야 한다. 한 사람 당 한두 개씩은 머리를 짜내서 보고를 하고, 팀장들은 취합해서 위로 올린다. 그렇게 쭉쭉 올라가서 추려진 그럴싸한 아이디어들이 사장 보고를 마친다. 마침내 혁신이라는 미명 하에 새로운 도전이 설정되고, 그걸로 매출 얼마를 달성하라는 나름의 현실적인 목표도 정해진다. 그리고는 1년 뒤에 그 사업은 없어진다.


무수히 많은 아이디어들이 짜내 짐을 당하고, 사업이 되고, 스르륵 없어지는 것을 봐왔다. 처음에는 아이디어가 구려서 그런 줄만 알았다. 그렇지만 아이디어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 괜찮은 아이디어가 혁신이나 발전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사장되는 데에는 시스템의 문제가 있었다. 고위급 의사결정권자들은 단기적인 목표만 쫓는다. 그들은 임원이고, 임원은 계약직이기에 연명을 위한 무언가가 급박하게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상업적인 접근을 강요하고 본래의 아이디어가 가지고 있던 창의성은 말살당한다. 그러다 보면 최초 아이디어 제안자와 실무급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의욕이 점차 떨어진다. 끊임없이 탑-다운 방식으로 뭔가가 바뀌는 상황은 했던 일을 반복하게 만들고 업무에 대한 능률과 애정을 저하시킨다. 안 그래도 '회사일은 자기 것이 아니고 계약일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러다 보면 변화에 대한 열정은 0으로 수렴한다.


그렇게 차츰 '변화만을 위한 변화'는 망하고, 회사는 이를 반복한다.


내가 생각하는 변화란 하나의 취향이다.

무조건적으로 옳은 정답이라거나, 만인이 추구해야 할 지향점은 아니라는 것이다. 변화가 좋거나 필요한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되고, 안 그런 사람은 안 하면 된다. 오래됐지만 자신이 자라온 아파트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고, 휘황찬란한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이사를 하면서 조금씩 평수를 늘려가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70억의 인구가 있다면, 70억 그 이상의 취향과 기억과 상황들이 존재한다. 그만큼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는 것이 당연한데, 모두에게 똑같은 변화라는 틀을 갖다 대면 안 되는 것이다.


변화도 마찬가지!


사람처럼 회사도 마찬가지이다. 캐캐 묵은 성공이 주는 달달한 뽕에 취해 있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지양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변화만을 위한 변화'를 들이대면 곤란한다. 경우에 따라서 새로운 도전이나 변화 시도보다는 빛바래 보이지만 꾸준한 캐시카우 사업에 집중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리고 진짜 필요한 변화의 경우에는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춰서 도전해야 한다. 빠르고 일관적인 의사결정구조, 순수한 아이디어 자체를 응원해줄 수 있는 지원과 보상, 그리고 눈 앞의 몇 푼을 가지고 닦달하지 않는 것. 이 정도는 갖춰야 혁신에 도전하는 변화를 시도해본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 집(집이라고 하기엔 방이지만)이 좋다. 1층이라 짐을 옮길 때나 장본 것을 가져다 놓기도 편하고, 어디 갈 때도 빠르게 나갈 수 있다. 화장실이 급할 때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편리한 점 중 하나일 것이다. 옵션으로 들어있는 가구들도 괜찮고, 가스레인지의 화력은 튼실하다. 소소한 외부 테라스(?)도 있고, 햇빛도 나쁘지 않게 들어오며, 옆 집에 사시는 집주인 내외분들께서 꼼꼼하게 관리하시는 덕에 벌레도 없고 깨끗한 편이다. 계약 관계도 깔끔하고 월세가 안 오르며 그냥 꾸준히 연장되는 것도 편하다.


나는 이 동네가 좋다. 교통이 편하고, 본가에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정선을 지키고 있으며, 주변에 친구들도 많이 산다. 단골 이자카야와 포차, 편의점이 있으며, 그곳의 사장님들과는 지나가다 만나도 반갑게 인사를 하며 안부를 묻는다. 미용실에서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스타일링을 해주고, 근처 슈퍼의 직원분들도 친절하다. 조금만 걸어가면 철길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백화점도 근처이며, 스타벅스를 위시로 한 다른 카페들도 즐비하다. 길만 건너면 북적이는 번화가도 있으니, 가끔 북적임이 그리울 때도 편하다.


지금 이 상태가 충분히 좋은데 굳이 변화할 필요가 있을까? 혹자는 그래도 더 좋아지기 위해 그래야 한다고 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리스크 감당을 선택하는 것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걸 감수하고 싶은 사람은 현재가 좋더라도 변화하면 되고, 아니면 말면 된다. 그냥 다른 것일 뿐 그 어떤 것도 틀린 것은 아니니, 게으르다고 욕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변화가 나쁘다는 말도, 좋다는 말도 아니다. 그냥 하나의 취향일 뿐인 것이다.

다만 '변화만을 위한 그런 무책임한 변화'만은 양산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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