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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Aug 25. 2018

고양이로부터 배운 세 가지

삶은 적정한 거리에서 상대방을 일관되게 기다려주는 것

나는 고양이를 키운다.


2014년 8월의 어느날 첫째 가비를 길에서 우연히 만날 그 날부터였을 것이다. 며칠이 지난 29일 가비는 우리 집에 들어와 식구가 되었다. 2년 반 가량을 길에 살았기에 잔병이 많았던 가비는 3개월 정정도 매주 동물병원에 갔다. 그 때 만난 아기 고양이가 가을이고, 10월 쯤부터는 함께 거주하게 되었다.


그들의 첫 모습.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쁘띠함이란..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해서 강아지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나는 거의 모든 동물을 좋아한다. 사람보다 귀엽고 따스하고 순수하며 일관적인 존재들 아닌가. 그러한 존재들을 보면서 사랑을 느끼는 편이고, 애정도 꽤나 쏟는다. 그래서 어떤 동물이 우위에 있음을 논하려는 게 아니다. 고양이에게선 배울 점이 있고, 강아지나 다른 동물은 그렇지 않다는 논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내가 4년 정도 고양이들을 바라보며 배운 점을 적어보려고 한다.

평소에 두 고양이의 집사가 되리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고보니 고양이들의 전반적인 성향에 대한 이해도는 보통 사람들 수준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조금 키운 지금은 예전보단 낫지만) 내가 아는 것은 개묘차라는 것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상당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엄밀히 이야기하면 고양이로부터 배운 점이라기 보다는, 우리 집 고양이 두 마리에게서 내가 느낀 점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수도 있다.




1. 적절한 거리두기

친구들이 우리 집 고양이들의 안부를 물어보면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영위하면서 알아서 잘 살아."라는 것이다. 고양이들의 생활을 약간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그러면 충분히 알았다는 듯 웃어넘긴다. 그렇지만 그러지 못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몇 마디 더 붙이기도 한다. "너무 관여하지 않고 서로의 생활을 존중한다는 뜻이야."라고.


우리는 정말 각자의 삶을 산다. 밥과 간식을 챙겨주고, 같이 놀아주는 시간 이외에 말이다. 가비는 자다가 심심하면 우리의 발 밑에서 뒹구는 등의 애교를 부리기도 하지만, 너무 지나친 터치는 지양하는 편이다. 적당한 은신처에서 스스로 혹은 가을이를 그루밍해주는 것이 보통이다. 가을이는 아직도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하기에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신만의 여가를 즐긴다. 어머니와 노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어디론가 들어온 날파리들을 쫓아다니면서 맹수의 본능을 테스트한다. 한 지붕에 다섯 생명이 살지만, 서로 적당히 무관심하고 적당히 터치한다.

사람들도 좋아하지만, 그들만의 시간을 더 챙긴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한국적 정서에선 다소 정떨어질 수 있는 표현이다. 그렇지만 조금만 섬세히 본다면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이는 곧 상대에게 적절한 공간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비와 가을이는 그런 존재이다. 그래서인지 강아지만을 좋아했던 아버지는 '이젠 고양이가 최고'라고 말씀하시곤 한다.



2. 기다림

내가 봤던 다른 동물들과 달리, 가비와 가을이는 기다릴 줄 안다. 정말 못 견딜 때에는 냥냥거리면서 울거나, 자고 있는 아버지의 발바닥을 긁는다. 안방의 문을 열려고 끊임없이 펀치를 날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게 선을 넘을 때는 거의 없다. 아무래도 세 명의 인간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것 같다.


보채지 않는 여유, 이게 바로 짬인듯 싶다.


예전에 내가 본가에서 살 때 나와 두 고양이가 같이 잔 적이 있었다. 자는 것은 큰 문제가 안되는데, 내가 실수로 문을 닫고 잔 것이다. 고양이가 못 여는 문 손잡이로 교체해둔 뒤라 아무리 노력해도 열리지가 않는다. 좁은 공간을 잘 못 견디는 둘이라 자다가도 틈틈이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하고 화장실도 가야하는데, 내 불찰로 그러지 못한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사태를 아침이 되고서야 알았다. 이것에서도 놀랐지만, 더 놀라웠던 건 가비와 가을이의 행동이었다. 소변 실수나 징징거림은 없었고, 문가에서 식빵자세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놀라서 뛰어나가 문을 열었고, 그 둘은 차분하게 서두르며 화장실에 가서 용변도 보고 아침햇살을 즐겼다.


동물이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동물마저 그럴 수 있다는 것이 감탄스러웠다.



3. 일관성

가비와 가을이의 행동양식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일관적이다. 놀라울 정도로 같은 시간에 밥을 달라고 조르며, 각자의 페이스에 맞춰서 식사를 한다. 늘 비슷한 시간대에 같은 장소에 같은 사람이 있어주기를 바라는 점도 일관됐다. 어머니의 경우에는 10시쯔음에 소파에 앉아 있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 때까지 그곳에 안계시면 불안해하기도하고 울면서 찾기도 한다. 막상 어머니가 나타난다고 뭐 대단한 걸 하는 건 아니다. 가비는 박스 안에 누워있을 뿐이고, 가을이는 캣타워 꼭대기에 앉아서 주변을 훑어보고 있다. 그냥 모든 게 일관되게 제 자리이길 바랄 뿐인 것 같다.


일관성이 넘치는 그만의 제 자리


그리고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측면에 대해서도 변함이 없이 일관적이다. 가비는 사람의 손길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소위 '개냥이'지만 과도하게 치대지 않는다. 상 고양이같은 가을이는 말할 것도 없다. 밀당의 적절선을 지키며 부담스러움을 철저히 배제시키는 담백함을 그들에게서 느낀다. 기다리는 것도 일관적이다. 세 명의 사람이 실망시키지 않은 덕일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언제건 보채지 않는다. 사람으로 따지면 합리적인 요구는 하지만 진상은 부리지 않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이대 근처에서 한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이민호 강사님이 진행하는 스피치에 대한 수업이었다. 그는 본인의 고교 시절의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며 표현하는 방식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고등학교 때 여자친구가 있었어요.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학생 형편에 만날 때 마다 꽃 한 송이씩 사서 나갔어요. 그리고 선물했죠.
그런데 얼마되지 않아서 헤어졌습니다. 헤어지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당연히도 엄청나게 좌절하고 슬퍼했죠.
이런 저를 보던 교생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사랑은 바둑과 같은거야.
내가 한 수를 두면 상대가 다음 수를 둘 때까지 기다려야 하듯,
내가 한 걸음 다가가면 그 사람이 한 걸음 다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란다.
그래야 마음이 전달되면서도 상대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어."


한 고등학생의 실패한 연애이야기는 나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나도 지금까지 사람들을 만나면서 바둑을 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이 시키는 대로 하고 싶은 표현만 한 것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게 친구이든 연인이든, 아니면 가장 나를 사랑해주는 부모님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솔직함으로 교묘히 포장된 나의 이기심이 상대를 지치게 만들어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무거워졌다. 강의는 밝고 위트있고 재미있었으나, 마냥 웃을 수는 없었던 기억이 난다.


노력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 뒤로 본가에 내려가 고양이들을 바라보니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가비와 가을이는 '삶은 바둑과도 같으니 그렇게 해보겠다!'라고 의식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바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들을 바라보니 정말이지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대단했다. 상대에게 적당한 공간을 주고, 자신의 요구 사항에 대해 요구하되 보채지 않는 행동, 그리고 이러한 행동을 일관되게 지속하는 모습. 어린 아이에게도 배울 점이 많다던데, 동물에게도 그러한 것 같다.


그들을 바라보며 틈틈이 적은 메모를 보면서 이 글을 완성했다. 생각을 이어갈수록 고양이 두 마리가 기특했고, 그럴수록 나의 이기심은 한심했다. 김은주 작가는 '행복을 섬세하게 느낄수록 행복할 일이 많아진다.'고 말했다. 고양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해본다. '주변을 섬세하게 바라볼수록 배울 일이 많아진다.'고. 그래서 나도 가비와 가을이처럼 '고양이식 바둑'을 둬보려고 한다. 너무 억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들의 섬세한 배려와 존중을 배워보고자 한다.


배우는 것은 다소 피곤하지만 우리를 끊임없이 성장시킨다.

지식도 좋지만, 주변의 좋은 점을 보고 내면적으로 성장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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